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주부대디

가장 확실한 보장이 주어진 일, 집안일

by 김씨네가족

얼마 전 수능이 끝났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중요도는 꽤나 높다.

오랜 시간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보장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수능을 위해서 인내와 고통을 견디면서 매일매일 묵묵히 하루를 쌓아간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학은 한정되어 있고 그 한정된 대학교 내에서도 더 좋은 학과와 학교를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를 입학하더라도 그때부터 시작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졸업 이후 사회생활이 진짜 시작임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허무함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물론 그 허무함과 좌절감을 늦게 느끼는 이들도 있고 끝까지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도 혹 있을 수 있다.

다행히 좋은 성적과 좋은 학교를 나온다면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 치열한 경쟁의 숫자 속에 그래도 포함은 되었고 그 결과를 주위에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좋은 결과를 차지하는 이는 역시나 소수다.

대부분은 그 소수에 들지 못한다.

결국 열심히 했지만, 소수의 숫자에 들지 못해서 생각보다 결과에 대해서 안타까워할 수 있다.

혹은 수능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했다면 그건 더 안타깝다.


수능이 세상에서 꽤나 평등하면서도 불평등한 사실일까?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그런 것 같다.

좋은 회사를 들어가는 것도,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도,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는 것까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 불평등한 것 같다.

내가 선택해서 얻게 되는 공정함보다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이 더 지배적인 생각이 드는 게 과연 부정적인 생각일까?


그래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평등한 영역도 꽤나 많다.

돈은 많이 벌지만 너무 바빠서 하루에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나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평온함과 햇살 그리고 나만의 커피 한잔의 시간등

생각보다 돈과 시간이 넉넉해야 할 수 있는 행복한 일들보다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행복한 일들이 세상에 꽤나 많다.


그중에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해서 가장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일은 집안일인 것 같다.

집안일은 시작이 어렵다.

그냥 쌓아두고 싶고 귀찮고 막상 움직여서 집안일을 하더라도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냥 오롯이 나와 가족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가족마저도 그것을 칭찬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집안일은 독특하게 집안일 자체가 나에게 보상을 안겨준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나의 노력과 열심에 따라서 결과가 주어지진 않는다.

운도 따라줘야 하고 때로는 열심히 해서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더 나은 보상을 받는 경우도 세상에는 많이 발생한다.


집안일은 내가 한만큼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지저분한 화장실을 청소하고 나면 땀도 나고 나름의 도파민도 생긴다.

그리고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면 꽤나 기분이 좋다.

돈을 주는 것도 칭찬을 받는 일도 아니지만, 조금의 노력 끝에 반짝반짝한 깨끗한 화장실을 보상으로 즉각적으로 받는다.


세상에는 일한 대가로 보상이 항상 주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집안일만큼은 내가 한만큼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그 보상이 우리가 세상에서 배운, 자본주의에서 배운 그 보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오히려 인간에게는 이 보상이 더 필요한지 모른다.


세상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져 간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나름의 보상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게 돈이 아니라도

그게 어떤 풍족한 생활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인생에서는 잘 찾아보면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일들이 넘쳐난다.


물론 그 보상을 받기 위해선 약간의 노력은 필요하다.

집안일하기 좋은 주말이다.

나를 위한 무료 보상을 한 번씩 주자.

꽤나 공정한 집안일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빠 잘못했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