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正直)하지 않은 것들 속에서 올곧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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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니 12월 달력이 송년회로 하나 둘씩 빠르게 채워져나간다.
나는 애주가이지만, 모임으로 가득찬 주말이 어느덧 힘들어진 30대이다.
최대한 12월의 주말 이틀 중 하루는 쉬려고 약속을 조정해보지만, 쉽지가 않다.
사회생활 7년차의 무게인 것이다.
연말 일정을 정리하면서 올 한해 달력들을 돌아보는데, 맙소사.
거의 모든 금요일에 나는 술을 마시고 살았다.
회사 일이 잘 안풀려서, 혹은 잘 풀려서.
연애하느라, 혹은 헤어져서.
날이 더워서, 날이 추워서.
이유도 참 많다.
이런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베프님께서 왠일로 금요일 저녁에 대뜸 메시지가 왔다. 1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퇴근하고 뭐함?"
불금에 얘가 약속이 없는 것도 의외였는데, 때마침 나도 주 초에 걸린 장염으로 쉬려고 했던 참이었다. 왠지 술을 마시자고 할 것 같아, 장염이 아직 낫지 않아 쉬려하노라 답장해주었다.
"나도 퇴근하고 운동하면 8시반쯤 되는데, 차나 한잔 할려?"
이미 어둠이 내렸지만 아직 석양의 자취가 남은 초겨울의 저녁이었다. 모두가 불금을 외치며 어딘가에서 취해가고 있을, 혹은 이미 취했을 시간. 일을 마무리하고 "차 한잔"하러 용산으로 가는 기분이 생경하면서도 썩 나쁘지 않았다. 차로 1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신용산의 대형 쇼핑몰에서 친구와 접선했다. 조금 트인 공간에 서서 내려다보는 신용산은 한산했다. 다들 금요일이라 이미 퇴근하고 이곳을 빠져나갔나보다.
"저 건물이 내 회사고, 내가 운동하는데가 저 쪽."
본인의 평소 생활권을 설명해준다. 요즘은 퇴근 후에는 물론 점심시간에도 운동을 가는 날이 있다고 한다.
"나는 요즘은 진짜 전투적으로 운동을 해. 처음에는 '어차피 퇴근하고 할 일도 없는데 몸이라도 만들자' 싶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정말 운동만한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왜냐면 운동은 정직하거든. 내가 노력한만큼 결과가 나와."
어쩌면 요즘 30대(싱글) 사이에서 운동이 유행하는 이유의 답에 저기에 있는게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운동은 정직(正直)하기 때문에. 우리 삶은 참 획일적인 것 처럼 보인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는 퇴근하고. 주말에는 하루는 외출, 하루는 쉬고. 다들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여다보면 30대들은 사실 엄청난 불확실성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다. 직장 내에서는 승진과 월급 인상을 신경써야 하고, 그러려면 조직내에서 어떤 성과를 입증해야하는데, 그것이 참 모호하다. 결국은 업무수행의 타이밍과 인간관계, 분위기 등 업무 외적인 많은 것들이 조직 내에서의 퍼포먼스를 결정짓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케어해야한다. 케어한다고 케어되는 것도 아니지만. 연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안할건 아니니까 사람을 만나긴 해야하는데, 소개팅은 싫고, 하지만 소개팅아니면 방법이 없고. 그래서 결국 소개팅을 하면 사람을 바라보기보다는 반복되는 패턴에 지치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30대 싱글에게 참으로 어렵고 드문 일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것들은 변수가 있고, 앞에서는 잘 되어 가고 있는 것 처럼 보여도 그 뒤켠에는 언제든 방향을 틀어버릴 속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한마디로, 일도 사랑도 30대에게는 정직하지 않다. 그 안에서 올곧게 앞으로 나아가기란 참으로 어렵게만 느껴진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지만 우리의 삶은 동일한 패턴에 갇힌 느낌. 녹록치 않은 삶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뛰쳐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어느날 갑자기 뭔가 색다른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는. 그게 오늘의 30대 싱글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30대 싱글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불행하다거나 염세적인건 아니다. 오히려 오롯이 스스로에게 투자하고 집중할 수 있으니 인생곡선의 그 어떤 때보다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시기임을 알고 있다. 게다가 수 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발버둥쳐야 하지만 그 안에서 다른 정직한 것들로 행복지수를 관리하는 법도 알고 있다. 친구가 점심시간에도 운동을 가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술이 될 수도 있고,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는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집에서 홀로 즐기는 넷플릭스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매니징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더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그래서 행복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계속 이렇게 작은 행복을 찾으며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건 아닐까?
오히려 결혼도 가정의 전제도 없이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더 길을 잃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나는 참으로 많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하지만 그 어떤 대화에서도 우린 답을 찾지 못했다.
처음부터 답을 찾으려고 나눈 대화가 아니었기도 했고.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좀 써보려 한다.
뭐든 쓰다보면
정답은 아니어도, 방법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또한 32세 싱글의 특권 아닐까.
꼭 정답을 알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숙고의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는 것.
지금 나의 삶의 방점은 여기에 찍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