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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여행하는 삶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

2-3년 전쯤, 한국에 들어와 한 달 정도 지낼만한 곳을 찾다 난생처음 김천 혁신도시에서 살게 된 적이 있다. 혁신도시라 은행이며 슈퍼, 프랜차이즈 매장 등 없는 것이 없었고 원하면 KTX를 타고 서울로도 금방 갈 수 있어서 꽤 만족스러운 김천 한 달 살기였다. 


제주 두 달 살이 경험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내에선 서울과 경기도에만 살아본 내가 연고도 없고 어떠한 접점도 없는 곳을 단순히 가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골라 한 달을 살아보는 건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같은 한국인데도, 어디서나 보던 버거킹과 다이소인데도, 낯선 동네에 왔다는 것만으로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한 달이 끝나갈 때쯤엔 익숙해져서 초반의 재미가 사라졌지만 그만큼의 익숙함이 남아 헤어지는 날은 아쉽기까지 했다. 


김천에서 지내는 동안 쉬는 날엔 포항, 대구, 구미, 안동 등을 다녀왔다.


이렇게 꼭 해외를 가지 않고 동네를 바꿔보는 것만으로도 살아보는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삶의 형태로 살기 전까지는 우리 부부가 알고 있던 여행이란 평소엔 한 곳에서 일하다가 남들 다 떠나는 성수기나 주말을 이용해 같이 떠나서 물가도 비싸고, 황금 같은 휴가에 온 여행이니 비싼 걸 먹고, 하루 종일 많은 곳을 다니며 평소보다 큰돈을 쓰는 이벤트였다. 일상이 아니기 때문에, 때때로 다음 달의 나에게 뒤를 맡기고 열심히 돌아다니고 열심히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일하면서 하는 여행을 하니 일단 하루 종일 돈을 쓰며 다니기가 어려워졌다. 일하는 시간 동안은 기껏 써봐야 카페나 코워킹 스페이스 비용이 들어가고, 식사 비용 정도가 더해지고 그 도시를 온전하게 즐길 시간 또한 한정적이다. 물론 그 얼마간의 시간을 가지고 야금야금 맛보듯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것이 또 묘미지만. 


한 동네에 오래 머무르며 눈여겨보던 식당에 들어가 보고, 산책하다 불쑥 나타난 새로운 카페에 앉아 보는 일은 별 것 아니지만 그 도시를 더 사랑하고 기억에 남게 해 준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도시에 다시 가서 좋았던 공원에 또 가보고, 새로운 카페를 찾는 것 또한 지금 삶에서 만족도를 크게 올려주는 일 중 하나다.


 아름다운 석양을 만난 곳 또한 잊지 못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우리는 구매대행으로 그렇게 큰돈을 벌진 못한다. 딱 우리가 여행하고, 한국에 내야 할 세금과 공과금, 보험료 정도를 납입하고 약간의 저금을 할 수 있는 정도다. 아마도 주변과 비교하자면 우리의 현실적인 재정상태나 미래 설계는 형편없는 수준일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너무 뒤떨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한창 연봉을 올려야 할 나이에 회사를 나와서 둘이 고만고만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여행을 하며 사는 동안 친구들은 이직하고 진급하고 차도 사고 집도 샀다.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는 이유는 '좋아서'겠지. 돈 좀 모으고, 돈 좀 더 벌면, 여유가 좀 더 생기면, 상황이 되면, 등의 이유를 늘어놓는 동안 나는 원하는 것을 해내는 사람이 되기보다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 데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하고 싶은 걸 하자고 다짐하게 됐다. 그래서 일하고 여행하는 삶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동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포기하는데 익숙해지지 말자고 항상 다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나의 바람이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남편과 함께 다양한 도시를 다니며 우리가 좋아하는 곳을 찾는 일이다. 그렇게 다니다 보면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환경일 때 만족도가 올라가는지 등을 하나씩 알아갈 수 있다. 


좋을 거라 예상했던 곳에서 실망했던 경험이 있듯 반대로 그렇게 좋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만족감을 얻고 원하는 삶의 모습을 지속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여행으로 인해 단순하게 소비를 일삼는 것 같지만 이 시간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길, 그리고 구매대행뿐만 아니라 우리가 즐겁게 기대하며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여전히 돈도 차도 집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평생 나눌 추억과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전보다 많아진 경험이 남아있다고 믿고 싶다. 물론 우리가 여전히 서울에 살면서 회사를 다니고 살고 있었더라도 나름의 행복함을 찾아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단지 우리가 조금 더 걷고 싶은 쪽을 향해 이동해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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