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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31. 2024

아이의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엄마, 일 년이 진짜 금방 지나가.”

“그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시간이 너무 빠르다.”

“내일이 빨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게. 졸업이라니. 엄마도 괜히 기분이 좀 그렇네.”

“엄마 내일 눈물 예약이야?”

“아무래도 엄마는 울 것 같은데?”


유치원 졸업을 하루 앞둔 아이는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졸업식 행사로 준비한 노래가 다 외워지지 않아서 불안하기도 하고, 무대에 오를 일이 떨리기도 하면서, 좋아하는 선생님과 이별이 아쉽기도 하고, 매일 만나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일이 슬프기도 하며, 코앞으로 들이닥친 초등학교 입학이 두렵기도 한.


내일 졸업식을 위해 선생님들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감성적인 면이 있지만 부끄러움도 많은 아이라 지금껏 선생님들께 편지를 쓰자고 했을 때 한 번도 그러자고 한 적이 없던 아이였다.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인지 이번에는 제가 먼저 선생님께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그럼 엄마도 선생님께 편지를 쓰겠다고 하고는 저녁 시간 내내 함께 엽서를 색칠하고 편지를 썼다. 아이는 선생님 두 분께, 나는 졸업을 맞은 아이와 선생님 두 분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둘째도 덩달아 어린이집 친구 한 명과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이별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느라, 오랜만에 집안 전체가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어린이집 졸업에 이어 두 번째 졸업이지만, 아이에게는 이번 졸업이 큰 의미였다. 어린이집 졸업 때는 별다른 서운함도 아쉬움도 드러내지 않던 아이가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는 시간이 너무 빠르다, 졸업하기 싫다, 유치원에 계속 다니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만큼 지난 2년이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내심 안도하기도 했다. ‘얼른 졸업해 버렸으면!’ 하며 졸업을 손꼽아 기다렸다면 그만큼 유치원 생활에서 힘든 점이 많았다는 반증일 테니.


아이가 유치원에 다녔던 2년을 돌이켜 보면, 감사할 정도로 무탈한 시간이었다. 아이는 한 번도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었고, 유치원 선생님께 아이와 관해 걱정할 만한 전화 한 통 받아본 적이 없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꽤 필요한 아이였지만 잘 적응해 주었고, 친구 관계나 과업 해결 등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끝내 잘 이겨내 주었다. 별다르게 상처받은 기억도 상처 준 기억도 없이,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많이 남겼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기적 같은 시간을 무사히 마쳤다.


아이는 졸업식을 준비하며 ‘졸업식에 오면 엄마가 울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 엄마가 얼마나 울보인지 아는 아이는 (대체 무엇을 준비했길래) 엄마가 울까 봐 걱정인 건지, 엄마가 울지 않을까 봐 걱정인 건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엄마 눈물 예약이야?”, “눈물 예약이지?” 질문인지 확인인지 알 수 없는 물음표를 던졌다. 엄마는 울 것 같다고 말해주면, 이유를 물었다. ”사랑이가 2년 동안 무사히 유치원 생활을 한 게 대견하고 기특하니까. 그리고 사랑이가 이렇게 금방 금방 자라는 게 아쉽기도 하고.“ 극 F인 나는 이유를 말해주면서도 왈칵 감정이 쏟아지는 걸 자주 참아야 했다. (진짜 졸업식에서 너무 오열할까 걱정이다.)


정말 아이가 졸업을 한다. ‘유아’에서 진짜 ‘어린이’가 된다. 이렇게 조금씩 자라고 자라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겠지. 품에 안고 있던 아가가 손을 잡고 걷는 아이로 자라고 손을 놓고 달리는 아이로 자랐다. 그래도 아직은 품 안에 쏙 안기는 아가 같은 아이인데, 이 시간도 그리 오래 남은 것은 아닐 테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금 더 자주 손을 잡고, 더 깊이 끌어안고,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선다. 시간이 흐르는 건 아쉽지만, 아쉬움 끝에 후회가 묻어나지는 않도록. 아쉬움 끝에 ‘그래도 우린 충분한 사랑을 주고받았다’ 담담하게 말할 수 있도록.


계단
- 진아(허서진)

네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
더 이상 나의 손은 필요치 않다
너무도 작아
곧 바스러질 것 같던 네 손을 잡고
한 칸
     두 칸
          세 칸
     두 칸
한 칸
내딛던 걸음의 기억
아스라이 머언
추억으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너의 생 앞에 놓일
끝없는 계단
숱하게 넘어지고 주저앉더라도
끝내는 너 혼자 오르고 내릴
너만의 계단

실은 혼자가 아니다
두어 칸쯤 위에서
두어 칸쯤 아래에서
아슬아슬 버티고 선 너를 향해
언제든 손 뻗을 준비된
내가 있다
너에게서 시선 거두지 않을
내가 있다

-<시의 언어로 지은 집>, 264쪽-


생의 한 챕터를 무사히 닫고, 새로운 챕터를 열어갈 아이에게 ‘네가 나아가는 길의 걸음마다 멀지 않은 곳에 엄마가 있다‘는 마음을 놓아준다. 그러니 끝을 아쉬워하되, 시작을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마음을 도닥인다.


“우리 아들, 졸업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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