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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Jan 16. 2023

밥 차려 주는 손님, 그리고 날 성당으로 이끈 손님

여행 가이드 이야기 


김스위스투어의 김 사장님 


단체 여행이 아닌 개인 [Private] 가이드 여행을 하다 보니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와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가능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려 한다. 전반적으로 리드를 하지만 관광지에서의 설명 이외, 이동하는 시간 혹은 차 한잔 하며 쉬는 시간엔 여행자가 여행을 하며 느끼는 것들을 가능하면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 그렇다 보니 우리가 며칠 만나고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를 그럴 헤어질 사이가 가벼운 대화로 인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건 아니라는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여행 일정 내내 정말 진심으로 내 마음도 들여다봐주며, 즐겁게 그리고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도 있다.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음식은 여행을 더 즐겁게 한다


70대 엄마와 함께 하는 모녀 여행 그리고 50대 여성 소그룹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식사 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해외여행 일주일쯤 하면 밀가루 가득한  식당음식도 물리기 시작한다. 그저 속 편한 음식 먹으면서 여행하는 것도 중요한지라 주방이 있는 아파트식 숙소를 일정 중간에 껴 놓은 것을 나도 권하는 편이고 그들도 굉장히 좋아한다. 


이런 아파트식 숙소는 침대와 욕실만 있는 일반 호텔보다 가격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주방이 있는 곳에서 숙박하고자 하는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정통 한식파인 경우가 많다. 특히 할머니와 손주와 함께 하는 3대 여행, 아니면 6070  부모님과 오시게 될 경우가 이에 속한다. 그러다 보니 캐리어 속에는 음식 재료들이 한편을 한켠 차지한다. 볶음요리 혹은  찌개에 넣어도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마법의 양념장 (고춧가루, 참기름, 다진 마늘, 후추, 설탕을 섞어 병에 넣어 오신다)은 한국음식의 끝장판이 아닐까 싶다.  물론 요즘 한국에 너무 잘 나오는 각종  레토르트 식품(급속 냉각하여 만들어진 보존식품) 은 두말하면 잔소리. 


해발 3’ 454m 만년설이 펼쳐진 융프라우 전망대를 다녀온 날이면 여행자들도 그리고 가이드도 지친다.  온도가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피로도도 금방 올라온다.  게다가  융프라우 전망대 같은 스위스 하이라이트 명소는 출국날이 다가올 때쯤 방문하는 곳이다 보니 하루 7시간 투어를 하고 나면 뜨끈한 국물에 밥이라도 말아먹고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곤 한다.


가이드님, 밥 먹고 가요! 


한 번은 10시간의 긴 투어를 진행한 날이었다. 10명쯤의 소그룹으로 2박 3일 정도 함께 신명 나게 여행을 했고, 그날은 여행의 마지막 날로  여행자분들을 숙소 문 앞까지 안내드리고 투어는 종료되었다.  호텔 문 밖을 나간 지 몇 분 되지 않아 나는 방금 헤어진 여행자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가이드님, 아직 호텔 앞이죠? 우리가 가져온 반찬 맛있는 거 진짜 많아요. 여기서 집까지 가는데 멀다면서? 그러니까 우리 숙소에서 빨리 밥 먹고 가요”  나는 이 메시지를  읽으며 이 어려운 답변을 어떻게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일정 끝난 이후, 식당에서의 저녁 초대 혹은 호텔 조식 초대는 종종 받곤 했는데 호텔 숙소에서의 초대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호텔은 주방이 있는 아파트식 숙소가 아니라 일반 호텔이었기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손님과 같이 식사하지 않는 것이 가이드들의 불문율이라고들 하던데 참고로 난  그 타입은 아니다. 내가 마음이 편하고 좋으면 손님과도 식사하고 때로는 내가 대접을 하기도, 함께 식사하실래요라고 물어본다. 

근데 이번 경우는 뭐랄까.. 우정과 전우애 사이의 어딘가의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으로 참여를 했다. 


식사 참여는 둘째치고 내가 가장 걱정되는 것은 한국식 강한 조미료 냄새. 게다가 주방이 없는 곳 방인데, 한국에서 가져온 여행용 포트로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는 것을 호텔이나 혹은 다른 투숙객이 정식으로 항의하게 된다면 나는 그 문제를 어떻게 최선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호텔은 관광지 중심에 있는 4성급, 다행히 그분들의 방은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고 층은 패키지 팀이 층수 위아래를 쓰는 듯, 문 앞에 들어가진 못한 캐리어로 대충 눈치를 챘다. 윗층과 아래층 다 확인해보니 아직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 다행이다. 


방을 열자마자 어떻게 이런 음식을 스위스까지 가져왔는지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반찬종류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리고 국을 포트에 끓이다가 혹시 호텔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그것은 모두 행복하지 않은 여행마무리가 될 수 있으니, 아쉽지만 마른반찬 위주로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어 바로 먹을 수 있는 국으로 중간점을 다 함께 찾았다. 


집에서 만든 양념된장을 포함, 3분 카레, 깻잎, 멸치볶음 그리고 블록으로 1인용 포장되어 있는 미역국까지 모두 빠르고 정확하게 셋팅된다. 하지만 상이 없고 바닥에 신문지 깔고 먹으니 시장판이 따로 없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수학여행온 소녀들처럼 모두 한마음으로 즐거운 분위기였고 여행 마지막인 날인 만큼 여행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여행자 한 분은 “내가 나이 육십이 넘었는데 진짜 이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야. 세상에 호텔 바닥에서 이렇게 교양 없게 먹다니 진짜 잊지 못할 추억이다 얘, " 비싼 스위스까지 여행 와가지고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을 다 함께 바닥에 앉아 먹고 있자 하니 다들 웃음이 나는 모양이었다. 


해외까지 나와 이렇게 밥을 궁상맞게 먹을 수 있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의 스위스 일정은 정해진 예산으로 인해 꽤 팍팍한 편이었다. 모든 여행자들이 팍팍하게 다니는 것은 아니었으나 여행계를 한 다음에 넘어온 팀었다. 그래서 가족여행이나 부부여행처럼 시작적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코스가 아니었다. 그들은 설명없이 최대한 많이 보고 즐기고 가고싶다고 사전에 이야기 한 팀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동시간이 많았고, 일정 내 현지식 음식을 밖에서만 먹다 보니 당최 한국음식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게 이 팀의 아쉬운 점이 된 것이다. 


체면을 세워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스위스 여행은 시간과 돈이 둘 다 충족돼야 오는 나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한국기준으로 스위스는 멀기도 멀고 비싸기는 왜 이렇게 비싼지! 게다가 개인가이드까지 신청하시는 분들은 조금 더 편하게 여행하고자 하시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도 그에 맞춰 최선을 다해 안내드리고 있다. 


대부분 내가 만나는 손님들은 좋은 분들이 많다. 10명 중에 9명이 좋았다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비행기 이동 중에 샤워도 하고, 좋은 곳에서 자고, 먹고 편하게 여행하는데 기분 나쁠 일이 일어나는 게 더 신기하다. 하지만 이 처럼 큰돈을 쓰고 오기에 당연히 기대치도 커진다. 그럼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뭘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가이드에게 제공받는 서비스가 여행의 퀄리티가 생각했던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했을 경우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별거 아닌 것에 나 또한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맘에 담아두면 내가 더 힘들어지다 보니 웬만해서는 잊어버리려 하지만 앞전에 내가 잘해준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잘해 주려한다. 하지만 한 번은 여행자분이 식당에서 결제를 하는 과정에 면전에서 망신을 당했다며, 일정 내내 괴롭게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내게 콕 집어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앞뒤 상황을 유추를 해본 결과 함께 온 동행자 앞에서 체면이 구겨진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들은 비즈니스 관계도 아니고, 그 둘의 사이가 기혼인지 아닌지 내 알바는 아니지만, 뭔가 묘한  내 상식선에선 도대체 그게 왜 체면이 구겨진 상황이었는지 나는 100% 이해는 하지 못했다. 더불어 내가 도대체 무슨 사람이라고 그 사람 체면을 그것도 식당에서 깎아버렸을까 싶었다. 하지만 결론은 그 사람이 나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졌고 내가 '을'이니 내가 숙이고 들어올 것을 기대했는데, 내가 먼저 미안한 기색을 하지 않으니 기분이 더 나빴던 모양이었다. 


당시 그 여행자분들과는 여행 중반쯤이었지라 나는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다음 날, 미팅시간을 30분 늦추고, 나는 마음 정리를 하기 위해 호텔 근처의 성당으로 향했다. 당연하겠지만 맨 정신으로 그 커플을 다시 만나 마치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내가 도망칠 수는 없으니, 성당의자에 일단 앉아 아주 오랜만에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 주님은 마치, 미리 전화라도 하고 오지 이렇게 아침 댓바람부터 와서 마음 후루룩 털어놓는다고 그 큰 상처가 30분에 사라질 것 같냐고 대답하시는 것 같았다. 일단 긴급처방 해줄 테니 잘 알아서 마음을 다스려 보라고 말하신 것 같기도 하고. 이후 나는 팀과 여행은 마무리했다. 그분도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딱히 느낌이 오진 않았다. 하지만 다행인 건 그분들이 일정 내 좋은 호텔, 그리고 굉장히 만족할만한 식사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참 다행이다. 음식이라도 안맞았으면 더 최악의 시나리오였을텐데 말이다. 그 팀 이후로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체면치레"에 영향이 갈 만한 행동에 극도로 주의하게 되었다. 특히 40대 이상 남성들에게는 각별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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