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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Oct 02. 2019

41 : 연극

연애 에세이 : 결혼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41 : 연극            

연애 에세이 : 결혼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다소 어둑하고 아담한 공간. 복닥복닥. 꽉 찬 자리들. 앉거나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 맨 앞 단상 위에 서 있는 남자와 여자. 한 곳만을 내리쬐는 조명. 장난기 어린 환한 웃음을 띤 남자와 수줍은 미소를 짓는 여자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문화생활을 좋아해 뮤지컬이나 연극을 자주 보았다. 잘 차려진 무대. 준비한 대로 열연하는 배우들. 바라보고 있으면 빠져들어 흠뻑 취하게 된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우렁차게 쏟아지는 박수갈채. 연극을 위해서는 무대를 세팅하고, 연기 연습을 하고, 관람객을 모아야 한다. 큰 것부터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다 제대로 준비해야 더 실감 난다. 한 번의 무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과정이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을, 결혼준비를 하며 절실히 느꼈다.     


 대체 뭐 때문에 그리도 힘들게 결혼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이 많은 절차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나는 결혼준비를 시작할 때 그가 아닌 우리 엄마와 엄청나게 싸웠다. 아기자기한 레스토랑에서 조촐하게 직계가족들만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내 의견과 보통 모두가 하는 그런 결혼을 하라는 엄마의 의견. 부모는 자식을 이길 수 없다지만, 이번엔 엄마가 이겼다. 가족 모두가 나를 설득했다.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준비하는 과정도 힘겨웠다. 나의 주관이 뚜렷하기도 했고, 남자가 신경 쓰지 않는 게 더 도움이 된다 하여 집을 보러 다니는 것 이외에는 거의 모든 것을 나 혼자 다 했다. 4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준비하는 과정 안에서 나는 2명이 된 것 같았다. 몸 속에 있는 모든 세포 정령들이 나와 함께 싸워주었다. 세세한 물품 하나부터 큰 가구들과 결혼식장, 예복, 드레스, 메이크업, 촬영, 청첩장, 신혼여행 예약 등등. 결혼식. 그날만을 위한 준비를 10개월. 나 자체가 꼼꼼한 사람인데 원래 하던 일과 함께 이 모든 걸 준비 하려니 언젠가는 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시간이 어쩜 그리 빠르던지. 식 날의 하루는 광속으로 흘렀다. 나는 흘러가는 것도 모른 채 시간이란 의자에 멀뚱히 앉아만 있었다. 난 대체 뭐 하고 있는거지? 하얀 드레스를 입은 내가, 내가 맞는 걸까. 그는 어떨까? 그는 괜찮을까?


 “신부 입장!”


 사회자의 말에 따라 문이 열리고 입장했다. 길을 따라 걸어갔다. 분명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에게 내 손이 넘어가 있었다. 그를 따라 단상 위에 올랐다. 하객들을 바라보았다. 불현듯 어느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중학교 2학년, 학예회 연극무대에서 나만을 비추는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한 적이 있었다. 학교 절반의 학생들이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다행히, 연습했던 대로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했다. 참,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올라가니 하얀 불빛밖에 보이지 않아 생각 보다 떨지 않았던 기억. 그 장면이 떠올랐다. 조명이 비추는 하얗고 동그란 공간 속에 오롯이 혼자만이 서 있었던. 그때처럼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위에 서서 그와 내가 함께할 시간들을 약속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올린 거의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식을 올린 후엔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별거 없다고, 혼인 서약서만이 남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진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그랬다. 느낌은. 식을 올리고 몇 일이 흐른 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결혼은 우리를 위한 것이지만, 결혼식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족, 친지, 친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연극을 준비하듯이 식장이란 무대를 마련하고, 무대의 조연들을 섭외하고, 초대장을 만들고, 하객을 맞이하고, 무대에 설 준비를 하는 배우처럼 옷을 맞춰 입고, 문을 열고, 단상 위에 올라선다.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몸과 입을 움직이는 주인공. 주인공을 위해 최선으로 노력해주는 조연. 준비된 볼거리들을 즐기는 하객들. 울고 웃는 주인공과 조연. 가슴 깊이 축하해주며 공감해주는 하객. 주인공이 주인공이 아니었던, 하객이 하객이 아니었던. 주인공은 하객을 위한 하객은 주인공을 위한. 모두가 함께한 연극. 그게 결혼식이었다.  

   

 그러므로 하객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 10개월이 힘들었던 건 당연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돌아간다면 내가 원하던 아주 작고 작은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혼자서 행복한 것보다 다수가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결혼의 준비단계를 톡톡히 치뤘습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그 사람과 저 인줄 알았는데
결혼식도 결혼도 저희만 주인공이 될 수 없더군요.
인생의 주인공은 나 이지만 이 인생을 꾸며주는 사람들도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혹시 가족들과 의견이 안맞는 부분이 있다면 고집 피지 말고 잠시 접어 두세요.
나를 위한 것이 모두를 위한 것이라 가끔은 내려 놓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차분히 지켜보세요. 내려놓음으로서 생각지 못한 것을
느끼거나 얻을 수도 있으니까요.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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