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키 Oct 14. 2023

여자도 주방일 하기 싫은데요

그건 당신이 하면 어때요?

난 살면서 단 한번도 주방일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여기서 주방일이란 요리와 설거지는 물론이고, 요리하며 흘린 양념 따위를 조리대에서 닦아내는 행위까지 포함된다. 냉장고를 관리하는 일, 요리를 위해 장을 보는 일, 밀폐용기 뚜껑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로 '주방일'에 포함된다.


다행히 우리 집은 싫다는 걸 강요하지 않았고 서로 잘 하는 것을 분담했다. 집에서 나는 빨래와 정리, 쓸기를 담당한다. 동생은 닦기와 요리를 담당하고, 엄마는 요리와 화장실 청소를 담당한다. 


'지대넓얕'의 독실이는 빨래 편에서 집안일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쓸기'와 '닦기'가 그것이다. 쓸기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정리, 빨래, 청소기질이다. 닦기에는 설거지, 걸레질, 물청소 등이 해당된다. 내가 느끼기로는 주방일의 대부분은 '닦기'에 해당한다.



서른이지만 밥은 못 차리는데요.

나이 서른을 바라보지만 사과 하나 제대로 깎아본 적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수박이나 파인애플처럼 먹기 어려운 과일은 큐브 형태로 파는 것이 좋다. 다함께 놀러가 역할을 분담할 때에도 가급적이면 주방일이 아닌 다른 일을 찾는다. 조금 더 수고스러운 일이더라도 그게 마음이 편하다.


주방일과 친해지지 않은 이유는 아마 내가 식(食)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듯 하다. 내게 있어서 식사는 평생 '살기 위해 필요한 영양소를 채워넣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등장하는 '포만감과 영양소를 해결해주는 알약'이 나온다면 가장 먼저 구매할 사람이 나다.


그럼 평소에 밥에 김치만 먹고 사느냐 하면 또 아니다. 음식에 별 관심은 없지만 늘 신선한 재료를 가게에서 가져오는 엄마, 미각에 유달리 예민한 아빠의 영향으로 맛에 대해서는 예민하다. 한식 양식 일식에 베이킹까지 잘 하는 동생 덕분에 맛에 대한 기준은 점점 더 높아져가고 있다. 내가 요리를 해서 먹지는 않지만 맛있는 음식은 좋아한다는 뜻이다.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울 바에는 차라리 굶는 게 낫다.



컵라면은 끓일 수 있어요.


연애가 시작될 때마다 하는 이야기다. 실제로 난 짜파게티를 찬물에 헹군 적도 있고, 봉지라면을 끓이려다가 홍수난 한강을 재현하기도 했다. 물론 다시 그러지는 않겠지만, 그 후로 시도해본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이 (곧) 서른에 라면도 안 끓여본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하루는 국을 데우려다가 냄비를 홀랑 태워먹었다. '언니는 인덕션 7 이상으로 쓰지 말 것'이라는 경고를 받은 것도 이 때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농담인 줄 알고 웃는다. 그러다 사귀게 되면 알게 된다. '진짜 못하는 거였구나'라고. 그렇게 만난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요리를 본인이 하고 설거지는 내가 하도록 했다. 양심이 있으니 군말없이 했다. 어떤 사람은 굳이 싫어하는 일 하지 말라며 요리와 설거지 둘 다 본인이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함께 마실 커피나 간식을 사오곤 했다. 둘 다 내게 있어서는 고마운 배려였다.



일하러 가는 남편 아침은 먹여야지...

나의 MBTI는 INTJ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 상상력이 풍부한 'N'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나는 대중교통에서, 도서관을 가면서, 잠들기 전에 뒤척이며 '만약에...'로 시작하는 상상을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일 하느라 고생하는 지아비에게 따뜻한 아침을 차려줘야지!'라는 대사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하다. 요즘도 인터넷에서는 '시댁 썰'로 종종 보이지만, 그래도 '아내가 남편의 식사를 챙겨줘야 한다'는 인식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그런 가족을 둔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을지조차 미심쩍다. '나는 고생하니까 상대방이 식사를 차려줘야 마땅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한 건 없다.(내가 늘 새기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떡을 썰고 너는 글을 쓰고


결국 중요한 건 상호합의다. 나도 주방일을 좋아하지 않으니 이걸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물론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여자라서 하고, 남자라서 안 하고가 아니다. 서로 즐길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대화를 통해 협의하면 된다. 문제는 보통 이 대화가 없어서 생긴다. 둘 다 싫어하는 일이 있다면 적절히 나누거나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 예를 들어 둘 다 설거지를 싫어한다면 좋은 식기세척기를 구입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여자니까 이런건 해야지"

"남자가 이런 것도 못해?"


라고 말하지 말자. 촌스럽고 구시대적이다. 

대신 서로 할 수 있는걸 이야기하고 역할을 나누자. 

작가의 이전글 돈 안 되는 글을 쓰겠다는 각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