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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 Feb 03. 2024

01화. 깊은 바닷속에서

직장생활 내내 좌절했고 이겨냈고 성장했고 좌절하는 지도 모른채 어느 날 난 우울증 환자가 되었어세상은 참 성실하게도 내게 매일 말을 걸었다? "계속 살아도 이런 날이 반복될텐데, 꼭 살아야겠어?" 웃기게도 매번 난 세상에게 답을 꼬박꼬박 성실하게 답했어.  "아니, 나 그만 살고 싶어. 제발 내 삶을 누가 멈춰줘.." 사실 난 매일 그만, 제발 그만 이 삶이 끝나기를 바랬거든. 한치의 거짓도 없이 말이야. 그게 유일한 삶의 구원이었고 희망이었으니까. 삶이 끝이 있다는 그 사실 말이야. 그래서 언제나 최후의 보루로 아껴뒀어. 언젠가 내 손으로 내 삶을 끝내리라 하고 말이야. 사실 내가 살기로 결심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어떤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이 될거라 생각했어. 살고 싶어졌다는 그 사실이 내 인생에 기적일테니. 어디와봐라, 나의 기적


누가 그러더라, 기적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이야. 

기억이 잘 안나, 희미하게 울면서 침대 구석에 쪼그려 앉아 두려워 떨고 있었거든. 그날 따라 이 세상이 왜이렇게 크고 무섭게 느껴지는지 당장이라도 삶이 끝나길 원하면서도 서서히 다가오는듯한 죽음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지더라고. 그때 알았어. '나, 살고싶어.' 사실, 나는 살고 싶었던거야. 괜찮고 싶었던거였어. 그래서 흐느껴 울며 전화 한통을 걸었어. 


"언니..언니..제발.. 나 좀 살려줘..나 있잖아.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내가 갈게"


대구에 살고 있던 언니는 전화 한통에 바로 서울에 있는 내게 왔고 

안아줬고, 밥을 먹였고, 재웠고, 그저 들어줬고, 괜찮다고 위로했어.  

그리고 내게 심리상담선생님을 붙여줬어 


"어떤 이유로 저를 찾아오셨을까요?" 

"저..살고 싶어서요. 매일 죽음을 원하는 것을 그만하고 싶어요."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 상담을 받으며 이제는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있게 되었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욕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알게되었어. 삶의 밑바닥을 찍고 죽음의 문턱에서야 '나'는 누구인지 발견했으니까. 


그리고 세상이 다시 나를 찾아왔어. 처음보는 얼굴을 하고서. 


"네 소원을 말해봐. 내가 이뤄줄테니" 

"정말? 그렇다면 내 소원은.."



난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말, 갓생러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 굳이 티내지 않아도 그 노력을 주변이 다 알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 나는 자주 불안해서 책을 꺼내 읽었어. 미칠듯한 좌절감과 불안감은 책을 쥐어들때면 감춰지는 것 같았거든. 마치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보증수표를 들고 있는 기분이었으니 말이야. 그래서 책을 읽었고 글을 썼어.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는 자리로 스스로를 초청하면 뭔가 나아지는 것 같았거든. 실제로 그런건 없지만 말이야. '나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내 삶은 안전할거야. 괜찮아..난 괜찮아..' 


세상은 자주 내게 말했어. '무능도 이런 무능이 따로 없네, 할 줄 아는게 뭐야? 너 척만하는 그런 사람이야?' 세상은 내게 좀 너무하더라. 매일 증명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삶, 수치심이 나를 지배하는 삶, 인정없이는 존재가 의미없어지는 그런 숨막힘을 줬으니까. 마치 어디가 밑바닥인지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나를 끌어내리고 끌어내려 오랜시간 나를 깊은 바닷속, 그 밑이 있다면 더 깊은 밑으로 나를 끌어내렸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지금은 날 좌절시켰던 말들은 오히려 가장 밑바닥에서 날 가장 강하게 만들었으니 말이야. 완전한 혼자로 적막하고 고요한 바닷속에 머물게 되니 알게 되더라. 허상인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온 지난 날들을 곱씹으며 회고하게 되었어. 정확하고 희망을 담은 눈으로. 그랬더니 보이더라. 어느 날에도 난 무능한적이 없었으며, 언제나 해내기를 선택했더라고. 그깟 책이 없어도 난 존재로 괜찮았던거야. 나는 무려 용기도 있었어. 당장 눈 앞에 좌절이 있을 것을 알아도, 기꺼이 그 잔을 마시기를 선택했거든. 왜 그랬냐고? 그 잔을 마셔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세상에는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 마주하지 않으면 절대 그 사건은 지나쳐가지 않아. 마주하고 마치 미게임 미션을 깨듯이 깨야만 다음 미션을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의 법칙 말이야. 


이 세상에는 법칙이 있어. 네 잔을 마셔야해. 너의 몫의 잔 말이야. 


네가 잔을 마시지 않고 피하잖아? 그럼 또 다시 나를 찾아와. 마치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 패턴은 빠르게 찾아와. 웃긴건 무뎌지긴 하니까 많이 마주할수록 그 미션을 깨는건 쉬워지기는 하더라고. 그렇다고 지독한 괴로움이 괜찮아지냐고? 그럴리가 있나. 맞았다고 또 맞으면 안아픈건 아니니까. 그저 대처하는 방법을 습관적으로 알게되는 거뿐이지. 그래서 하는 말이야. 그 잔을 지나가고 싶다면, 기꺼이 그 잔을 마셔야해.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내 잔은 내 것으로 마시기를 선택하는 것 말이지. 


어쩌면 깊은 심해에서 세상은 내게 이 한마디를 건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아무것도 없이 너 자신이 되어보니 어때, 자유롭지?

 네 소원을 이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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