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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Sep 14. 2020

한국 며느리 생일, 스위스 시어머니가 집으로 오셨다

만 34살 생일을 축하하며

엊그젠 내 생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생일에 무하게 지냈던 나인데 올해는 신날일이 없어서 그런가 9월인 내 생일을 몇 주전부터 유난을 떨며 뭘 해야 할지 남편과 이야기하곤 했다. 사실 9월의 경우 결혼기념일을 포함해 내 생일 그리고 남편 생일이 있기에 우리의 9월은 항상 이벤트가 있는 달이다. 그나마 내 생일이 가장 첫 번째 다가오는 일이라 내가 좀 유난이긴 하다. 


@ 나의 생일선물 명목으로, 남편에게 일본식 수플레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제 작년까지만 해도 시외할머니 (구십이 넘으신)가 내 생일날 전화를 해주시곤 했고 무뚝뚝한 스위스 시동생도 내 생일만큼은 메시지 한통을 주곤 했다. 생일을 유독 (서로) 안 챙기는 친정식구들과는 달리 시댁 식구들은 생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기고, 챙김 받고 있다. 


"얘야, 생일날, 내가 너네 집으로 가마"

내 생일 일주일 전, 시부모님은 우리 집으로 오신다고 통보를 하셨다.  심지어 우리 집 뒤에 있는 그 좋고, 비싼 식당을 인터넷으로 어찌 보셨는지 그 집을 정확히 이야기하시며, 미리 예약해서 가자고도 하셨다. 

내가 아무리 생일자이긴 하지만 2시간 거리에 사시는 시부모님이 우리 집까지 오시고 게다가 식당 가서 적어도 밥값은 내가 내야지 하는 한국 며느리 마인드와 그냥 부모님이 사주시는건데하는 두가지 생각이 머리속에서 엉킨다. 만약 친정부모님이 오신다면, 밥값은... 하하 내가 낼거라생각은 안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철부지다 나는) 그래서 일까, 나는 그 식당에 4인이 가면 얼마나 나올까 걱정이 몰려왔다. 메인보다 더 비쌀 와인까지 시킬 것을 예상하니 아무리 못해도 최소 30만 원 이겠구나, 비싼 스위스 물가가 다시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평소 같았더라면 이런 걱정따위 안했을텐데, 내가 올해는 수입이 없어서 그렇다는걸 티내고 싶진 않았다. 휴...  근데 말이지 진짜 나도 그 집 좋아하긴 하지만 솔직히 그집이 비싸서 잘 못 갔던 데였는데 혼자 중얼거렸다...그리고 이 걱정거리를 차마 남편에게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 케이크에 내 이름 적힌 것을 받아보니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일요일 오후 4시, 시부모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2달 만에 뵙는 거였는데, 시어머니 손에는 케이크가 있었다.  그렇다 시어머니 사는 동네에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집이 있는데 그 집 브랜드가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너무 신났다. 유럽 사는 사람들은 알거다. 그 한국스타일의 맛있는 케잌이 정말 귀하다는걸...

심지어 날 위해 무알콜 샴페인도 준비해주셨고, 하얀 그 로고가 찍힌 케이크를 열어보니 열흘 전에 케이크 주문했다며 " 생일 축하합니다 민주!"  라는 글자도 새겨져 있다.  아 이까짓 케이크가 뭐라고,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눈물이 그릉그릉 했는데, 다행히 끝까지 잘 참았다. 우린 한 조각씩 케이크를 나눠먹으며 저녁식사 전 우리는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한껏 나누었다. 여름휴가 다녀온 이야기, 시어머니 회사 동료 이야기, 그리고 시아버지의 취미활동 이야기까지 확실히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할 이야기도 나눌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하게...


"석양과 함께한 저녁식사"

다행인지 아닌지 그 비싼 식당은 일주일 전에 예약문의했지만, 풀북으로 다른 식당을 알아봤었어야만 했다. 다 같이 오랜만에 보는 거고, 내가 대접할 일이 그동안 없었으니 마음 편하게 오늘은 내가 저녁식사를 지불할 마음가짐을 장착했다. 그리고 집에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석양이 끝내주게 보이는 식당으로 결정했다. 그곳은 스위스 음식 지중해 음식이 파는 식당인데 입장하는 순간 분위기가 얼마나 좋던지 마치 휴가를 온 것만 같은 기분이라며 시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시는 게 눈에 보였다. 남편과 나는 눈빛으로  정말 선택했다 하며 눈을 찡끗 - 했다. 


@ 마치 휴가를 온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정말 좋은 좌석에서 최고의 서비스와 분위기에 취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석양이 지는 7시쯤에는 호수가로 나가 멋진 사진을 시어머니께 찍어드리기도 했고 시아버지께서는 와인이 훌륭하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사실 이런 식당은 우리 부부도 아주 특별한 날에나 몇 번 온 게 기억날 만큼 잘 안 오는 곳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너무 좋아하시니 그 순간 식당 가격 걱정하며 어딜 가야 하나 메뉴를 뭘 먹어야 하나 쓸데없는 고민했던 나 자신이 참.. 속상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맛있는 식사 그리고 디저트까지 먹고 계산할 타임이 왔다.  진심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계산을 있음에 카드를 꺼는 순간, 시어머니께서 "생일 축하한다"하시며 가방 지퍼를 쭈욱 닫으신다. 와중에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남편이란 사람은 한국에선 연장자가 밥값을 지불하는 거라며 그다지 도움되지 않는 말을 내뱉는데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 카드를 내가 내내 하면서 내 카드는 빛을 보지 못했고, "당케 피말" (감사합니다)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챙겨주고, 챙김 받는 우리 가족"

스위스 남편과 결혼을 하며, 나는 외국인 며느리로 산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EBS에서 방영하던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너무 봐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에서 사는 친구들의 고부갈등을 반간 접적으로 들어서 그런지 스위스 시댁 식구들을 대할 때 친정식구들만큼 아주 편하게 그리고 오픈마인드로 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지난 8년 동안 시댁 식구들은 그냥 나를 또 하나의 챙겨줄, 챙김을 받아야 하는 그런 구성원으로 받아주셨고 시부모님은 나에게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 꽤 많이 잘해주신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아차렸다. 외국인 며느리도, 한국인 며느리도 아닌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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