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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24. 2019

37 : 물배기

연애 에세이 : 결혼하면 싸운다는데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37 : 물배기

연애 에세이 : 결혼하면 싸운다는데


               


 사람은 간혹 불같이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를 만나고 딱 한 번 그랬다. 그래도 유달리 화를 잘 내지 않는 나인데, 정말이지 이번엔 참을 수가 없었다.     


 결혼하기 3개월 전 하나씩 물품들을 장만하던 시기였다. 수세미 통을 샀다. 신혼집으로 이사한 후 수세미를 사용하기는 하는데 통이 없으니 영 불편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품이 도착한 날. 박스를 뜯자 마자 어느 부분에 설치할까 고민했다. 싱크대 안쪽이 적당한 것 같아 오른쪽 수도꼭지 손잡이 아랫부분에 부착했다. 싱크대가 조금 좁아지는 듯한 느낌은 들긴 해도 왼쪽에 다는 것보다 덜 좁아 보이고, 나는 오른손잡이니까 ‘이쪽에 달면 편할 거야’하고 생각했다.     


 다음날 점심. 그가 부엌으로 가더니 새로 생긴 수세미 통을 확인했다. 신혼집을 꾸미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던 나에게 샀냐고 물어 샀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는 통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른쪽에 달면 수도꼭지도 있고, 그 옆에 건조대도 있어 물기가 많이 모이는 곳이라 곰팡이가 낄 염려가 있으니 왼쪽에 달자고 제안 했다. 나는 오른쪽이 편하다며 거절했다. 속으로는 싱크대는 원래 물기가 많은 곳인데 왼쪽에 다나 오른쪽에 다나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는 아니라며 왼쪽에 달자고 다시 말했다. 할 수 없이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이러나저러나 같을 것 같고 나는 오른쪽이 편하다고.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달면 공간은 똑같이 좁아지는데 차라리 물기가 없는 곳에 달거면 벽면에다 부착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쓰고 난 수세미의 물이 선반 위에 뚝뚝 떨어질 텐데 그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그는 벽면에 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벽면으로 달자는 의견을 냈다. 우리의 실랑이는 몇 번을 주고 받았고, 나는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이렇게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는 그때부터 열이 받았다. 왜 자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냐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원하는 대로 하라고 다시 말했다. 그 곰팡이가 대체 얼마나 중요하다고 그럴까? 라는 심정이었지만, 그의 심기를 더 건드릴 것 같아서 내 주관적인 생각 대신 우리 엄마 집이나 다른 집에 가면 수세미를 싱크대 안쪽에 놓아두는데 곰팡이 안 생기더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그분들이 몰라서 그런 거라고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그냥 원하는 대로 하면 될 것 아닌가. 왜 다시 날 불러서 싸우기 시작하는지, 나는 벗어날 수 없는 덫에 휘말린 것 같았다.     

 흐지부지하게 싸움이 끝나고 감정의 골이 파인 채로 정적이 흘렀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았고, 나는 화장실 앞에서 페인트칠을 마저 했다. 하던 작업을 마치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왔다. 그는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런데 내가 설거지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키더니 침실로 가버렸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나를 피했어?’ 하고 생각했다. 뜨끈뜨끈한 열이 조금씩 몸 안에서 올라오는 걸 느꼈다. ‘피한 거 맞지?’ 또 생각했다. 뜨끈했던 것이 이제는 디일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피한 것 같았다. 나는 행동에서 오는 위험성의 파장이 말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열이 더 끓어올랐다. 설거지하던 손짓이 투박해졌다. 비눗물이 묻은 식기들을 헹궈 건조대에 툭툭 놓았다. 그러다 결국, 열이 끓는 점을 넘어버렸다. 이제 내 손은 식기들을 건조대로 던지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 차분한 척 물었다. 내가 혹시나 착각한 걸 수도 있었다.


 “내가 설거지하러 왔을 때, 나 피해서 여기로 온 거 맞아?”

 “응.”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나를 올려다보며 답했다.

  “오늘 함 하러 가지 말자. 나 정릉 집으로 갈게.”


 이날은 우리가 맞춘 결혼반지를 찾아, 함을 들고 정릉에 있는 친정집으로 가기로 한날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에 물건을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는 나를 보더니

     

 “웃기고 있네.”     


 하고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말에 피부가 터져 버릴 것 같이 화가 치밀어 이웃집 사람들 상관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향해 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뭐?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네?!”


 문을 닫고 들어와 나는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키며 다시 짐을 쌌다. 담배 향을 폴폴 풍기며 들어온 그. 거실 소파에 앉더니 나를 불렀다. 담배 한숨 두 숨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온 그는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어 보였다. 잠시 뜸 들이다 순순히 거실로 갔다. 차분해진 모습. 당황하지 않은 척하지만 당황한 모습. 천천히 자신이 그랬던 이유를 설명 해 줬다. 소파에서 침실로 간 것은 철없는 자신의 모습이라며, ‘나 삐졌으니 다가와서 풀어달라’는 행동이었다고 했다. ‘웃기고 있네’하고 말했던 이유는 오늘 같은 나의 모습이 자신한테나 나올법한 모습인데 평소답지 못한 나를 보고 현실성이 떨어져 그랬다고 했다. 나를 다시 불러 싸우게 된 것은 ‘마음대로 해’라는 말이 퉁명스럽게 들렸고, 자신과 대화하려 하지 않고 포기하는 모습으로 보여 그랬다고 했다. 나는 포기한 게 아니라, 싸우고 싶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그는 나에게 곰팡이에 대한 설명을 계속해준 건 내가 모르는 게 많으니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부터는 자신과 대화할 때 끝까지 대화를 끝마치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타협하고 싸움을 끝냈다.     


 어렵다. 이렇게 작은 거 하나에도 아웅다웅하다 일이 커져 버렸다. 겨우 수세미 통 하나 어디에 놓느냐를 두고 싸우다니.     


 시간이 흘러 화가 풀린 그는 나에게 다가와 안아주며 말했다.

 “이제, 그만 싸우자.”

 나는 앞으로 싸울 일이 많을 걸 알기에 말했다.

 “어차피 싸울 거야.”

 그가 대답했다.


 “그럼. 잘 싸우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살아 간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매일 느낍니다. 연애를 할 때 싸움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당연한 일이지만, 결혼하고 싸우는 것은 더 당연한 일인듯 느껴집니다.
달랐던 두 명이 한 집에 같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이 삐걱대지 않고 같이 맞물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정말이지 굉장히 중요합니다. 결혼한 직 후는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충돌이 잦을 수도 있습니다.
잘 맞춰지고 있다면 점점 싸우는 횟수도 줄어들겠지요.

싸울 때는 '잘' 싸워야 합니다.
특히나 삼천포로 빠지지 않고 원점에서 얘기하고 감정적이기 보다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조금 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해결을 해야겠지요. 같은 이유로 싸우지 않는 방법을 찾고,
큰 불씨로 자라지 않도록 남은 감정도 같이 정리해주어아하죠.
결혼을 하려고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표현'하고 '대화' 그리고 '인정'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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