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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키 Oct 30. 2023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는 '남자'가 없다

아시타카, 하울에 이어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마히토까지

동생과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즉흥적으로 예매권을 사서 본 영화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지브리 그 자체이자 이름 일곱 자 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찐)마지막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것 정도는 듣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영화 시작 전 짧게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성우 라인업이 굉장했고 삽입곡도 요네즈 켄지가 했더라. 역시 거장의 작품이다. 아이묭, 스다 마사키같이 젊고 인기 많은 배우(가수)부터 기무라 타쿠야같은 국민 배우까지 성우로 참여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후기에서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 이정도로 이해가 안될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전개이며 감정선이 연결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됐다. 아무리 최근 몇 년을 머리쓰며 숨은 메타포를 찾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이해가 안될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영화에 몰입이 안 되니 중반부 부터는 '뇌를 빼고' 보기로 했다. 이 혼란스러움도 거장이 유도한 것일거라 생각하며 뇌에 힘을 빼고, 그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겼다. 


주인공 마히토는 어머니를 화재로 잃고 시골로 이사를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사한 시골집은 다다미가 있는 도쿄의 전통적인 집과 달리 서구적인 집인데, 마히토는 침대가 있는 서양식 방을 사용하게 된다. 짐가방을 내려놓은 마히토가 긴장이 풀려 침대에 쓰러져 잠에 드는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브리에는 '남자'가 없구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


당연히 생물학적인 남성은 등장한다. 여기서의 '남자'는 흔히 말하는 남성의 성역할과 특징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지브리에는 '마초'가 없다. 으레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성 캐릭터의 특징이 찾기 드물다. 이를테면 호전적이고 경쟁심이 강하거나, 무력이 강하거나, 거칠고 빠른 추진력이라던가.


반면 지브리에 나오는 남성들은 하나같이 심성이 유약하거나, 두려움이 있거나, 온화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죄다 '약해빠졌다'. 대표적인 작품의 주인공을 하나씩 뜯어 보자. 


귀를 기울이면(1995)


지브리의 '유약한' 남자 주인공의 시작은 '귀를 기울이면(1995)'의 세이지가 아닐까? 요즘에야 공부 잘하고 다정다감한 남자 주인공이 인기가 많다지만 1995년엔 한창 '남자다운 남자'가 유행할 때이다. 그런 시기에 남들 야구하는데 구석 벤치에 앉아 책읽는 남자 주인공이라니. 심지어 진로도 음악 쪽이다. 밴드의 드럼이나 기타를 치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깎아 바이올린을 만드는 게 꿈인 남자다. 클래식의 통상적인 이미지와 세이지 캐릭터를 연결해보면 그가 '일반적인 남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원령공주(1997)


틀에서 벗어난 남성 캐릭터는 '원령공주(1997)'의 아시타카로 이어진다. 그는 목에 칼이 들어온 상황에서도 기가막힌 말빨로 임기응변을 보여 살아남은 인물이다. 전쟁을 반대하며 숲과 도시 사이에서 그들을 중재하며 싸움을 멈추려 한다. 그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타인에게 공감하고, 정성스럽게 약자를 돌보고, 걱정하며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에(사실 지금도) 이런 특징들은 대표적인 '여성스러움'으로 취급되며, 여성 캐릭터에게 부여되는 특징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그 역시 '일반적인 남자'는 아닌 듯 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미야자키 하야오의 '특이한' 남성 캐릭터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에서 정점을 찍는다. 세상에, 실연좀 당했다고 멘탈과 몸이 (말 그대로) 녹아내리는 주인공이라니! 마녀가 무서워서 집에 처박혀 방에 부적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남주라니!! 전쟁도 무섭고, 싸우기 싫다고 말하는 것마저 무서워 남의 입을 빌리는 남자가 바로 하울이다. 비주얼이 워낙 돋보적이라 많이 가려졌지만,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면 그야말로 찌질함 그자체 아닌가. 


마루 밑 아리에티(2010)


'마루 밑 아리에티(2010)'의 쇼우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몸까지 아프다. 심장이 안 좋은 그는 뛰지도 못하고,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그 역시 일반적인 남자 주인공의 특징은 하나도 없다. 쇼우의 특징은 책을 좋아하고 또래 남성 집단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바람이 분다(2013)'의 주인공 지로와도 비슷하다. 


원령공주(1997)


사실 지브리에는 여성이 더 강인한 경우가 많다. 가장 두드러진건 원령공주지만, 그밖에도 나우시카, 포뇨, 소피 모두 스스로 결단하며 행동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관적이다. 그녀들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되어 앞길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의 ㅍ(f)도 없었을 시기, 게다가 여성의 순종을 중요시 하는 일본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그의 가치관은 여러모로 앞서있었던 것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그나마 일반적인 남성 캐릭터는 오히려 하쿠가 아니었을까? 여주가 의지하고(사실 서로 의지하는 것에 더 가깝긴 했지만) 이끌어주며, 때로는 공격을 담당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하쿠가 그나마 전통적인 남성 캐릭터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지브리 작품의 남성들은 대부분 '유한 성정'을 지니고 있다. 아마 미야자키 하야오의 기질이 투영된 걸까? 그는 왜 일반적인 남성의 특징을 다루지 않을까? 잠시 그의 머릿속을 훑고 싶어진다. (관련 인터뷰가 있다면 댓글로 공유 부탁드립니다ㅎㅎ)



원령공주(1997)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2023)

(덧붙임) 영화를 보며 문득 지나간 생각인데, 하야오는 세상에 순수하게 선한 존재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원령공주에서는 숲의 정령같은 '코다마'가 나오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와라와라'가 나오기 때문. 미친 귀여움을 가진 와라와라는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이다. 이름마저 귀여운데, 일본어로 직역하자면 '웃음웃음'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작품에 등장하는 '순수 선을 지닌 무언가'도 감독의 세계관과 시각을 보여주는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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