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 생각나는 계절에 엄마는 딸과 사위, 손주들이 온다고 각종 해물들을 한껏 넣은 해물탕을 끓이고 계셨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빠진 듯한 엄마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젖어있었다.
“우리 사랑이 왔나, 봄이도 왔나. 양서방 운전해서 오느라 고생했제? 진아 너는 얼굴이 왜 그렇게 까칠하냐. 들어 온나 들어와. 2층 방에 에어컨 틀어놨다. 짐 풀고 좀 쉬어라. 금방 저녁 다 된다.”
엄마는 우리가 인사를 할 틈도 없이 손주들, 사위, 딸의 안부를 차례로 물으시고는 이내 가스레인지 앞으로 가셨다. 엄마는 이번에도 역시나 당신의 방을 우리의 잠자리로 내어주셨다. 엄마 방에 들어서자 상쾌하리만큼 시원한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 동시에 언제 맡아도 따뜻한 우리 엄마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깔끔하게 정돈된 새 이불이 침대와 바닥에 가지런히 깔려있고, 모기장까지 꺼내져 있었다. 곳곳에 엄마의 배려와 사랑이 가득했다.
‘아고. 우리 집이구나!’
집을 떠난 지가 벌써 십 년이 되었는데도 엄마 집에 오면 꼭 내 집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사는 곳은 그런 안정감을 주었다.땀에 젖은 아이들을 씻겨서 옷을 갈아입히고, 나와 신랑도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방 겸 거실로 나갔다.
“너네들 온다고 어제 시장에서 해물 잔뜩 사 와서 해물탕 끓여놨다.”
“엄마, 날도 더운데 차도 없이 또 시장 갔다 왔어요?”
“집에 아무것도 없는데 장 보러 가야지 그럼. 사랑이랑 봄이 먹을 가자미도 좀 사고, 과일도 사다 놨다.”
“엄마 전에 보내준 가자미도 잔뜩 있는데.”
“차 갖고 왔을 때 들고 올라가라고. 냉동실에 손질해서 얼려놨으니까 들고 가라.”
엄마와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해물탕 냄새가 구수하게 퍼졌다. 엄마의 해물탕은 된장을 기본으로 한 해물탕이어서 된장국의 구수한 냄새에 각종 해물이 품고 있는 바다 냄새가 절묘하게 어울려 있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내가 친정에 가면 꼭 해물탕을 끓이셨다. 해물탕은 나의 소울푸드도 아니고, 어린 시절에 집에서 자주 해 먹던 음식도 아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마는 나에게 밥을 해먹일 기회만 생기면 꼭 해물탕을 해주셨다.
내 고향은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다. 버스로 10분이면 작은 해수욕장에 도착할 수도 있었고, 지하철로 50분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해수욕장에도 도착할 수도 있었다. 임용에 합격하여 다른 도시로 발령을 받아 집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27년을 그렇게 바다를 품은 도시에서 살았다. 그 덕에 우리 집 밥상에는 해물을 재료로 한 요리가 자주 올라왔다. 하다못해 된장찌개에도 조개나 새우가 심심치 않게 들어갔고, 데친 오징어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밥상을 채우는 반찬이었다. 오징어, 명란, 창난, 낙지 젓갈 등 다양한 종류의 젓갈도 언제나 밥상 한 귀퉁이를 차지했으며, 굴 철이 되면 생굴부터 굴전, 굴김치 등이 밥상을 채웠다.
그런데 내가 발령을 받은 도시는 바다가 없는 도시였다. 지척에 바다를 품고 있던 도시에서 살던 나에게는 여러모로 낯선 곳이었다. 요즘은 전화 한 통이면 산지에서 갓 잡은 싱싱한 해물들을 택배로 받을 수 있지만, 수산 시장을 코앞에 두고 살던 나에게 해물은 택배로 받아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이 도시에 살면서는 바다생물로 만든 음식은 고향이 그것과는 다르게 무조건 맛이 없을 거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엄마에게 자주 싱싱한 회가 먹고 싶다, 제대로 된 해물탕이 먹고 싶다, 조개구이가 먹고 싶다는 등의 말을 자주 했었다. 엄마는 타지에 나가 사는 딸이 무심결에 내뱉은 몇 마디의 말에서 고향과 친정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그 뒤로 언젠가부터 엄마는 내가 친정집 문턱만 넘으면 해물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결혼 전 엄마가 끓여주는 해물탕은 간도 꽤 진했고, 얼큰하고 매운 해물탕이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한 후로는 엄마의 해물탕은 조금 달라졌다. 사위가 간이 센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엄마는 해물탕에 된장을 최소한으로 넣어 심심할 정도로 간이 약한 해물탕을 끓여내셨다. 그래도 청양고추 몇 개로 얼큰한 맛을 주는 것은 잊지 않으셨는데, 손주들이 우리 음식을 같이 먹을 만큼 자라자 그나마의 청양고추 몇 개도 다 빼버리시고 오로지 해물 자체로만 맛을 낸 해물탕을 끓여내셨다.
“된장도 반 스푼밖에 안 넣었다. 해물들 많이 넣어서 육수가 맛있게 나왔더라. 사랑이랑 봄이도 게살 발라서 좀 먹여봐라.”
숟가락으로 슬쩍 뒤적여보니, 뽀얀 속살이 가득 찬 게, 손가락 굵기만 한 새우, 큼직한 전복 몇 마리, 미더덕에 조갯살까지 싱싱한 해물들이 가득했다. 콩나물과 미나리로 가득한, 파는 해물탕과는 급이 다른 진짜 ‘해물탕’이었다. 게의 속살은 입에 넣으면 솜사탕처럼 스르륵 녹아내릴 만큼 부드러웠고, 새우는 달큼하면서 포슬포슬 씹혔다. 전복은 쫄깃하게 씹히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갔고, 미더덕은 톡 하고 터지며 입안 가득 바다향을 채웠다. 콩나물과 미나리는 적당히 익어서 씹으며 맛과 향을 즐기기에 알맞았고, 국물은 짜지도 맵지도 않으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진한 해물 된장국의 맛이었다.
입이 짧은 신랑과 두 아이 모두 잘 먹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이번 해물탕은 잘 넘어가질 않았다. 스물셋에 나를 낳고, 스물여섯에 동생을 낳은 후로 오롯이 홀로 두 딸을 키우느라 평생을 다 바친 엄마였다. 엄마는 두 딸을 모두 독립시키고 그제야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려던 때에,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혼자 남으신 할머니를 오롯이 혼자 돌보게 되셨다. 할머니는 날로 쇠약해지셔서 이제 엄마가 없으면 한 끼의 식사도 혼자 챙겨 드시지 않는다. 그러니 엄마는 자유롭게 외출 한 번 못하고 24시간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의 식사를 챙기고, 잦은 병원행에 동행해야 했다. 그런 엄마가 딸이 제 식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친정에 온다고,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각종 해물을 사다가 일일이 손질해서 끓여낸 해물탕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평소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잘만 먹던 해물탕이 편안하게 먹히지를 않았다. 보나 마나 엄마는 여러 상점들 중에서도 가장 싱싱한 해물을 가장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시장 곳곳을 헤맸을 것이고, 이 무더위에 땀으로 샤워를 하며 그 무거운 장바구니를 꾸역꾸역 들고 버스에 오르고 내렸을 것이다.
그런 해물탕이 술술 넘어갈 리가 없었다. 정말 맛있었지만, 오랜만에 먹는 엄마 음식에 너무나 행복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속에서 울컥, 다른 감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해물탕 한 그릇에 엄마가 되었어도 다 알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쉬이 넘겨버리기도 아까운 그 마음들에 보답하는 방법은 한 그릇 뚝딱, 남김없이 비워내는 것뿐임을 알기에 넘어가지 않는 국물을 열심히 떠넘겼다.
“간도 심심하고 맛있다. 엄마!”
“안 그래도 너네 제부는 엄마 해물탕 맛있다고 영이 보고 좀 배우라고 했단다. 그래서 내가 그냥 사 먹으라고 했다. 한 그릇 사 먹으면 이삼만 원이면 되는데, 여기는 해물만 얼마나 들어가는데! 품은 또 얼마나 들고.”
“그래, 엄마. 한 그릇 사 먹는 게 낫겠다.”
살갑게 이말 저말 잘하는 제부는 엄마의 해물탕이 맛있다고 동생에게 비법을 전수받으라고 했다고 했다. 그냥 사 먹으라고 했다는 엄마의 표정이 좋았다. 무뚝뚝한 큰사위 대신에 작은 사위라도 그런 말을 해주니 내 입장에서도 제부에게 참 고마웠다. 같은 음식이라도 딸들이 하는 칭찬과 사위가 하는 칭찬은 엄마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 당연했다. 제부의 칭찬에 엄마도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다. 엄마 말대로 가성비로 따지면 엄마의 해물탕은 가성비 꽝인 음식이었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엄마는 당신의 딸들이 거칠고 날카로운 해물들을 사다가 일일이 손질해서 해물탕을 끓여 내는 그림은 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모든 고생스러운 일은 다 대신해 주고 싶어 했던 엄마였으니까.
엄마의 해물탕을 먹으며, 이 귀한 음식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타지에 나가 살며 27년을 보고 자란 바다 냄새가 그리울 딸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끓여주신 해물탕은 그 자체로도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의 고생스러움을 너무도 잘 알기에 친정에 갈 때마다 나가서 사 먹자고 매번 얘기하면서도, 엄마 사랑이 그득 배인 그 음식이 자주 그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엄마의 사랑을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음미하며 꼭꼭 씹어 삼킨다.
내 안에 엄마의 사랑이 가득 흘러넘치도록 한 숟가락, 한 숟가락 귀하게 떠먹는다. 그렇게 내 안에 차고 넘치는 엄마의 사랑으로 앞으로 내가 겪어나갈 어떤 어려운 일도 다 해낼 수 있으리라는 괜한 확신이 든다. 엄마의 사랑은 여전히 나를 지탱하는 가장 큰 에너지라는 것을, 해물탕 한 그릇을 비우며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