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이 열차의 종착역인 부산역입니다.“
KTX의 안내음이 울리면 이미 마음이 풀린다. 어떤 응어리진 마음도 스르르. 눈 녹듯 사라진다. 부산에 왔구나. 나의 과거에 도착했구나. 현재의 나와는 잠시 안녕. 느려진 속도로 기차가 부산역 플랫폼에 도착하는 순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된다.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스물일곱까지는 부산을 떠나 일주일 이상 다른 도시를 여행해 본 적도 없었다. 부산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미래의 내 삶에 대한 계획과 기대는 모두 부산에 있었다. 하지만 계획과 기대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형이라 뜻하지 않게 부산을 떠나 살게 되었다. 잠시가 아닌, 어쩌면 영영일지도 모르는 선택을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어렵게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고, 오래 기다린 일이었으니. 새롭게 자리 잡은 곳에서의 삶도 나쁘지 않았느나, 시간이 거듭될수록 부산에 대한 그리움은 부풀어 올랐다. 이런 게 고향이라는 건가, 어린 시절 문학 작품의 주제로만 받아쓰던 그리움이라는 감정인 건가. 그리움이 짙어질수록 가끔은 슬퍼졌지만 그리운 어딘가가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살아갈 힘이 되기도 했다.
부산의 구석구석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동네도 이름만 들으면 어디쯤 있는 동네인지 떠올릴 수 있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의 정거장 순서는 여전히 다 외고 있고, 어느 정거장에서 오른쪽 문이 열리는지, 왼쪽 문이 열리는지도 다 알고 있다. 부산을 떠난 지 벌써 14년이라, 내가 잘 알던 곳들도 많이 바뀌었다. 당장 내가 살던 집만 해도 재개발로 흔적 없이 사라졌고, 덕분에 내가 살던 동네의 모습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의 곳곳은 여전히 익숙하고, 익숙함은 편안함을 낳는다.
바다는 나의 ‘노랑’ 목록에 따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부산 이야기를 하면서 바다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내 고향이 바다를 품은 도시라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바다가 없는 도시에 살면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부산은 사실 곧 나의 바다이기도 하다. 부산이 품고 있는 바다는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하는 세 바다가 있다. 송도, 해운대, 송정. 숱한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곳들이다.
송도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살던 동네였다. 내가 살던 집에서 96번 버스를 타고 20분만 가면 송도 바닷가에 닿았다. 그 시절에는 바다가 주는 위안보다 친구가 주는 위안이 훨씬 더 컸으므로, 바다를 보는 시간보다 친구와 마주 앉아 떠들던 시간이 더 많았다. 시간이 오래 흘렀고, 지금 떠올리면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앉아있던 송도 바닷가의 풍경은 선명히 떠오른다. 그때와 지금의
송도 바다는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어린 날 하도 자주 드나들던 곳이어서인지 지금도 부산 바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다가 되었다.
해운대는 엄마의 직장이 있던 곳이다. 좌석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야 도착하던 곳이라 송도 바다처럼 자주 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핑계로 종종 해운대를 찾았다.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며 해운대 바닷가를 걸었고, 가끔은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있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엄마의 삶이 가장 고단하던 때였는데, 엄마는 그 시기를 어떻게 지나갔을까 싶다. 나의 노랑이 된 추억의 장면이, 엄마에게는 파랑을 견디는 날들이 아니었을지. 이제 와 새삼 그것이 궁금해진다.
송정 바다는 대학 시절 MT의 추억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 시절 송정 바다는 대학생들의 단골 MT 장소였는데, 풋풋했던 시절이었으니 달고 쓴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그 바다에서 누군가는 손을 잡고 달빛 데이트를 했고, 누군가는 눈물의 이별을 했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이건 훗날 이야기할 기회가 또 있지 않을까,라며 기억 저편에 묻어두는 걸로.) 송정 바다야말로 추억에만 남아 있을 뿐 근래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의 바다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애틋한 바다는, 송정 바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완벽한 노랑의 기억일지도.
현재를 살고 있는 공간 외에 과거를 품은 공간이 따로 있다는 건 참 신비로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현재의 삶이 고단할 때마다 과거로 도망치듯, 떠날 곳이 있다는 것. 그게 묘하게 위안이 된다. 부산에서의 삶이 마냥 핑크빛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간 시간은 항상 적당히 포장되어 그래도 꽤 괜찮았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렇게 괜찮던 시절의 나를 오롯이 품고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 닿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노랑빛이 된다. 파랑이 옅어진 자리에 들어서는 노랑.
파랑파랑한 날들에 노랑이 간절해서 이번에도 부산에 왔다. 익숙한 기차역에 내려 익숙한 지하철을 타고 익숙한 골목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파랑을 모두 짐작하는 엄마는, 내 노랑 중 하나인 ‘엄마표 김밥‘을 만들어주었다. 색색의 재료들로 가득 채워진 엄마표 김밥을 먹으며 부산에 왔음을 실감했다. 그리운 나의 노랑에 무사히 닿았음을. 부산은 KTX의 종착역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깜박 잠이 들어도 무사히 내릴 수 있는 곳. 무사히 닿을 수 있는 곳. 내일이면 이곳을 떠나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갈 테지만, 나쁘지 않다. 이곳은 변함없이 나를 맞아줄 것이고, 언제고 나의 종착역이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