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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Oct 01. 2019

40 : 교집합

연애 에세이 : 함께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40 : 교집합     

연애 에세이 : 함께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




  식탁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빈 그릇들. 싱크대로 옮겨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보인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습관. 내가 갖고 있는 습관 중 하나는 밥상은 다 먹으면 바로바로 치우는 것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하셨고, 자라오며 항상 그렇게 따랐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어있었다.     


 결혼 전부터 같이 산 신혼집에서의 두 번째 저녁 식사. 함께한 맛있는 식사를 내가 먼저 마쳤다. 빈 밥그릇을 싱크대 안으로 옮기려 했다. 그러자 그는 그릇들은 식탁 위에 그대로 두고, 설거지 하지 말고 좀 쉬라며 내 몸을 소파에 앉혔다. 나는 별거 아니란 생각에 ‘아니, 뭐 어때. 그냥 할게’하고 말하자 그릇들을 바로 안 치우면 뭐가 잘못되냐며 나를 나무랐다. 그래도 신경 쓰임에 내 눈짓이 싱크대와 식탁을 향하자 그가 소리쳤다.     


 “좀 하지 마!!!!”     


 전날 저녁. 그와 함께한 첫 번째 저녁 식사. 먼저 다 먹은 내가 빈 그릇을 싱크대 안에 갖다 놓았고 그도 다 먹었으니 설거지를 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말렸다. 왜 그렇게 힘들게, 피곤하게 몸을 굴리냐며 좀 쉬엄쉬엄하라고 말이다. 내가 안쓰러워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서 좀 쉬다가 부엌으로 다시 갔다. 그 모습을 본 그가 벌써 하냐 그러길래 쉴 만큼 쉬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더 쉬어야 한다며 보고 있던 티브이 프로그램을 마저 다 보고 하라고 했다. 난 티브이를 볼 생각이 없다며 설거지를 했었다.     


 “오빠한테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습관에서 오는 충돌이었다. 그는 10년 넘게 혼자 살았다. 혼자 살면서 10년을 넘게 음식은 천천히 먹었고, 치울 때는 손길 가는 대로 치웠다. 빨래나 청소도 해야 할 때 몰아서 하곤 했다. 티브이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못 봤던 프로그램을 왕창 다운받아 한꺼번에 보았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 한 후의 휴식을 위한 습관이었다. 그와 다르게 나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림 하나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짬이 나는 대로 그려야 했고, 때로는 공부를 했다. 프리랜서라고 시간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돈을 벌려면 어디에라도 가서 일했다. 밥도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 내 할 일도 많은데 티브이 프로그램을 볼 여유는 없었다. 엄마 아빠가 티브이를 보실 때 재밌는 부분이 있으면 잠시 서서 보다 들어갔다. 소파에 앉질 않았다. 티브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할 일이 끝나면 다른 할 일을 찾아 했다. 살기 위해 나를 키우기 위한 습관이었다.     


 지금까지의 나이가 되도록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명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의 습관을 이해했었다. 혼자 살던 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그의 생활 패턴을 보고 알았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바로 치우는 게 좋아. 먹었으면 치워야지.”     


 그가 나를 위해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나는 티브이를 보며 쉬는 것보다 나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좋아한다. 그림을 그리는 거나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게 나에겐 쉬는 것이자 즐거움이다. 나는 그의 행동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그가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 보는 이유를 안다. 전에 말해줘 알았다. 게임 회사에 다니니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것과 변화되는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했고 그러므로 그에게 티브이 시청과 게임은 자연스레 쉬는 것이자 즐거움이 되었을 것이다.     


 “알았어. 이 부분에선 내가 포기할게.”     


 우리의 이번 싸움은 그의 포기로 끝을 맺었다. 포기한다는 말은 내가 어떻게 하든 건들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걸 원했다. 포기라는 단어보다는 인정. 나를 인정해주길 바랐다. 내가 나를 인정하기도 힘든데 상대를 인정하라니. 그래, 힘든거 맞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버려두어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바꾸는 것은 나 자신을 바꾸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니 자신에게 맞추려는 것 보다 상대를 바라보는 내 마음부터 바꾸는게 먼저이지 않을까.     


 이후, 우리는 이러한 일로 절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습관에 물들어갔다. 어느새 그는 밥 먹은 그릇들을 바로바로 치웠고, 나는 피곤한 날엔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지 않았다. 가끔은 싱크대 속 그릇들을 내버려 둔 채 그의 품에 안겨 티브이를 보았다.        

       




함께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 그건 바로 '인정' 입니다.
'인정' 한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낸다는 말입니다.
오해 없이 그 모습 그대로 말이죠.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아주 기본적인 사항 중 하나입니다.
타인을 나에게 맞추어 바꾼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에요.

사랑하는 그 사람을 고쳐쓰지 마세요.
망가지면, 고칠 수도 없어요.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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