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매거진과 브런치북으로 시작했던 학교와 수업 이야기를 종이책 원고로 다시 쓰는 중이다. 학교와 수업 이야기를 계속 쓰면서도 그것을 지금, 책으로 엮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교직 경력이 더 쌓이고 내공도 더 깊어진다면, 퇴직 전에 한 번은 학교 이야기를 출간하고 싶다는 소망은 있었지만 아스라이 먼 꿈이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투고도 아니고, 출간 제안을 받게 될 줄이야. 심지어 내가 아주 애정하는 출판사로부터.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계획하지 않고 써두었던 원고들을 갈무리하고, 새로이 목차를 잡아 초고를 썼다. 출판사에서 1차 검토가 끝났고, 지금은 전체적으로 초고를 다시 손보는 중이다. 아직 퇴고 단계라기엔 이르고 초고를 다시 쓰는 단계인 셈이다. 나름대로는 정성껏 썼던 원고를 통째로 버리고 새롭게 쓰는 일은 책을 쓸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여전히 속이 쓰리다. 이번 원고에서도 엄청난 수정 사항들을 요청받았고,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쓴 원고의 절반 이상을 새로 쓰는 중이다. 작가의 시선으로 썼던 초고에서 작가의 시선을 걷어내고 독자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해도 해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아쉬워할 수는 없다.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의 눈에 걸리는 원고라면 결코 독자에게 온전히 가닿을 수 없을 테니. 책을 쓴다는 건 독자와 지면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인데, 첫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재미없다 느끼거나 공감할 수 없다 생각한다면 이미 대화는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편집자는 이미 나와 한 배를 탄 애정 가득한 첫 독자이니!
원고 작업을 하면서 브런치에 통 글을 쓰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도 있었지만, 이번 원고 작업에 대한 부담감이 유난히 컸다. 이전 책들과 달리, 나의 직업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책이라 글에 대한 책임감이 지나칠 정도로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요즘 교직 사회가 여간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보니, 단어 하나하나도 조심스러웠다. 하루 중 나에게 할애된 서너 시간을 온전히 원고에 매달려도 한 문장밖에 쓰지 못하거나, 어떤 날은 한 문장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허다했다. 그렇다 보니 브런치에 다른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아주 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을 해보니 한 달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여러 번 고백하듯 말했지만, 브런치는 내 글쓰기의 고향이자 친정이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고, 첫 책의 출간 소식도 처음 전했다. 두 번째 책인 ’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공저)‘은 브런치에서 만난 두 작가님과 함께 썼던 매거진을 투고하여 출간한 책이었다. 세 번째 책인 ‘시의 언어로 지은 집‘은 브런치 매거진 ’시로 쓰는 육아일기‘를 본 출판사의 출간 제안으로 쓰게 된 책이고, 지금 쓰는 네 번째 책 역시 브런치 매거진 ‘다정한 교실이 살아남는다’를 통해 출간 제안을 받았다. 신기할 정도로 브런치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다. 브런치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기적은 다 누린 셈이다.
글쓰기가 버거워서, 잠시 등 돌리고 섰던 이곳에 다시 돌아와야겠다. 고향이자 친정은 그런 곳이니까.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곳. 모든 것의 출발지이자 끝내는 종착지가 되는 곳. 마치 친정엄마처럼, 오랜 고향 친구처럼 묵묵히 나의 글을 기다려주시는, 나의 글마다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애정을 보내주시는 독자들이 있는 곳.
여전히 원고 작업은 오리무중에 빠질 때가 많지만, 고향에서 에너지를 제대로 충전하면 다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 또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시 해설과 감상을 써볼까. 쉽게 배우는 문법 지식을 써볼까. 이제껏 써온 에세이를 또 써볼까. 요즘 푹 빠져 있는 소설을 써볼까.
한동안 어떤 일에도 달뜨지 않던 마음에 얕은 파장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