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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5. 2024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인사이드 아웃 2

스포 주의!!

(오늘 글에는 인사이드 아웃 2의 내용이 일부 요약되어 있어요. 영화 관람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주의해 주세요!  물론 내용을 아는 것과 상관없이 그 내용이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영화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나의 원픽 애니메이션이다. 아니, 굳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로 구분할 필요도 없다. 내가 평생 본 영화를 다 순위로 매기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만큼 좋아하는 영화다. 얼마나 좋았으면, <시의 언어로 지은 집>에서도 영화 대사 일부를 인용했다. 영화관에서도 두 번을 봤고, 이후 넷플릭스에서도 세 번을 봤다. 작년 여름 두 아이에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며 같이 보기를 제안했고, 우리 셋은 넷플릭스에서 인사이드아웃 1을 함께 봤었다. 영화를 본 후, 한동안 아이들은 자기 기분을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로 표현하곤 했다. “엄마, 나 지금 버럭이가 마음을 쿵 쳤어!”, “지금 슬픔이가 마음 버튼을 눌렀어.”라고.


이번에 인사이드 아웃 2가 개봉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 영화는 꼭 아이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날도 너무 더워서 바깥 활동도 하기 어려운 데다, 남편도 일이 있어 토요일 아침부터 집을 비운다기에 잘됐다 싶어 조조영화를 예매했다. 캐러멜 팝콘과 오렌지주스를 사들고 자리를 찾아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전이 되었다. 이제 두 아이는 갑작스러운 영화관의 암전 정도는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정말 많이 컸구나!


영화의 타이틀이 스크린에 뜨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번에는 새로운 감정들이 등장한다는데, 어떤 감정들일까! 일부러 기사도 보지 않고, 영화 소개글도 전혀 보지 않았다. 심지어 포스터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주인공 라일리가 청소년으로 자란 이후라고 하니, 사춘기의 여러 감정들이 등장할 거라는 정도만 예상했다. 사춘기의 아이들이라면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이라 그들이 보이는 여러 감정들 중 어떤 감정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까, 기대가 컸다.


라일리의 사춘기는 서서히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그래서 부모는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 엄마의 감정들은 이런 날을 예상했다며 매뉴얼대로만 하자고 하지만, 사춘기 라일리를 당할 수는 없다.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에게 새로 생긴 감정은 ’불안, 부럽, 따분, 당황‘이었다. 어떤 감정들이 등장할까 기대했는데 보자마자 ‘맞다! 딱이다!’ 싶었다. 그중에서도 메인은 ’불안이‘, 서브는 ‘부럽이’였다. 간간히 따분이가 라일리를 무기력하게도 하고, 당황이가 라일리의 얼굴을 붉게도 만들지만, 가장 핵심 감정은 불안이었다.


이전까지 기쁨이를 중심으로 슬픔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가 라일리의 여러 기억들을 잘 갈무리해 만들어 놓은 여러 신념들은 라일리의 ‘자아’를 긍정적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라일리는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고 믿으며 친구에게는 친절하고 부모에게는 다정하며 생활은 성실하고 성적은 우수한 아이였다. 하지만 새 감정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는 라일리의 자아상을 흔들기 시작한다. 특히 불안이는 라일리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부정적인 일들을 계속 상기시키며, 그런 일들에 대비할 수 있도록 무리한 계획들을 세워 라일리의 일상을 흔든다. 라일리의 긍정적인 자아는 서서히 파괴되고 새롭게 생긴 라일리의 자아는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라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만다.


어쩜!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를 이렇게 잘 묘사했을까. 사춘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업이다 보니 그들의 생활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이 많은데, 정말 영화 그대로다. 보통 학부모님들과 통화를 해보면 다들 하는 말씀이 ‘우리 애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요.“, ”애가 갑자기 변했어요.“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사춘기는 아이들의 마음에 불안을 심어놓는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을까,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친구들에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나는 왜 이렇게 못생겼지, 나는 왜 이 모양이지, 내가 튀어 보이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한다고 안되던 게 될까, 괜한 비웃음만 사지 않을까.’ 아이들 마음속에서 쑥쑥 자라는 생각의 대부분이 ‘불안’에 기인한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지만, 새로 생긴 감정들은 원래 라일리의 내부에 있던 감정들을 모두 의식의 끝으로 내쫓아버리는데 그래서 사춘기 아이들은 자기감정에 솔직하기가 어렵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불안이 너무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너무 부러운 나머지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지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일이 따분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대체로 당황스럽기 때문에. 기뻐할 일인지, 슬퍼할 일인지, 화를 낼 일인지, 조심할 일인지, 짜증을 낼 일인지조차 판단이 어려운 거다. 새로운 감정들에게 이전 감정들이 모두 밀려났으므로.


기존의 감정들이 무사히 감정 본부로 돌아와 라일리가 새로운 자아상을 형성하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나는데, 그 과정이 뭉클했다. 이전에 기쁨이를 비롯한 다섯 감정 친구들은 라일리의 자아상이 긍정적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라일리가 실패하고 실수한 일들을 모두 의식의 끝으로 던져버렸었다. 하지만 다섯 친구들이 감정 본부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실패와 실수의 기억들이 회복되면서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 라일리가 형성하는 자아는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긍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부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수도 없이 변한다. ‘나는 용감하지만 때론 두려워’, ‘나는 좋은 사람이지만 가끔은 한심하기도 해“처럼. 그렇게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모든 경험들이 라일리라는 한 인간을 형성하는 유일무이한 자아가 된다.


방금 두 아이가 잠들기 전, 아이들이 먼저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근데 그 불안이 있잖아. 지금 내 마음에는 걔가 없지? 근데 나는 불안할 때가 많은데?“

“음. 엄마 생각에는 지금 사랑이 마음속에 있는 불안은 소심이에 더 가까운 것 같아. 소심이랑 불안이는 닮은 면이 많거든. ”

“어떻게 다른 거야?”

“영화에서 보면 불안이가 라일리를 마구 조종하잖아. 다른 감정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잠도 못 자게 악몽도 꾸게 하고. 라일리는 ‘나는 왜 이모양일까’라고 생각하게 하고.”

“응, 그랬지.“

“그런데 사랑이 마음에 드는 불안은 사랑이의 모든 생활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건 아니지 않아? 가끔 불안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왜 이모양일까’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

“맞아. 나는 용기를 낼 때도 많지. 그리고 나는 내가 멋지다고 생각해.”

“나도! 나는 아예 불안 같은 건 없는데?”

“사랑이도, 봄이도 아직은 어려서 불안이나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는 마음속에 없을 거야. 만약 있더라도 아주 작을 거고. 그런데 너희가 중학생쯤 되면 그런 감정들이 마구 생겨나서 사랑이랑 봄이를 힘들게 할지도 몰라. 아니 무조건 생긴다고 봐야 해. “

”생기면 어떻게 해?“

“생기는 게 당연한 거야. 엄마도 그런 때가 있었고. 대신, 그런 감정들이 생기기 전에 라일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기억해?”

“나는 좋은 사람이다!”

”맞아, 그랬지! 엄마는 그게 중요한 마음인 것 같아. 불안이, 부럽이, 따분이, 당황이 같은 감정 친구들이 생기기 전에 사랑이랑 봄이 마음에 스스로를 믿고 좋아하는 마음이 먼저 생겨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새 감정 친구들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들과 금세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라일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좀 무서울 것 같아. 계속 불안하고 그러면.”

“그게 어른이 되는 거지.”

“으악~~ 나는 어른되기 싫은데!!!”

“어른되기 싫은 어린이들은 이제 그만 잡시다!“


아이들과 영화를 소재로 이렇게 다양한 감정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새삼 아이들이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든 두 아이 곁에서 살포시 빠져나와, 오늘의 대화가 잊히기 전에 이 글을 쓴다. 아이들이 자라고 자라, 어느 날 문득 사춘기의 신호를 보낼 때 우리가 함께 나눈 오늘의 대화를 꺼내보는 상상을 한다. 불안과 부럽, 당황과 따분 따위는 알지 못하던, 신나는 일상에 격하게 기뻐하고 눈물을 콸콸 쏟아낼 만큼 슬퍼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마음껏 까칠하고, 때론 상대를 당황시킬 만큼 버럭하고, 새로운 일 앞에서는 부끄럼 없이 소심해지기도 하던 오늘의 아이들을 기억하고 싶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는 것만큼 마음이 자라나는 일에도 마음을 기울일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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