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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Sep 09. 2024

[27일 차] 엄마는 강하다.

밤새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목이 아프다 못해 입천장까지 아파서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잠들었다 깨길 반복하며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긴 밤이 가고 아침이 왔다. 병원이 여는 시간에 맞춰 바로 병원으로 갔다. 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아이들까지 태우고 병원에 가면서 조금 울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면서야 신분증을 두고 왔다는 걸 알았다. 밤새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티다 아침을 맞이한 터라, 차키와 휴대전화만 들고 나선 길이었다. 법이 강화되어서 신분증 확인 없이는 진료가 어렵다고 했다. 모바일 건강보험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폰에서 인증이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와야 했다. 겨우 신분증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가는데, 아까보다 더 눈물이 났다. 이렇게 아플 때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건 정말 서러운 일이구나.


편도선에 염증이 크게 생겼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도 편도선염을 자주 앓았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니 두 아이를 낳고 오롯이 혼자 24시간을, 그것도 한 달간이나 돌본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깨있을 때는 밥을 챙기든, 청소를 하든, 운전을 하든, 같이 어디에 놀러를 가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겨우 내 시간이 나면 그 시간도 아까워 글을 썼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것도 끄적여봤다.) 면역력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약을 한 뭉치 받아 집으로 왔다. 오늘도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할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겨우 아침을 해 먹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눈을 붙였다. 이내 점심이 돌아왔고 또 밥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보채지 않고 잘 놀아주어서, 다투지 않고 잘 지내주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점심약까지 먹고 나니 목의 붓기가 조금은 가라앉은 것 같았다. (드디어 침을 삼킬 수 있게 되었다!) 이럴 때 늘어져 더 쉬고 싶었지만, 며칠 전부터 타이어 공기압이 자꾸 빠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직접 타이어 공기압을 넣고도 불안한 마음에 점검을 받아봐야겠다 싶었다. 아이들과 타이어 점검도 받고,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도 반납했다. 그리고 다시 저녁. 삼시 세끼를 해먹이고 나니 하루가 갔다.




이곳에서 한 달을 보내며 내가 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보니 오늘은 이 문장을 쓸 수밖에 없다. ‘엄마는 강하다. ‘ 사실 나는 이 문장이 싫다. ‘엄마는 강하다’라는 문장이 세상 엄마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서. 너무 많은 책임을 지우는 것 같아서.


나는 강한 엄마 아래에서 자랐다. 엄마는 남편이 없었고, 그러니 나에게는 아빠가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고된 세월을, 오직 엄마라는 이유로 버티고 견디고 살았는지 알고 있다. 물론 엄마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전부를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을 쓰면서 조금은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엄마의 세월이, 여렸던 엄마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었는지. 비위가 약한 엄마가 정육점에서 일을 하며 갓 도축되어 들어오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매일 봐야 했던 것도, 45킬로그램의 엄마가 백화점 아동복 매장에서 일을 하며 무거운 옷상자를 번쩍번쩍 들어야 했던 것도. 모두 오직 엄마였기에, 엄마는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견뎌낼 수 있었음을.


나의 엄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식을 위해 당신의 삶을 바치는 엄마들은 세상에 참 많고도 많았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읽을 때마다, ‘엄마’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생각했다. 나는 과연 그런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두렵다가도, 아니 꼭 그런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걸까, 반발심이 일기도 했다.


이곳에 와서 오직 엄마로 한 달을 살았다. 다른 모든 역할을 열외로 해두고, 오직 엄마로만. 두 아이는 오롯이 내 책임이 되었다.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 몫을 대신해줄 사람들이 없는 곳이니까.


예를 들면 이런 일들. 이곳은 제주에서도 산 쪽이기 때문에 곤충과 벌레들이 엄청 많다. 나는 벌레를 정말 무서워하는데, 이곳에서 지네만 두 번을 잡았다.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나밖에 잡을 사람이 없으니. 타이어 공기압 넣는 법을 배워오긴 했지만 써먹을 줄을 몰랐는데 벌써 두 번이나 공기압을 넣었다. 이제껏 운전 경력이 10년이 넘지만, 보닛을 열어볼 일이 없었는데 여기서만 두 번을 열었다. 침을 삼킬 수 없을 만큼 아파도 아이들의 삼시 세 끼를 해 먹였다. 이곳은 배달의 민족이 ‘펑’인 지역이다. 아팠던 며칠 간도 매일 빨래를 하고 널고 개었다. 아마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감당할 필요가 없었던 일들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강하다. 이제는 부정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되고 전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되었다. 지킬 생명이 둘이나 되는데 강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 아이들을 무사히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 강해져야겠지. (이제 좀 덜 강해져도 될 것 같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내 뿌리가 깊어야 두 아이를 품을 품도 더 깊고 넓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 어제의 문장을 복기하며 글을 마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몸과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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