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Oct 30. 2024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글러브를 조여봅니다.

캐치볼(안희연)

[2024 시 쓰는 가을] 세 번째 시


캐치볼(안희연)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
불타는 공이었다

되돌려 보내려면 마음의 출처를 알아야 하는데
어디에도 투수는 보이지 않고

언제부터 내 손에 글러브가 끼워져 있었을까
벗을 수 없어 몸이 되어버린 것들을 생각한다

알 수 없겠지 이 모든 순서와 이유들
망치를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는 법이니까

나에게 다정해지려는 노력을 멈춘 적 없었음에도
언제나 폐허가 되어야만 거기 집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왔을 것이다
불행을 막기 위해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처럼
뭐든 미리 불태우려고
미리 아프려고

내 마음이 던진 공을
내가 받으며 노는 시간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

불타는 공이 날아왔다는 것은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인다

출처:<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캐치볼 해보셨나요. 캐치볼은 말 그대로 공을 잡는 놀이죠. 하지만 혼자 공을 던지고 받는 행위를 캐치볼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캐치볼은 보통 두 사람이 각자의 글러브를 끼고, 공 하나를 주고받는 놀이를 이르는 말로 쓰여요.


이 시의 제목은 ‘캐치볼’입니다. 그런데 첫 연에서부터 공이 ‘예고도 없이 날아들었다‘라고 합니다. ’나‘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공 하나를 받았어요. 심지어 ‘불타는 공’을요.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출처를 알 수 없는 공이라 되돌려 보낼 수도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이미 무언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던 몸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순서도 이유도 알 수 없는 일들, 그런 일들로부터 마음을 지키고자 애썼던 날들, 마음이 불타서 폐허가 된 후에야 그곳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들, 그런 것들이 떠올라요.


‘나’는 그제야 출처를 알 수 없던 ‘불타는 공’이 왜 날아왔는지 짐작하게 됩니다. ‘불행을 막기 위해서 더 큰 불행을 불러내는 주술사’라고 표현해요. 훗날 뜻하지 않은 공을 맞아 마음이 폐허로 변하기 전에, ‘불타는 공’을 맞으면 많이 아플 거라고 ‘미리‘ 알려준 경험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시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결국 지금껏 길게 말해온 ‘불타는 공’은 사실 ’내 마음이 던진 공‘이었던 셈이에요. 상대가 던진 공을 주고받는 캐치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공은 ’내 마음’이 ‘나’에게 던진 공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지평선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연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무언가가 끝나는 지점, 아득한 곳,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곳이 주는 고독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내가 ‘나’에게 ‘불타는 공’을 던지며 스스로의 마음을 불태우고 아프게 하는 시간이 주는 고독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요.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일으켜봅니다. 아직 ’불에 탈 무언가가 남아 있다‘라고 믿어보기로 해요. 마음속에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은 아직도 지켜낼 무언가가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불타는 공’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나는 글러브를 단단히 조-’입니다.


살다 보면 타인으로부터 들은 말, 받은 눈빛 등이 ‘불타는 공’으로 날아와 마음을 폐허로 만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 공쯤이야 안 받으면 그만이지 싶지만 사실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요. 안 받으려고 했는데, 돌아서려 했는데 이미 내 손에 잡힌 ’불타는 공‘은 어쩔 수 없이 ’나‘를 태우고 ’나‘에게 치명상을 입힙니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갖은 애를 쓰더라도, 그렇게 되는 날들이 있어요. 그런 날이면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불타오르는 내 마음을 그저 견디며 지켜보는 수밖에요.


그런 날, 이 시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이 들 때면, 그만큼 내 안에 지킬 것이 많았던 거구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가 던지는 공 따위! 받아버리고 말지!‘ 하는 단단한 마음으로 글러브를 단단히 조일 수 있는, 단단하고 당당한 우리가 되었으면 해요.


그러기 위해, 일단 제 글러브부터 잘 조여보겠습니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한 날, 이 시를 읽고 해설하며, 여러분께 드릴 수 있어 조금은 기쁜 밤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