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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Sep 28. 2023

아빠 잘못했어요ㅠ

둘째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초등학교 시절은 충분히 놀아야 된다고 생각해서 학원은 따로 보내진 않는다. 그래도 시대의 흐름(?)이 있으니 완전히 역행할 순 없고 또 영어는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어는 도요새 잉글리시라는 패드로 할 수 있는 수업을 듣고 있다. 굉장히 잘되어 있는 프로그램이라 꾸준히만 잘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과정이다. 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 아니 회화가 어려운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어른을 위한 건 없는 듯하다.)


약간의 욕심이 생겼는지, 도요새 잉글리시 매니저의 유혹 때문인지 영어 말고 AI 다른 과목도 추가로 등록을 하게 되었다. 이것도 스스로 하면 좋은 프로그램인데 아이들은 스스로 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딸아이에게 스스로 해야 할 과제가 2개가 생긴 것이다. 물론 스스로 하기 어려우니 어느 정도 부모의 관리가 필요하다. 첫째가 도요새 잉글리시를 6년 정도 하면서 어느 정도 영어의 기본기가 생겼다. 그리고 스스로 학습하는 습관도 생겼다. 그래서 첫째처럼 생각했는데 어느 날 확인을 해보니 도요새영어도 AI 다른 과목도 거의 하지 않은 게 드러났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동안 우리가(엄마, 아빠)가 아이들 관리를 제대로 못한 거다. 아이를 탓할 순 없지만 부모들이 늘 그렇듯 처음엔 아이들을 탓한다. 나 역시 왜 그동안 안 했냐고?라는 나의 책임을 아이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언어가 먼저 나왔다. 딸아이도 잘못한 게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 큰 반항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부터 다시 매일 제대로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나도 아이의 학습과정을 체크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서 학습과정을 체크했는데, 오늘 해야 할 과정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오늘 꺼 왜 안 했냐?"라고 하니깐 짜증과 불만과 함께 "오늘 꺼했다"라고 꽤나 징징거린다. 짜증이 꽤나 극에 달했다. 부모 역시 똑같이 하면 안 되니깐.. 화가 조금 났지만 화를 참으면서 다시금 물었다.

" 아빠 앱에 보니깐 오늘 한 게 결과가 안 나와! 한번 패드 보면서 확인하자!!"

그렇게 화를 참으면서 천천히 이야기했지만 딸아이는 불만이 가득하다. 끝까지 자신은 오늘 꺼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확인해 보니 그동안 밀려서 못했던 한 달 전 과제를 오늘 한 것이다. 그래서 내 앱에는 오늘 결과가 안 나온 거다. 딸은 오늘 할 일을 했고, 나는 그 할 일을 한 것을 제대로 확인을 하기 어려웠다. 약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기도 했지만 서로 간에 이미 감정은 상해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감정의 상태로 저녁을 먹는데 서로 말이 없다.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는 둘째 딸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 비록 네가 오해받고 있더라도 아빠에게 그렇게 마음대로 짜증 내면서 하면 안 돼!!"


화를 낸 것도 아니고 감정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권위 있는 말투로 딸아이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이야기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도 사실 감정이 아직 정리가 안되었기 때문에 조용히 밥만 먹었다. 딸아이도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용히 감정이 아직 식지 않은 채로 밥을 먹는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지나갔다. 5분 정도 되는 시간이 지났을까?

둘째 딸이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엄마의 말이 와닿은 부분이 있었는지, 아빠와 관계가 서먹해진 게 싫은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용기 있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잘못했어요 ㅠ"


그 용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우리 둘째 딸은 나중에 충분히 자기 삶을 잘 살아가겠구나!!라는 안심도 얻게 되었다. 자존심도 상할 것이고, 억울함도 넘칠 텐데 어떤 이유에서건 자기 자신의 억울함을 뒤로하고 자기가 잘못한 부분을 정확히 보고 그걸 용기 내어 상대방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어른들도 사실 이걸 하지 못해서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같이 일하던 파트너와도 관계가 끊어지고 이혼도 하고 전쟁까지 하는데... 우리 딸아이는 이걸 스스로 배웠구나!라는 대견함이 들었다.


 누가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닌, 반드시 스스로 해야만 하는 그 어려운 산을 넘은 것 같아서 꽤나 대견함을 느낀 하루였다.


학습지는 잘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걸 안 해도 큰 상관은 없다. 아빠, 엄마와의 약속을 잘 지켜내고 스스로 관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역시 좀 못해도 된다. 아니 전혀 못해도 사실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용기 내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는 태도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꽤나 중요하다.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액과외로 배울 수 있지도 않다.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은 주어지지만 그렇다고 학교에서 강제로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부모가 가르쳐줄 수도 없다. 오직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영역인데 그걸 해냈다.


오늘도 딸아이게에 한수 배운다.

타인과의 관계를 얻기 위해서는 나의 자존심은 때로 버려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그저 용기 내어서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그게 사실 나의 자존심을 더욱 새워주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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