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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28. 2024

언젠가 죽음의 순간이 온다면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엄마, 엄마는 책 읽는 게 좋아? 음악 듣는 게 좋아?

음.. 그건 너무 고르기 어려운데..? 둘 다 좋은데, 안 고를 수는 없어?

(매일 책을 읽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 놓는 나에게는 최고난도의 밸런스 게임이다.)

안 돼! 딱 하나만 골라 봐.

음.. 음.. 너무너무 어려운데.. 엄마는 음악 들으면서 책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한데...

그래도 안 돼. 하나만 골라 봐.

정말 둘 중에 딱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책 읽는 거?

그럼 책 읽는 게 좋아 커피 마시는 게 좋아?

하아...

(2월에 몸이 안 좋아 커피를 끊었다고 브런치에도 썼었는데... 몸이 좀 좋아지자마자 다시 찾은 것이 커피다. 커피 없이는 못 사는데....)

빨리~~~!

그래도 커피는 엄마가 한 번 끊어 봤거든! 그러니 책 읽는 거!

그럼 책 읽는 게 가장 좋은 거네? 글 쓰는 거는 안 좋아?

(예리한 녀석들.) 글 쓰는 것도 좋긴 하지만, 글 쓰는 건 힘들 때도 많아.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뜬금없이 밸런스 게임을 제안한다. 내 취향을 아주 잘 아는 아이들은 내가 고르기 어려운 것들만 골라서 밸런스게임을 시킨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고역인지! 문득 재밌는 생각이 났다.



얘들아, 우리 그러지 말고! 서로 좋아하는 거 말해보기 하자! 둘 중 하나 고르는 건 너무 어렵고, 돌아가면서 좋아하는 걸 말해보는 거야! 좋아하는 게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 어때?

(이구동성) 좋아!

그럼 엄마부터 말할게. 엄마 다음에 사랑이, 그다음 봄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말하자. 일단 엄마는 책 읽는 거!

나는 축구하는 거!

나도 엄마처럼 책 읽는 거!

엄마는 음악 듣는 거.

나는 방과 후 수업 한자 외우는 거.

나는 만들기 하는 거.

엄마는 커피 마시는 거.

나는 달리기.

나는 철봉에 매달리기.

엄마는 서점에서 책 사기

나도!

나도!

좋아, 똑같은 거 인정! 엄마는 꽃 좋아하지!

나는 동물 돌보는 거 좋아해.

나는 꽃 예쁘게 병에 꽂는 거

또 엄마는...

나는...

나는...



보기 둘 중에서 좋아하는 것 하나를 골라, 제일 좋아하는 것 하나를 찾아가는 밸런스게임에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좋아하는 것을 다 말해보는 것이 되었다. 우연히 시작한 대화였는데, 정말 스무 바퀴 가까이를 돌면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다 이야기했다. 어떤 것은 동사였고, 어떤 것은 명사였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구나, 한참을 이야기했다. 물론 아이들의 말 중에는 '그건 아까 말한 것과 비슷한 거 아냐?' 싶은 것도 있었지만(예를 들어,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해놓고는 뒤에 가서 클레이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세부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게 대수인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우리의 눈빛과 목소리에는 설렘과 기쁨이 한껏 묻어났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핑퐁처럼 한참을 주고받던 대화에서 가장 먼저 백기를 든 건 나였다.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엄마가 졌어.”라고 말했더니 둘은 아예 편한 소파로 옮겨가서 계속 좋아하는 것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을 더 주고받더니 둘도 말할 게 서서히 떨어지는지 "우리는 무승부 하자!"라며 다른 놀이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들 중에 내가 잘 알고 있는 것도 있었지만 의외의 것도 있었다.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놀이였는데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더욱이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의외의 효과를 냈다.


한동안 우울에 빠져 있었고, 나란 사람이 굉장히 싫어졌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참 동안 말하고 또 말하다 보니까 '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참 많은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나에게는 무언가를 열심히 좋아할 만한 에너지가 있고, 그 마음으로 참 많은 것들을 좋아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삶에 대한 열정일 것이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하다, 불현듯 과거의 일기장이 떠올랐다.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기억이 났다. 일기장을 뒤졌다. 일기장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언젠가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이 온다면.
난 평생 동안 좋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어.
내 마음은 여태 내가 좋아해 온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로 가득해.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음의 순간은 결코 예측할 수 없겠지만, 만약 그 순간에 내가 아이들에게 유언을 남길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진다면, 정말 그렇게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는 평생 동안 좋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좋아했어. 엄마 마음은 여태 엄마가 좋아해 온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로 가득해.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고 사랑했던 건 바로 너희 둘이었어. 덕분에 엄마의 삶은 더할 나위 업이 행복했단다. 그러니 너희 둘도 엄마의 빈자리를 슬퍼하지 말고, 엄마처럼 많은 것들을 좋아하는 삶을 살아. 무엇이든 열렬히 좋아하고 사랑하며, 이 생을 만끽하렴."



(번외 편)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 아주 가깝게 지내는 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동생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최근에 이런 생각했어. 내가 죽었을 때 우리 00이 "엄마, 고생했어. 거기서 편하게 쉬어."가 아니라 "엄마 잘 가 거기서도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었음 좋겠다고. 내 아이에게 내 삶이 행복하고 즐겁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그러니깐 좀 우울이 걷히고 즐겁게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동생의 말을 듣고, 크게 울컥했다. 정말이다. 내 아이가 나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잘 살았다는 것일 테니까. 동생의 저 말 덕분에 생에 드리운 우울이 순간 걷히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사랑이와 봄이에게 꼭 저런 말을 듣는 삶을 살아야지. 이제 우울은 조금만, 기쁨과 행복은 많이. 그렇게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잘 엮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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