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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라 Feb 10. 2024

02화. 하루만 사는 인생  

"네 소원을 말해봐. 내가 이뤄줄테니" 

"정말? 그렇다면 내 소원은..살게 해줘. 딱 하루씩만. 내가 원하는 만큼만." 

나는 소원을 빌었고 지체없이 그날부터 나의 소원은 카운팅되었다. 


째깍 째깍 째깍 시침소리가 울리고

데-엥.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퍼지면

나는 습관처럼 내뱉었어.

 

"하루만 더 살게해줘" 


나는 그 때 왜 그런 소원을 빌었을까? 아직도 알 수 없다. 그저 내 삶이 내 것 같지가 않아서 남의 것을 빌려쓰는 것 마냥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나는 하루를 더 사는 것이 꿈같았으니까. 자의로 끊어낼 것 같은 내 자신이 무서워서 나는 세상의 힘을 빌려 하루만 더 살려달라는 구차한 소원을 빌었다. 너는 모르겠지. 내가 비는 소원의 의미를. 


당장에라도 오늘 소원을 빌지 않으면 끝나는 인생. 당연한 인생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없는 인생같은건 살아본 적이 없을테니. 비아냥거려 미안하지만 나는 네가 웃겨. 당연하듯이 살아가는 그 태도 말이야. 뭐가 그렇게 당연한 것이 많은지.. 나는 매일 0에서 인생을 시작하거든. 아무것도 없는 인생. 그래서 이 소원을 빌고나서는 무서운 것이 없어졌어. 언제든 나는 0으로 돌아가고, 원한다면 오늘 다시 0이 될테니까. 


매일 자정이 되고 종소리가 울리면 어김없이 세상은 나를 찾아와. 그 시간은 아무것에도 속하지 않은 무의 시간. 세상과 내가 독대하는 시간이었어. 세상은 나를 보고 언제나 말하지 않았고 그저 웃는듯 아닌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어. 무슨 의미였을가. 어쩌면 이렇게 이상한 짓을 얼마나 더 하려나 하는 표정 같기도 했어. 나는 그런 세상에게 웃으며 고마움을 담아 말했어. 


"하루만 더 살아갈게' 


나의 하루는 그런 하루니까. 이 하루가 주어져서 너무나 감사한 하루. 누군가에게 당연하지만, 내가 나로부터 나를 지키는 온전한 하루니까.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 어느덧 1년이 지났어. 나의 하루가 모여 1년이 된거지. 두려움 없는 나는 어디까지 걸어갔을까? 그 시간을 돌아보자면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단 하나의 불안이 없는 시간. 완전한 자유함으로 나를 마주하는 시간. 자유함은 내가 완전한 0의 시간에 머물 때 깨달아졌으니까.  


여전히 세상이 나를 자정에 찾아왔어. 그 날은 세상이 나를 보지 않더라. 

그리고 나즈막히 참 오랜만에 내게 말했어. 


"내가 너에게 호흡을 불어넣으며 준 유일한 것은 말이야.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그 하루인데, 너는 매일 내게 그 하루를 빌어. 심해 끝까지 너를 밀어넣었던 내게 주는 벌이야?"


세상이 나를 바라봤던 그날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 

너무 아파보였거든. 그런 소원을 다시는 빌지도 못할만큼. 

웃기지. 심해로 나를 쳐박았던 비웃던 세상은 어디가고 고작 하루를 빌었다는 사실에 이렇게 아파한다는게. 


세상은 다정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어. 

"네 삶은 당연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 내가 주었으니까. 그래도 너는 당연하게 여겨야해. 내가 주었으니 말이지. 그게 네가 할 유일한 일이고, 너를 다치게 할 것은 나 이외에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존재 답게 살아. 매일 자정 나를 찾아오지 말고." 


그 날 이후로 더이상 시침의 소리도 자정이면 울려퍼지던 종의 소리도 세상도 만날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때때로 좌절스러웠던 하루는 다시 당연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지만

나는 매일 자정이 되면 홀로 읊조렸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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