‘가이드’를 하다 보니 내 눈에 보이는 것들
#1
김 스위스 투어라는 회사를 알리고, 그리고 그 회사를 운영하는 나를 공개적으로 알리다 보니 나에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는 온라인에 쉽게 공개가 되어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나는 여행업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내가 [스위스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꽤 여러 차례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평소에는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설정하고 잠을 청하는 편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일반 모드로 둔 채 그대로 잠이 들다가 새벽 두세 시쯤 전화가 와서 화면을 보았다. 국가번호 +82 가 뜨니 분명 한국인데, 이 시간에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모르는 번호였지만 통화를 시작했다.
전화를 받으니 한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친언니가 스위스에서 여행하다가 많이 다쳤는데, 도움받을 사람이 없다고 나한테 병원에 가서 봐달라는 이야기였다. 다친 언니가 얼마나 그리고 심각한 상황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 있는 동생이 스위스에 있는 언니의 상태(다리가 부러짐)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에서 나한테 전화를 한걸 보면 분명 다친 언니가 사경을 헤매거나 어디 알 수 없는 곳에 고립 있거나 혹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은 전혀 아닌데, 그 사람들과 일면 일식 없는 내가 이 새벽에 이런 전화를 왜 받고 있나 싶었다.
#2
2020년 7월 [스위스 유학 월세] 논란 이야기이다. 장관 후보자 아들이 스위스 ‘바젤’에서 약 1여 년간 생활하며 체류기간 동안에 사용한 돈에 대해서 해명을 하는 이슈이다. 물가 높기로 악명 높은 스위스에서 월세 50만 원짜리가 말이 되느냐부터 시작된 이 사건은 내가 몇 달 전에 작성했던 스위스 부동산 관련 글로 넘어가며, 1일 조회수 2000회를 훌쩍 넘기며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궁금증을 풀어가곤 했다. 스위스에 대한 물가나 경제적 이해도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월세 50만 원이나 기타 물가 사정이 궁금할 법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논란에서 사람들은 마치 스위스에서의 이민 혹은 장기거주를 할 것처럼 교묘하게 이야기를 꾸며 내게 블로그를 통해 “월세 50에, 생활비 170만 원으로 1인 생활이 과연 가능할까요? 지역은 바젤입니다”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여럿이 와서 같은 질문을 하니 참 기가 막히다는 생각도 들던 차, 어느 날은 개인 이메일로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스위스 부동산 등기업무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인데 명확한 관광부처와 업무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사전조사를 위해 스위스 연방정부의 부처 명칭과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을 받는데 짜증이 폭발했다.
나는 노인들 대상의 여행시장을 조사하는 대학생들 리포트를 위해 비디오 찍으며 인터뷰도 해줬고, 스위스 여자 친구와 같이 살고 싶은데 어떤 걸 준비해야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한국 청년의 이메일에도 여러 차례 답장을 준 적이 있다. 게다가 스위스 정착한 지 몇 달 되었는데 앞으로 언어나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조언을 요청한 사람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스위스에 관심 있는 사람과 직접 만나 커피도 여러 번 했다. 크게 어렵지 않은 선에서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상, 할 수 있는 만큼은 도움을 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이상한 방향과 목적으로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 다친 언니의 경우도 그렇다. 그 상황에 대해서 ‘같은 한국인이라면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야? 오죽했으면 급한 마음에 모르는 너한테 전화를 했겠나?”라고 묻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최소한 그 상황에서 도의적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말이지 다쳐서 사경을 헤매는 거라면 도움을 줄 사람은 내가 아니라 목숨을 살려줄 의료진들이고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들인 순간 의사소통이 일절 안돼도 급한 처리는 된다고 말이다. 이건 한국병원도 마찬가지고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어느 선까지가 한국인을 넘어 인류애적인 범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 있는 동생이 아닌 직접 그 다친 언니가 스위스 어느 산에 고립되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모르겠다고 도와달라고 전화했더라면 나는 이런 글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종종 가이드라는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춰질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가이드임에도 불구하고 [여행 가이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다소 속상하지만 긍정적인 것들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떠오른다. 게다가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어서일까 일면 의식 없는 사람들이 단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혹은 스위스 거주자라는 이유로 나에게 어쩌면 ‘일’이 될 수 도 있는 것들을 아주 쉽게 혹은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 정중히 거절을 하면 대 실망을 하는 경험을 종종 겪는다.
스위스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쉽다. 꽤 멋있는 옷차림 그리고 약간 들뜬 모습의 빠른 몸짓을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보내는 눈빛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어, 가끔은 그 사람들이 내게 직접 다가오기까지 천천히 기다려주기도 하고 나이가 지긋히 드신 분들의 부부여행의 경우나 아이를 업고 유모차와 짐이 한가득인 상태로 지도를 겨우 찾는 어머니들을 보면 내가 먼저 가서 “저 여기 사는 사람인데, 도와드릴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물론 이런 호의적인행동이 한국에선 적어도 흔한 경우가 당연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으나, 이런 상황이 대게 어떤 기차를 타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내 직업상 1초도 안 걸리는 답변이기 때문에 그냥 호의를 베풀고 싶은 것뿐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한국 여행자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참 묘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다. 대게는 내가 먼저 도와주려고 한국말로 말을 걸으면 나이 드신 분들을 제외하고, 20대, 30대 젊은 층 여행자들은 내게 의심 눈초리를 아주 기분 나쁘게 쏴댄다. 내 그 눈초리 심하게 몇 번 맞은 이후로는 내가 먼저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고 도움을 내게 청하러 오는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방어적으로 행동을 해야 하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외국 살이 하니, 외국 나가서 결국 확실한 도움받는 건 한국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어떨 때는 한국인이라서 도움을 요청하고 어떨 때는 한국인이라서 더 조심하라는 말이 나오는 거 보면 이거 참 복잡하고 어려운 테마인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