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아챈 나의 평발, 그리고 깔창 라이프
뒤늦게야 알아챈 나의 평발
내 발이 평발이라서 발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챌 때는 내 나이 서른이 훨씬 넘어서 였다. 그동안은 내가 평발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으며 신발을 고르고 장시간 동안 착화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하나도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발이 아주 찌릿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아플때마다 나는 그저 컨디션이 안 좋아서 혹은 그 전날 무리를 많이 해서라고 우연을 가장했었다. 하지만 점점 그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몸뚱이도 아니고 내 몸뚱이인데 횟수가 잦아지니 그때서야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내 발에 애정을 갖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처음부터 평발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보니 그동안 살면서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나 보다. 부모님도 내 발에 대해서 별말 없었고, 단 한번도 내가 평발인가에 대한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그저 많이 걸으면 다리가 아픈 게 당연한 터라고 여겨왔다. 특히 남들도 다 그러겠지 하며 그동안의 크고 작은 시그널들을 다 무시하면서 살았던 게 서른이 넘어서야 나타난 것이었다.
정말 난 어릴땐 괜찮았던 것이였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10대, 20대 때야 가장 건강하고 활기찰 나이었을 테고, 30대가 되면서 직업으로 인해 1일 도보은 물론, 산행 횟수도 월등히 그리고 굉장히 늘었으니 체력은 하향선인데 신체는 상향선으로 지낼터. 어쩌면 당연할 터! 게다가 30대가 되면서 몸무게도 10kg이상 늘었기 때문에 유독 가는 내 발목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내 증상을 찾아보니 "족저근막염"이 가장 근접했다만, 제발 아니길 바라면서도 굉장히 증상이 똑같아. 짜증이 굉장히 나지만, 일단 이건 아파도 너무 아프다.
20만 원짜리 답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발을 바닥에 대지도 않았는데, 발바닥이 너무 아프다. 발바닥 전체가 찌릿찌릿하게 아프니 이게 뭔가 싶어, 굉장히 놀란 마음에 응급실을 갔다. (주말이라 응급실만 열었음) 지금 생각해보면 응급실까지 갈 사이즈는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슨 알지못할 급성 감염이라도 된 줄 알고 갔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비싼 돈 내고 응급실에서 선생님이 한 말은 굉장히 짧고 명확했다.
"족부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 옆에 맞춤형 깔창 매장에 가서 일단 맞춰 보세요."
내가 응급실에서 한 거라고는 피검사와 선생님이 내 발을 눈으로 본 게 전부다. 게다가 "족부 전문가"가 아니기에 특별한 답변을 해줄 수 없다는 이 말을 20만 원과 맞바꾼 것이다. 분명 별일 아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의사 소견을 듣고나니 뭔가 굉장히 허무했다. 어쩌면 옆에서 남편이 "거봐, 내말이 맞잖아.."에 더 화가 났기에 짜증이 슬금슬금 기어나왔다에 한표를 걸어본다.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맞춤형 깔창
어릴 적, 맞춤형 깔창(DE, Einlage)을 직접 경험해본 남편. 스위스에서는 운동하는 사람들 혹은 발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으면 교정의 목적으로 종종 맞춤형 깔창을 일정기간 쓰는 게 뭐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귀뜸해준다. 맞춤형 깔창은 한국에서도 찾아보니 20만 원~50만 원대로 생각보다 고가였다. 한국에서 진행했을 경우, AS가 바로 안된다는 점에서 보았을때 나는 무조건 스위스에서 해야 했다.
관심을 가지고 맞춤형 깔창(DE, Orthopädie Technik) 하는 곳을 찾아보니 스위스엔 뭐 발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을 정도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때 나는 새로운 독일어 단어를 배웠다.
그것은 바로 Einlage [아인라게]. 요거 깔창을 뜻하는 단어이다.
뭔놈의 깔창 만드는 사람이 많은지 예약하고 한달이나 지나서야 방문을 겨우 할 수 있었다. 방문전 나는 의학 혹은 전문 독일어에 잔뜩 걱정을 하고 방문했다. 제발 영어하는 선생님이길 바라며 기도도 하며 갔는데, 옴마나 생각보다 선생님이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까닭에 마음이 정말 놓여 괜한 걱정을 또 했구나 싶었다.
매장안에는 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정형외과 기구들이 전시되어있었고, 한편에는 맞춤형 발을 체크하는 방이 따로 준비되어있었다. 입장한지 5분정도 지나자,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이내 방으로 들어갔다. 파란 의자에 앉아 내 발 모양을 3D 스캐너로 보고 발의 굴곡 및 모양을 한 15분 정도 체크한다. 발의 어느 부분에 힘이 더 실리는지 앉았다 섰다 기계로 세심히 압을 본다. 어떤 재질로 된 깔창을 할 것인지 여러가지도 골랐고 깔창은 만들어진 다음 계속 발에 맞는지 테스트를 할 거니 이후 다시 보자고 했다. 소요시간은 근 50분 정도 걸렸고 세상에 이거 도대체 얼마나 비싸길래 이렇게 오랫동안 검사를 하나 .. 싶은마음도 교차했다.
2주 뒤 나는 내 발에 꼭 맞는 맞춤형 깔창을 갖게 되었다. 깔창을 처음 신발에 넣고 적응하기까지는 열흘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깔창을 끼고는 오래 걸을 수 없었다. 신발에 문제가 있는 건지 내 발에 문제가 있는 건지 이거 얼마나 테스트를 해봐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특히 첫 한주 동안은 깔창을 신발에 넣고 걸었을 때 통증이 굉장히 심해지는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한 달 정도 지나니 깔창이 발아래 있었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편해졌고 나의 통증은 완전히 100% 사라졌다. 나는 맞춤형 깔창 전도시가 되었다. 할렐루야!
새 신발 찾기
맞춤형 깔창을 낀 지 1년이 지나면서부터 깔창 유지보수를 근근이 들어갔다. 한번 유지 보수할 때마다 10만 원 정도. 내 인생에 명품 신발 한 번도 못 사봤는데 이렇게 돈이 깨지는구나 덜컹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통증과 맞바꿔줄 금액이라고 생각을 바꿔봤다. (어렵게) 참고로 2018년 기준 - 맨 처음, 맞춤형 깔창은 40만 원쯤 지불했다. 맞춤형 깔창이 있다 보니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는날에도, 그리고 정말 더운 한여름에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사계절 내 같은 운동화를 신게 되었다. 1년도 되지 않아 신발이 낡아버렸고, 같은걸 사면될 것을 나는 도전해보겠다며 새 신발을 찾기 시작했다. 새 신발의 기준은 명확했다. 바닥이 튼튼하고 신발 목이 길며, 쿠션이 있어야 하는 신발. 하지만 무엇보다 깔창을 넣었을 때 신발과 잘 어울려져야 한다는 건데, 이게 나중엔 찾기 너무 힘들었다. 가격은 둘째치고 그 검은 고무신 같은 할머니 스타일의 신발은 정말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맞춤형 깔창을 맞추고 무려 3-4년 동안, 새로운 신발을 찾아보겠다고 10켤레가 넘는 운동화를 사재 꼈으나 미련이 그렇게 남아, 신발 1켤레당 정확히 1달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곤 했다. 물론 그중에는 결혼식에 간다고 깔창 없이 신어보겠다고 산 건데, 정확히 2번 신고 (3시간 이하) 포기했다. 이 발 때문에 나는 도대체 얼마큼의 시간과 돈을 쓰고 있는 건가. 아주 명품 신발을 매번 억지로 사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