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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05. 2019

26 : 새벽 달리기

연애 에세이 : 결혼의 조건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26 : 새벽 달리기     

연애 에세이 : 결혼의 조건


          

 검은색이 내린 밤의 시간. 달리는 차 안. 피곤해 보이는 눈과 물렁물렁해진 손동작. 아쉬움 자락이, 돌아가는 바퀴를 따라 미끄러지듯 남는 도로. 더 같이 있고 싶어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지만 가야 해서 그 도로를 몇 번이고 달렸다.   

  

 주말마다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의 집에서 같이 오순도순 먹을거리 시켜먹고 컴퓨터로 다운로드 받은 영화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으로도 족했다. 그래도 지루할 때면 가끔 밖에서도 데이트했다. 그가 사는 혼자만의 공간은 역시나 남자의 기운이 가득했다. 남자 냄새 폴폴. 라면 먹은 설거지 꺼리는 일주일 동안 방치되어있고 물체들 위의 먼지들은 다소곳이 앉은 채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둘이 함께 있을 공간이 있어서. 집안일을 도와주려 하면 그는 내 집이니 내버려 두라고 했다. 같이 시켜먹고 남은 피자 상자도, 치킨 상자도, 족발 담은 일회용 그릇도 모두 본인이 치운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 한꺼번에 청소를 한다며 나를 말렸다. 아무것도 안 시켜서 편했다.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라는 존재를 존중해주는 것 같아서. 손님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그 또한 괜찮았다. 우리의 집은 아니니까. 그의 공간이니 그건 내가 존중해줘야 했다.     


 집에 한 번 들어가면 시간이 훌훌 날아갔다. 금방, 10시, 11시, 12시가 지났다. ‘이제 갈까’ 하면서도 붙어 있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꾸물꾸물. 1시 30분쯤이 되어서야 짐을 챙겼다. 잠이든 어느 날은 3시쯤 문을 나섰다. 새벽 2시란 영역의 시간들이었다. 그는 혼자 살지만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니 늦더라도 집에는 들어가야 했다. 10시면 지하철을 탈 수 있다고 가끔은 혼자 간다 해도 매번 데려다준 그 사람. 힘들 법도 한데 싫을 법도 한데 귀찮아하지 않았고 그런 듯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늦은 새벽의 도로 위에서 한 시간가량을 달려야 하면서도.     


 그래도 힘들긴 하지.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 피곤할 테지. 그는 최선의 선택인듯 안 되겠다며 일찍 일어나야 하는 월요일 전날에는 꼭 12시에는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마지못해 동의했지만, 어쩌나, 지키는 날이 드물었다. 내가 먼저 데려다 달라고 할 때는 그가 조금만 더 있다 가자고 했고 그가 먼저 가자고 할 때는 내가 조금만 더 있자고 했다. 그가 말했다.


 “이래서 결혼을 하나?”     


 그와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본다. 언제나 나를 데려다주었다. 이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1년이 지나도 그대로.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도 그대로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변하기가 쉬운데 남자는 초지일관이라 말하는 그의 앞에 흔들리는 갈대들은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학교를 입학하는 날에도 회사에 첫 입사를 하는 날에도 혼자서 새로운 시작을 할 때도 우리는 각자만의 다짐을 한다. 그러다 생활에 지쳐서 여러번의 실패를 겪다가 반복되는 패턴에 갇히면 초심을 잃기 쉽다. 사람의 마음이 이럴 진데 하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더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의 변함없이 깊은 마음에 무너졌다 쌓였다를 반복하던 믿음은 하나에서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어 큰 믿음이란 호수를 만들어 낼 듯 했다. 그렇게 그는 오로지 나만 가득 차 있던 마음의 공간을 조금씩 넓혀 갔고, 그곳엔 새벽 2시의 한결같은 그의 마음이 잔잔히 자리 잡히기 시작했다.




한 사람과 평생을 살아가야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보시겠어요?
현실적으로만 생각하면 경제적 능력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겠지만,
경제적 능력과는 별개로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결혼을 하면 보지 못했던 모습도 더 보이게되고
잠깐 스쳤던 모습은 더 자주 스치게 됩니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세요. 나도 그(그녀)를 존중할 수 있을지.
그(그녀)를 받아내고 한 평생을 같이 살 수 있을지.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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