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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22. 2019

36 : 계절 속의 축복

연애 에세이 : 왜 태어난 것에 감사해 해야해?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36 : 계절 속의 축복          

연애 에세이 : 왜 태어난 것에 감사해 해야해?


 

 서른 번의 계절이 돌고 더 돌았다. 나는 그만큼의 계절을 사는 동안 돌아가는 계절에 등을 돌렸었나 보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삶이기에 그저 태어난 것이기에 삶이 그리 즐겁거나 행복하거나 아름답다거나 나를 위한 것이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난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아.”

 “너 원래 그렇게 비관적인 사람이었어?”     


 나는 태어난 것에 감사해본 적이 없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각했으니까. 이 말은 비관적인 생각이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비관적이라 말했다. 비관적일까 내가.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아서? 내가 그때의 계절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비관적이었다 말하고 싶진 않다. 돌아가는 계절 속에서 행복하기만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항상 웃어서 고민 없어 보이던 사람도 고민이 있었고, 그토록 멋져 보이던 사람도 불행했으며, 마음이 따뜻해서 의지가 되던 사람도 외로워했다. 이렇게 사람이 단순하지 않기에 삶이 괴로웠다. 나는 삶의 아름다움보다 추함을 더 많이 경험했다. 스무살 중후반의 나이에 회사를 그만둘 때까지 나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까스럽고 따가웠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에게 아픔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점차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실험했고 인식해왔다. 지금의 나는 그때와 많이 다르다. 다만, 지금도 태어난 것에 감사하다 라는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나와 그는 결혼식을 올려야 했고, 나로서는 부모님의 물질적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그와 대화를 하다 흘러나온 이야기가 태어남에 대한 것이었다.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말을 하다 어느 틈에 비집고 들어왔던 것 같다. 나는 그에게 태어난 것에 감사하진 않지만, 부모님께는 감사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황당해 하며 말의 앞, 뒤가 맞지 않는다 했다.


 “난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아.”

 “너 원래 그렇게 비관적인 사람이었어?”

 “오빠, 이건 그냥 사실이야. 비관적인 게 아니야.”

 “그게 비관적인 거야. 태어난 건 축복이잖아.”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이 비관적이라는 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비관적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이다. 그저 사실이라 생각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또는 이 삶을 살고 싶어서 태어났을까? 내가 부모님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행복을 알았을까? 내가 살아온 삶은 진흙탕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려고 온갖 노력을 하며 살아온 삶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리라. 우린 인간이니까.     

 심리학자 아들러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환경에 열등하며, 그러기에 자연스럽게 열등감을 가지고 성장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다른 생명들보다 연약하며, 공동 생활을 통해 힘을 키워나가고 정신능력을 개발해나가면서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해왔다고 한다. 덧 붙여 ‘인간의 모든 능력은 공동생활의 논리라는 기초 위에서 발전된 것이며, 인간의 모든 사고는 공동생활에 맞는 방향과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고도 했다. 이 때문에 인간은 공동생활에서 도태되면 인정 받기 어렵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렇듯 나 또한 열등감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으로써 나에겐 태어남은 중요하지 않으며, 감사함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태어남의 감사함 보다는 현재의 사회환경 안에서 부모님이 나를 이만큼 자랄 수 있도록 자양분을 주신 것에 대한 지속적인 감사함을 느낀다. 태어난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정리하지 못하면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곡 해서 바라본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듯 부모님이 주어준 환경과 세상이 짊어준 환경 속에서 외곡 되는 순간도 많았지만, 노력과 노력, 그리고 노력 끝에 다이아몬드는 아니더라도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다.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그 무언가. 그 무언가의 모양을 잡아가는 것은 내 몫이며, 더 빛나게 할 것인지 다시 진흙탕에 묻어버릴 것인지도 내 몫이다.     


그가 반박하지 않았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것들. 그저 사실만 놓아두고 깊게 인지하지 못했을 것들. 나의 존재가 이만큼 자라온 것에 대한,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돌아가는 계절에 대한 감사. 나는 태어났다는 사실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속에 축복을 보내고 싶다. 후에 영원한 빛을 따라가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와 함께 살아온 계절도 축복이길 바라본다.
      



삶은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
왜 이렇게 밖에 못 살지 싶을 때도 있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해내지도 못할 것 같을 때도 있고,
나의 못난 모습에 갇혀 웅크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스님이 이런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삶이 괴로워서 절에 왔는데, 절에오니
사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았다고요.
저도 이말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건 모두 알거에요.
태어난 후의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것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을요.
척박한 환경에서도 옳은 선택을 하면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갑니다.
익숙한 것에만 머물것이냐
다른 방향을 위해 새로운 것을 할 것이냐는
본인 몫이죠.

혹시 당신이 선택해온 길이 계속 힘들기만 했다면
그 선택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이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겠죠.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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