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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Feb 19. 2024

<2월의 학교> 정든 학교, 사람들. 모두 안녕.

학교의 2월은 일 년 중 가장 어수선한 달이다. 공립학교는 4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2월 초가 되면 인사 발령이 난다. 매년 구성원이 바뀌는 셈이다. 구성원이 달라지니 업무 분장도 매년 새롭게 해야 하고, 담당 학년도 새롭게 정해야 한다. 떠나는 선생님과 머무는 선생님들을 모두 몸과 마음이 분주한 시기다.


올해 9년간 몸 담았던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4년에 한 번씩 이동이 원칙인데 9년이나 한 학교에 몸 담을 수 있었던 이유는 긴 육아휴직 때문이었다. 2년 전, 4년 간의 육아 휴직 후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날 줄 알았는데, 원래 있던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먼 거리를 감수하고 2년을 더 다녔고, 올해로 이 학교의 만기 근무자가 되었다. 올해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다시 휴직을 하게 되었지만, 더 이상 지금의 학교로 돌아갈 일은 없다. 올해 말이 되면 내신서(학교 이동 관련 서류)를 작성할 것이고, 내년 2월이면 새로운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될 것이다.


이 학교에 실제로 근무한 연수는 4년이지만, 9년 동안 학교 교직원 명단에 있다 보니 마치 이곳이 교직 생활의 친정 같이 느껴진다. 이 학교에서 나는 수많은 처음을 경험했다. 첫 고등학교, 첫 고1 담임, 첫 고2 담임, 첫 업무 부장까지. 그뿐이랴. 결혼, 첫 아이 임신과 출산, 둘째 아이 임신과 출산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니 인생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넘나드는 모든 처음을 이곳에서 겪은 셈이다.


학교 곳곳이 익숙하지 않은 곳이 없고, 학교 주변에 가보지 않은 식당도 거의 없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학교 주변 환경 덕분에 꽃 피고 낙엽 지는 풍경을 온몸으로 감상하던 시간이었다. 집과 너무 멀리 있어 출퇴근이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매일 고속도로를 달리던 출근길이 여행길처럼 느껴질 정도로 애정을 느낀 학교였다.


복직 후 2년간 수업을 함께 한 아이들은 종업식 날 편지를 전하기도 하고 눈물을 전하기도 했다. 우는 아이들을 안아주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동안 알려주지 않았던 전화번호도 알려주고 졸업 후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기도 했다. 담임도 아니었던 내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었던 아이들을 나 역시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많이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아이들과의 이별만큼이나 동료 선생님과의 이별도 애틋했다. 무수히 많은 동료를 만나왔지만 올해 선생님들은 유난히 특별했다. 한 교무실을 썼던 일곱 분의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따뜻한 분들이셨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엄청난 행운인지 알게 된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끼리 결이 맞지 않으면 그곳이 결국 지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한 해는 기적이고 행운이었다.


매주 공용 커피 머신을 청소해 주시던 선생님, 매번 함께 하는 식사나 찻값을 몰래 먼저 지불하시던 선생님, 업무 관련 택배 상자가 도착하면 벌떡 일어나 함께 풀어주시던 선생님, 누가 힘든 일이 있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중앙 테이블로 모여 마음을 나누어주시던 선생님, 햇살 좋은 날 산책을 함께 하면 삶을 나눠주시던 선생님, 업무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면 자기 부서 일이 아님에도 나서서 도와주시던 선생님, 누군가 몸이 아파 수업이 힘들 때면 보강을 자청하시던 선생님.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덕분에 매 순간이 좋은 시간들이었다. 학교와의 이별도, 아이들과의 이별도 슬프지만 그분들과의 이별이 더 슬픈 이유다.


교사로서의 시간이 겹겹이 쌓이면서, 교사는 매년 이별과 마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정든 아이들과 이별하고, 정든 공간과 이별하며, 정든 동료와 이별한다. 꼭 같은 맥락으로 매년 새로운 인연에 익숙해져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사는 동안 교사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고, 상처도 받고 치유도 받는 직업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매년 마주하는 이별에는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올해처럼 후련함은 한 줌 먼지도 되지 않고, 아쉬움만 모래사장처럼 드넓을 때는 더욱 그렇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름답게 ’안녕‘ 하고 싶었는데.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고 머뭇거리게 되는 마음이라니.


그래도, 이제는 진짜 안녕.

나의 오랜 시간을 함께 해준,

나의 첫 고등학교.

HS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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