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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10. 2019

30 : 불투명

연애 에세이 : 결혼이라는 두려움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30 : 불투명         

연애 에세이 : 결혼이라는 두려움

 



 미술관에 가면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선을 그어 놓거나 줄로 막아 놓는다. 궁금한 사람들은 줄과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발은 선 끝에 놓아두고 허리를 굽혀 미술품을 들여다본다. 간혹가다 아이들이 질서에 익숙하지 않거나 뛰다 보면 넘기도 한다. 아마 선을 그어 놓지 않았다면 미술품엔 손자국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선은 보이기에 지켜진다. 보이지 않으면 위험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넘기도 쉽다. 그러니 더 신중해야 한다.     


 부모님과 약속해 놓긴 했지만, 흔쾌히 주저 없이 뵙자고 하는 그를 두고 나는 무서웠다. 아직 6개월밖에 만나지 못한 이 남자를 소개 시켜 드려도 괜찮을까. 혹시나 헤어지라고 하는 건 아닐까. 반대로 결혼 이야기가 나와버리는 건 아닐까. 설레임 보다는 두려움을 안고 날짜를 정했다. 처음, 정식으로 남자라는 사람을 부모님께 인사시키는 자리였다. 장소는 대학로의 일식을 파는 복잡하지 않은 친근한 분위기의 이자카야였다. 아빠도 엄마도 그도 한껏 가다듬은 복장으로 대학로 길거리에서 만났다. 어색한 듯한 서로의 인사를 주고받고 가게로 들어섰다.    

  

 룸 안에 있는 4인석의 테이블. 쇼파 좌석에 앉은 부모님. 맞은편 의자에 앉은 우리. 부모님의 얼굴은 엄중해 보였고, 아빠는 더욱 위엄있어 보였다. 그의 얼굴은 굳어 보였고, 자세는 불편해 보였다. 커다란 자갈들이 담긴 물컵을 들이키는 시간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항상 보여주던 귀여운 반달 눈을 하며 정중하고 편안하게 부모님과 대화했다. 너무 말이 많지도, 없지도 않은 중간 템포로. 부모님도 웃고, 그도, 나도 웃었다. 자갈들은 물렁 해지기 시작해 어느새 물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두려움이 점점 사그라들려던 찰나 결국 아빠가 그에게 말했다.


 “결혼할 건가?”

 “네.”     


 이번에도 주저 없이 바로 대답하는 그. 나만 빼고 모두가 결혼이란 보이지 않는 출발선을 넘어버렸다. 실은 만나기 전 부모님에게 결혼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해두었었다. 하지만 아빠의 입에서 금기의 단어는 튀어나왔고, 옆에 있던 엄마는 시침 뚝. 나 혼자만 아직 결혼 결정 안 했다고 말해 봐야 소용없는 대화 속에서 나는 묵묵히 같은 웃음을 띠고 섞일 수밖에 없었다. 뜻하지 않은 자리가 뜻한 자리가 되어버렸다. 결혼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나는 성큼성큼 다가와 드리운 그물에 덜컥 걸려든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다. 파닥파닥.      


 나로선 충분하지 못했던 만남의 시간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앞에 두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가 겁이 나서였다. 그와 내가 서로의 검은색을 품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에서였다. 평생을 같이해야 하는 날들을 그라는 사람과 함께 나란히 걸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완전치 못한 믿음에서였다. 남들이 말하는 결혼 생활은 힘들다는 말에 의한 막막함이 있어서였다. 그러면 결혼이란 거 안 한다 하면 될 것을. 그래도 나의 생활과 나 자체를 존중해주는 그를 보아서였다. 내가 나를 소중히 하듯 그도 나를 소중히 대해 주어서였다. 내가 그 사람만을 보게 하지 않고 나를 보게 해주어서였다. 사랑받음의 진정성을 알게 해준 사람이어서였다. 그런 그라서였다. 그래서 애매했다.     


 결혼하기 직전까지 지속된 애매함. 모두가 선을 넘은 사이 나는 넘을지 말지를 계속 고민했다. 그 사람이라서 고민했던 몇 초, 몇 분, 몇 시간, 몇 일, 몇 개월 들. 결혼은 기쁨보다는 알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상상하기에 망설인다. 쉽지 않지만 해야 하는 선택의 앞에 서성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넘어가도 괜찮을지.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결혼하고 알게되었습니다.
막연하게 두려운 것들은 겪어보지 전에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요.
대신 신중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겠죠.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고 신중하지 못한 선택은
나를, 두렵다고 생각한 그 곳으로 데려갑니다.

감정보다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보세요. 도움이 됩니다.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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