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네 번째 책이 출간된다. 네 번째 책의 제목은 <다정한 교실은 살아 있다>이다. 이곳, 브런치에서 연재했던 ‘다정한 교실은 살아남는다’라는 매거진을 통해 출간 제안을 받았으니, 이번 책은 브런치에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나저나 네 번째 책이라니!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을 썼을 때가 4년 전이니, 매년 한 권의 책을 쓰고 있다.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의 저자 소개말 끝에 ‘쓰고 또 쓰는 작가의 삶을 꿈꾼다’라는 문장을 썼는데, 정말로 꿈을 이룰 줄이야.
네 번째 책은 학교와 수업 이야기를 다루는 교육 에세이이다. 어쩌다 보니 앞서 써낸 책부터 이번 책까지 나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들을 모두 꺼내어 썼다. 첫 책 <엄마만으로 완벽했던 날들>에서는 딸이라는 역할, 두 번째 책 <쓰다보면 보이는 것들>에서는 작가라는 역할, 세 번째 책 <시의 언어로 지은 집>에서는 엄마라는 역할, 곧 출간될 네 번째 책 <다정한 교실은 살아 있다>에서는 교사라는 역할까지 써냈다. ’나‘를 모두 털어 네 권의 책을 써낸 느낌이다.
모든 책이 저마다의 이유로 어려웠다. 첫 책은 말 그대로 첫 책이어서 어려웠다. 책이라는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던 왕초보 작가였으니, 글쓰기와 책 쓰기의 차이를 몸으로 배워가며 써야 했다. 너무 힘들었지만 그 책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책은 겨우 두 번째 책을 쓰면서 글쓰기와 책 쓰기를 말해야 한다는 것에서 심적인 부담이 컸다. 함께 써주신 선량 작가님과 정아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두 번째 책을 쓰지 못한 채 지금껏 글쓰기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부담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신 두 작가님 덕분에 세 번째, 네 번째가 가능했다. 세 번째 책 <시의 언어로 지은 집>은 적절한 ‘시’를 고르는 것도 어려웠지만 글 속의 나와 삶 속의 나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져 꽤 괴로웠다. 글 속의 나는 꽤 좋은 엄마인데 삶 속의 나는 그다지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을 때, 굉장한 죄책감을 감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책을 완성했고 그 책 덕분에 아주 조금은 좋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이번 책 <다정한 교실은 살아 있다>는 주제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사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브런치에도 거의 매주 학교와 수업 이야기를 쓰던 때였고, 나에게 학교와 수업 이야기는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것이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교사라는 직업에 매우 만족하는, 요즘 세상에 조금은 희귀한(?) 교사로, 수업을 통해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데에 한 치의 거짓도 없었으니까. 그런데도 책을 쓰겠다 결심하기까지 가장 오래 망설였고 깊이 고민했다. 학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요즘 같은 때에, 선생님들이 학교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일어나는 지금 같은 때에 이런 책을 써도 되는 건지. 학교가 좋다고, 수업이 행복하다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다정하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 생각해 보면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내 진심이 왜곡될까 봐.
그럼에도 끝내 써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다정한 마음을 내어준 동료들과 아이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존하는 한, 이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며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내 진심도 왜곡되지 않으리라 믿게 되었다. 결심만 서면 쓰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교직 생활 전체를 아우르는 글을 쓴다는 게 결코 쉬울 수 없었다.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고, 여러 기록들을 뒤져가며 글을 썼다. 역시나 초고의 대부분을 버리고 새로 썼다. 사적인 일로 우울을 앓으며 글을 쓰느라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는데, 때마침 마법처럼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글이, 이 책의 기획과 방향이 인정받은 것 같아 없던 힘을 쥐어짜 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 책의 화룡점정은 사실 내 글이 아니다. 책의 추천사를 누구에게 받으면 좋을지 출판사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오랜 제자이자 이제는 딸 삼은 아이를 떠올렸다. 3년 전 타 지역에서 교사가 되어 이제 나와 같은 길을 가는 그 아이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었으면 했고 출판사 대표님도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그러면서 대표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해주셨는데, 아이들과 다정한 마음을 주고받은 이야기이니 내가 가르친 제자들에게 짧은 응원의 말을 더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휴직 중이라 아이들과 직접 만날 일이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 되었지만, 나와 마음을 나눈 아이들 몇과는 지속적으로 안부를 주고받고 있던 터라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일이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짧은 응원의 말을 부탁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너무 기쁘게 내 부탁을 받아주었다. 자기들이 아니면 누가 써주냐며, 당연한 거라고 걱정 말라고도 했다. 아이들이 뭐라고 써줬을지 너무 궁금했지만, 내가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서 출간 때까지 궁금증을 안고 기다려야 했다. 내가 내 책 출간을 이렇게까지 기다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오늘 책의 최종교정본을 받았고, 아이들이 써준 응원의 말과 추천사를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첫 아이의 첫 문장을 보자마자 엄청나게 울었다.(옆에 있던 남편은 내가 누구의 부고를 들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아이들이 내게 보내준 진심을 보는 순간, 오열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교사로서 최선을 다해왔다는 걸 아이들이 알아주는 느낌, 내가 아이들에게 내어준 마음 이상으로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느낌. 지난 십여 년을 모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추천사를 받았다.
이미 출판사 인스타그램에도 공개된 응원의 말을 하나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선생님이 가꾸는 국어 교실에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다. 모든 아이가 국어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국어를 그저 교과 과목으로만 여기던 나는, 어느새 국어만이 품은 따스함을 애정하게 되었다. 아마도 선생님의 국어 교실을 졸업하는 모든 이가 성적표에 찍힌 숫자 그 너머에 국어의 진의가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선생님의 다정한 교실에 머물며 느낀 온기가 여전히 내 마음을 따스하게 덥힌다.
교사는 아이들을 평생 짝사랑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이들이 남겨준 문장들을 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시간, 나는 아이들과 깊고 진한 사랑을 주고받았다는 확신이 든다. <다정한 교실은 살아 있다>의 마지막 페이지를 완성해 준 나의 제자들, 그들 덕분에 이 책은 비로소 완벽해졌다.
곧 책이 나온다. 이번 책은 경기도 우수출판물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경기도에 있는 지역 서점에서 작게나마 북토크도 하게 될 것 같다. 교사라는 자아로 독자들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떨린다. 이 책은 나에게 또 어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줄까. 어떤 새로운 인연과 손잡게 해 줄까. 약간의 염려와 큰 기대를 품으며, 책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