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짐을 미리 싸두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여행 직전 일에 몰두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이렇게 정신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인데 우리 괜찮겠지?" 남편을 향해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빙하를 보러 가는 것이니 당연히 따뜻한 옷을 챙겨가야 할 것이고, 지금 밴쿠버는 한 여름이니 결국 두툼한 옷부터 얇은 옷까지 사계절 옷을 챙겨야 했다. 최소한으로 짐을 싸서 가볍게 떠나려고 했으나 아이가 셋인 다섯 식구에겐 아직 무리다.
여권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면 바로 책과 노트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뒤로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게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매번 책을 챙겨간다. 내게 잠깐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책을 찾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싶은데 곁에 책이 없는 것만큼 여행에서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 상황은 없다. 못 읽게 되더라도 일단 챙기는 게 답이다!
책을 읽다가 가슴에 남는 한 줄이 있다면 그 순간의 장소, 날짜와 함께 꼭 기록에 남겨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노트를 다시 들춰보았을 때 글을 쓸 때의 감정과 여러 순간들이 선명하게 흘러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여행을 회상하는 가장 짧고 강렬한 방법이다. 나는 노트와 함께 펜도 챙겼다.
나는 결국 여행 당일 아침에야 짐을 다 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을 나섰다.
난생처음 크루즈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캐나다 플레이스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이 탈 배라고 생각하니 그동안 몇 번 보았던 배이지만 이번에는 감회가 새롭다. 배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배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바다 위에 있다는 점만 달랐지 고급 호텔에 있는 기분이다.
사실 크루즈를 떠날 때 걱정 반 설렘 반이었으나 찬란한 햇살이 비친 드넓은 바다 위에 앉아서 첫 식사를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황홀함, 벅차오르는 기분은 도무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거대한 '뿌' 소리와 함께 배가 출발을 알린다. 사람들이 크루즈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배 위의 사람들도 함께 손을 흔든다.
"아, 내가 진짜 떠나는구나" 이제야 좀 실감이 나려고 한다. 하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어떤 여행이 펼쳐질지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