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제주에 와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바다 물놀이와 승마였다. 바다 물놀이는 실컷 했지만 승마는 아직 한 번도 하지 못했다며, 얼마 전부터 아이들은 언제 승마하러 가냐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날씨가 너무 덥다는 이유로 미루어두었는데 며칠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더는 미룰 명분이 없었다. 마침 주말이라 남편도 온 김에 함께 승마체험을 하러 갔다.
해변 근처를 도는 승마체험 코스를 예약하고 넷이 함께 말에 올랐다. 아이들은 제주에 올 때마다 승마체험을 한 터라 제법 익숙한 모습이었는데, 나와 남편은 처음인 탓에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각자의 말에 올라탄 채로 말을 끌어주시는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아 삼십 분간 말을 탔다. 늘 익숙한 일만 하던 나는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을 하며 기분 좋은 낯섦을 느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나를 낯선 세계로 데려다준다.
점심을 먹고 집 근처 동백 동산에 갔다. 아마 제주에 한 달 동안 살아보는 여행이 아니었다면, 동백이 피지 않는 계절에 동백 동산에 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숙소와 가깝기도 했지만 서우봉과 비자림을 걸으며 숲의 매력에 흠뻑 빠진 터라 오늘도 숲의 기운을 받고 싶었다. 별다른 정보도 없이, 그냥 표지판만 보고 찾아간 동백 동산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숲이었다. 지금은 시기상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도 아니라서 우리 넷을 제외한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깊은 숲에는 무성하게 잎을 틔운 나무들과 주변을 가득 채운 푸른 풀들, 낯선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만 가득했다.
“엄마, 여기 좀 으스스한데?”
“많이 무서우면 여기서 돌아나갈까?”
“아니야. 그래도 조금 더 가볼래.“
총 5Km 정도 되는 탐방로였는데, 아이들은 채 500m도 가지 못한 지점에서부터 무섭다, 으스스하다, 뱀이 나온다는데 물리면 어쩌냐, 겁이 난다 등등의 이유로 주춤거렸다. 그때마다 그만 돌아나갈지 물었지만 그건 또 싫다고 했다. 어찌어찌 길을 걷다 보니 1Km를 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되돌아 나가는 것보다 계속 나아가는 것이 출구에 더 가까워지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엄청 씩씩한 척했지만 나도 좀 으스스했다. 서우봉이나 비자림과는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인적이 너무 없으니 숲의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습지를 품은 동산이라 그런지 공기도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졌다. 분명 맑은 날씨였는데, 숲에는 해가 잘 들지 않아서 한낮인데도 조금 어둑한 느낌까지 들었다. 첫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숲을 걸으며 우리는 무사히 이 숲을 빠져나갈 거라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숲길을 걷고 싶어서 갔는데 숲에 갇혀버린 기분..)
다행히 숲에는 100m마다 번호판이 붙어 있었다. 1번에서 시작한 번호판을 순서대로 찾아 걸으며, 목적지인 53번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했다. 아이들은 언제 도착하냐며 힘들어하다가도 다음 번호판을 찾으면 금세 목소리의 톤이 높아졌다. “엄마! 이제 15번이야!”, “엄마! 이제 24번이야!” 아이들만큼이나 나도 번호판의 숫자가 더해질 때마다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두 시간 가까이 걸어서 결국에는 53번 번호판을 만났고, 우리는 숲에서 빠져나왔다. 아이들과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와! 우리가 해냈다!”. “엄마, 드디어 빠져나왔어!” “다들 대단하다!!”라고 외쳤다. 산책 삼아 갔던 숲에서 맞이한 결말치고는 꽤 비장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나는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저녁 설거지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두 아이는 오늘도 평소보다 조금 늦은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아늑한 식탁 조명 아래에서 글을 쓴다.
예상치 못한 깊은 숲에 들었던 하루, 오늘의 문장을 쓴다. ‘아무리 깊은 숲에도 끝은 있다.’ 오늘 내가 동백 동산의 숲길에서 아득함을 더욱 크게 느꼈던 것은 사실 다른 일 때문이었다. 휴직 전에 학교에서 만난 아이 중에 마음이 아픈 아이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그 사정을 가장 먼저 알게 되었고, 아이와 함께 하는 동안 그 아이의 마음을 보듬어주려고 많은 애를 썼었다. 다행히 아이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고 제 마음을 많이 보여주었다. 학교를 떠나고는 간간히 연락만 주고받았고, 한동안은 괜찮게 지내는 것 같아 안심하고 있었다.
아이가 다시 아프다고 했다. 다시 자기만의 깊은 숲에 갇힌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연락을 주고받는데 아이의 주변을 둘러싼 어둠이 너무나 짙고 깊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필 내가 숲에 갇힌 기분을 느꼈던 그 순간에.
깊은 숲에서 낯선 두려움과 마주하며 길을 걷는 동안 나를 계속 걷게 했던 것은 나와 맞잡은 첫째 아이의 손, 그리고 백 미터마다 길을 안내해 주던 번호판이었다. 누가 대신 걸어줄 수도 없는 길. 돌아갈 길도 아득한 길. 사방에는 낯선 동물들의 소리만 들리고 볕은 들지 않던 길. 자꾸만 주춤거리게 되고 마냥 두렵던 길. 그래도 끝까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와 닿아있다는 현실적인 감각과 얼마쯤 더 가면 확실히 끝이 있다는 안내 덕분이었다.
마음이 아픈 그 아이에게도 그런 것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막막한 숲 속에서 함께 걷자며 손 내밀어주는 사람, 얼마만 더 가면 이 숲은 끝이 나고 환한 바깥이 나온다는 안내판. 그런데 왜 아픈 아이들 곁에는 그런 것들이 그토록 귀하기만 한지.
어제 글, ‘도움을 구하는 것은 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역시 그 아이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어제 아이의 소식을 들었다.) 아이가 그 글을 읽지는 못하겠지만, 도와달라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다행히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이번에도 아이는 나에게 한번 더 도와달라고 말해주었다. 숲길을 빠져나오기 직전, 아이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건 정말 기적인가 싶었다. 내가 숲 속을 걸으며 출구를 찾는 동안, 아이도 제 출구를 찾아보겠다 마음을 먹어주다니.
아무리 깊은 숲에도 끝은 있다. 아무리 긴 터널에도 끝은 있고, 아무리 긴 밤도 끝은 있다. 그 말을 믿기 어려운 순간들이 내게도 있었지만, 끝내는 모두 끝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아직은 믿기 어려운 순간에 있는 그 아이에게도 이 진실이 무사히 전달되면 좋겠다. 오늘 내가 숲을 빠져나오며 환호성을 질렀던 것처럼, 그 아이가 긴 어둠을 뚫고 나와 크고 환한 환호성을 지르는 날이 왔으면. 반드시 그런 순간이 왔으면. 너무 늦지 않게, 꼭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