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교환 일기

by 진아

벌써 22년 전 일이다. 나는 엄마와 둘이서 교환일기를 썼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왜 엄마와 교환 일기가 쓰고 싶었을까?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교환 일기 쓰기가 유행이었다. 소곤소곤 우리끼리만 하고 싶던 그 이야기들을,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 내내 조잘조잘 떠들었어도 미처 다하지 못했던 그 이야기들을 우리는 일기장 한 권을 나눠 쓰면서 풀어냈다. 가끔은 서넛이 모여서 쓰기도 했지만, 대개는 단짝이었던 친구 둘이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나는 왜, 보통은 부모와의 대화를 꺼리는 중2 사춘기 때에 엄마와 교환 일기가 쓰고 싶었을까.


엄마와 나의 교환 일기장들

엄마와의 교환 일기를 얼마나 썼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친정집에 남아 있는 것은 세 권, 그 세 권 속에는 엄마가 중학생이었던 내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과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삐삐를 사고 싶다고 엄마를 조르던 철없는 나의 이야기, 조곤조곤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엄마의 이야기, 3박 4일간의 캠프를 떠날 나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하는 엄마의 이야기, 캠프를 다녀와 있었던 일을 전하는 나의 이야기, 엄마가 읽었던 좋은 글들, 엄마를 위로하는 나의 글들까지. 잊고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 살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셨다. 엄마는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막연히 엄마가 혼자서 우리를 키우니 힘들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힘듦의 깊이를 알지는 못하고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내내 우리에게 “힘들다, 지친다, 버겁다” 그런 말들을 쏟아부었다면 나와 동생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단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엄마에게 더 이상 무슨 좋지 않을 일이 있었을까 싶지만, 세상은 엄마에게 그리 녹록지 않았다.), 삶이 너무 힘에 겨울 때, 침묵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다. 엄마의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우리가, 주로 내가 엄마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 때에도, 오랜 시간 침묵하는 것으로 엄마의 마음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침묵이 견디기 어려웠다. 외향적이고 때론 즉흥적이기도 했던 내 성격상 마음을 드러내 놓지 않는 엄마의 표현방법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왜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지, 차라리 혼을 내시지, 다 큰딸이라도 회초리 한 대 들고 마시지’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향적이고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심했던 엄마에게 엄마의 마음을 왜 드러내 놓지 않냐고 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인 말이었을 것이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엄마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그 마음을 전달할 단어들과 전달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그런 엄마와의 대화가, 늘 부족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우리가 등교할 때쯤 출근을 해서 학원을 다 마치고 들어와도 집에 오지 못하셨던 엄마와의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그럴 수 없었으니 그게 아쉬웠을지도……. 어쩌면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우리를 위해 일하는 엄마를 나름의 방법으로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여러 복합적인 마음으로 엄마에게 교환일기를 쓰자고 했던 것 같다. 열다섯의 나는 엄마와 더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매일 각자의 이야기를 써서 바꾸어 보는 교환일기를, 친구도 아닌 엄마와 함께 써나가고 싶었던 가보다.




한 페이지는 엄마가, 다음 페이지는 내가, 또 그다음 페이지는 엄마가 그렇게 이어 쓰던 일기를 다시 읽어보니 마음 한 편이 아려온다.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엄마가, 언제나 외로웠던 서른여덟의 엄마가 거기 있었다.


똑같은 일상을 탈피해 자연 속에 동화될 네 모습이 부럽구나.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라.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되거라. 사랑한다. (1998.8.1. 토)

진아, 엄마의 손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너희들과 맞잡고 있단다. 한 번도 그 손을 놓은 기억이 없다. 이제 엄마가 힘들고 지쳐 쓰러질 때 너희가 그 손을 잡아 주지 않을래? (2000.11.26.)



캠프를 떠나는 딸에게 ‘부러운’ 마음을 느꼈을 엄마가,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고작 17살이었던 딸에게 자신의 손을 잡아 달라고 부탁하던 엄마가 이제야 보인다. 그때 나는 그런 엄마의 일기를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우 열다섯, 열일곱 살이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엄마는 무척이나 절박한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흘려들었을 것이다. 엄마의 삶을 이해하기에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


문득 곱씹어 보니 그때의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 고작 한두 살 정도 많은 나이다. 스물셋에 결혼을 해서 스물넷에 나를 낳은 엄마는 삼십 대 후반에 이미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였다. 세상 물정 모를 때 결혼을 해서 이내 혼자가 되었고, 그렇게 두 딸의 엄마로만 살았던 엄마의 이십 대와 삼십 대가 그려져 눈물이 난다.




스물여덟에 독립을 한 나는, 지금까지 십 년째 매일 엄마와 통화를 한다. 처음에는 혼자 나가 사는 딸이 걱정된 엄마가 매일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딸들이 모두 떠나고 연세 드신 할머니와 두 분이서 살고 계신 엄마가 걱정이 되어 내가 매일 전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가끔은 전화를 건너뛰게 되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에도 매일 카톡을 통해 엄마에게 나의 안부를 전하고,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어떤 날에는 엄마와 한 시간도 넘는 통화를 하기도 하고, 하루에 두세 번씩 통화를 하기도 한다. 언제나 친구 같은 모녀가 되고 싶어 했던 엄마와 나는, 이제 세상 둘도 없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자주 침묵하던 엄마도 요즘은 속상한 일이 나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그 마음을 쏟아내신다. 그렇게 마음을 쏟아내고 나면 “하도 답답해서 전화했는데, 너한테 말하고 나니 좀 낫다.”라고 하시며 전화를 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 또 엄마의 말에 맞장구 몇 번을 쳐 드리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엄마에게 위안이 된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일기를 쓰자고 했던 열다섯의 소녀는, 이제 매일 엄마와의 통화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드릴 수 있는 서른일곱의 두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엄마의 일기 속 이야기들이 제대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일기장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참 다행이다. 미처 몰라서 위로해드리지 못했던 그 마음들을 이제라도 알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잠깐이라도, 타임머신 같은 것이 있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2000년 11월 27일로 돌아가고 싶다. 엄마의 지치고 힘든 손을 잡아 줄 수 있겠냐는 엄마의 일기 다음 페이지에 이런 일기를 써서 엄마 가방에 넣어두고 싶다.



엄마, 엄마가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나 제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엄마 옆에는 언제나 큰딸 진아가 있을 거예요. 엄마의 속상한 마음, 힘겹고 외로웠던 순간들.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언제든 엄마 두 손을 꼭 잡고 지친 엄마를 일으켜 드릴게요.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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