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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숩숩 Jan 19. 2018

'국립'이라는 이름의 무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올해의 작가상 2017>


백현진


<올해의 작가>전을 계승한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의 전시가 벌써 6회차를 맞이했다. 미술계를 좌지우지했던 국전만큼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미술상을 꼽을 때 에르메스재단상, 리움 아트스펙트럼과 함께 그 이름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입지를 굳혀 왔다. 이는 어쩌면 SBS라는 거대 사기업의 재정적 지원과 국가 기관이라는 권위를 겸비했다는 점에서 볼 때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해외 시장 진출에 편중된 사업 방향이나 불투명한 심사 과정 등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많지만, <올해의 작가상>이 국내 작가들에게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이들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는 사실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전시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의 여부와 전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효과적으로 구현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국현이 종종 지적 받는 '공무원 식'의 형식적인 전시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후보 작가 4명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의의를 넘어서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보다 관람객과 가까운 입장에서 2017년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평해보고자 한다.




좋은 공간, 좋은 작품, 그러나 운영은...?



수차례 해외 수상으로 검증된 국현의 자랑거리, 전시 디자인부터 살펴보자. 넓은 홀 구조를 가진 서울관으로 옮겨오면서 평가의 초점은 더 이상 단독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주어진 공간 안에 자신의 작품 세계를 얼마나 잘 구현했는가로 바뀌었다. 4명의 후보 작가들이 경쟁하는 방식의 특성상 누구에게 어떤 성격의 공간이 배정되는지는 민감한 사안일 것이다. 전시 공간의 공평한 분배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2016년 전시에서는 김을에게 너무 많은 면적이 할당되었으며, 믹스라이스와 함경아 공간 사이의 경계가 흐릿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올해 역시 작년과 동일하게 1전시실과 2전시실을 사용했으나 전시실마다 작가를 2명씩 배치하여 비교적 비슷한 규모의 공간을 제공하였다. 또한 벽 색깔 및 조명의 변화나 문과 계단, 장막 등으로 각각의 공간을 확실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써니킴


이에 더하여 전시실마다 다른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감정적으로도 분리된 공간을 보장하였다. 회상과 휴게실을 주제로 한 써니킴과 백현진의 작품은 1층(1전시실)에 배치되어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형성했다. 특히 써니킴의 공간은 먹색의 벽이었는데도 자연광을 활용하여 햇빛이 쏟아지는 야외 조각 공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어둠 속에 뛰어들기'라는 주제로 풍경화 연작을 선보인 작가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공간이었다. 이어진 백현진의 휴게실은 교회의 예배당을 연상시키지만, 평온함 속에서도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린 의자와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매트리스, 그리고 네온사인 빛이 모든 것을 포기한 현실을 대변하며 기묘한 공기를 만들었다.


1전시실이 휴식의 공간이라면 2전시실은 긴장의 공간이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는 반전된다. 파란색 조명과 양쪽의 대형 스크린,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총들의 집합이 풀어졌던 경계심을 일깨운다. 박경근의 작품이 설치된 통로를 둘러보던 관람객들은 암막 커튼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기대감을 품고 송상희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탁 트인 어두운 공간에 놓여진 작품은 단 두 점일 뿐이지만, 3개의 채널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거대한 파괴의 이미지와 낯선 사운드는 입장객들의 감각을 곤두서게 만든다. 이렇게 전시를 이루는 2개의 층에서 표상하는 감정선을 달리 하여, 작가별로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의도하는 것에 성공했다.


박경근


그런데 문제는 1층이 아니라 지하에서 입장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전까지의 국현 전시와 비교했을 때, 이번 전시에서는 이례적으로 관람객의 동선을 위에서 아래로 고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송상희의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시실 내에서도 한 방향으로 이동하게끔 화살표가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전시가 양방향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하에서도 들어올 수 있는 입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막지 않는 이상 다른 경로를 통해 들어온 관람객에게도 의미 있는 전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정적인 분위기에서 역동적인 영상 설치 작품으로 이어지는 전시의 구성은 앞서 살펴보았던 순서로 관람할 때에는 효과적이지만, 거꾸로 감상할 경우 1층에 놓인 작품이 상당히 밋밋해지는 결과를 불러온다.


동선 문제를 비롯한 전시 운영의 혼란은 박경근 작가의 공간에서 가장 심화된다. 아마도 다수의 관람객들이 가장 당혹감을 느꼈을 공간이나, 사실 그의 작품이 설치된 곳은 미술관에서 가장 독특한 공간이기도 하다. 1전시실과 2전시실을 잇는 계단이 위치한 덕분에 작품을 서로 다른 높낮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말 이 작업에 적절한 장소였다. 위에서는 총들이 일제히 정렬하는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한편, 아래에서는 관람객이 작품 내부에 들어가 그 자신이 또 하나의 '총'이 된 듯한 긴장감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상영 시간과 엘리베이터 동선이 이러한 임팩트를 반감시켰다. 박경근의 <거울 내장: 환유쇼>는 특성상 퍼포먼스를 보았는지의 여부가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인상을 크게 좌우한다. 나는 세 번째로 전시장을 찾았을 때에야 총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하루에 4번 상영하던 것을 관람객의 포화로 상시 작동하게끔 바꿨기 때문이었다. 시작과 끝이 명확해야 그 긴장감이 살아나는 작품이기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상영 시각에 관람객이 몰린다고 하여 계속해서 가동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게다가 계단을 대체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의 위치 또한 문제였다. 전시장 입구에서 작품에서 수반되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와 움직임에 대해 경고하고 있음에도 노약자와 어린이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작품 사이를 가로질러야만 했다. 혼잡한 전시 운영은 결국 이 공간을 빨리 통과해야만 할 것 같은 불쾌한 통로에 그치게 만들었다.


  

송상희

관람객을 위한, 그러나 의할 수는 없는



기획 과정에서 전시 테마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2017년 전시에서는 공통적인 주제의 경향성이 발견된다. 군대라는 집단 속에서의 경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혹된 행위들, 현대 한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 모두 어찌할 도리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정체성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한 명 한 명의 촛불이 모여 대통령까지 바꾼 '올해'라는 측면에서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사회적인 이슈를 전면에 드러낸 이번 전시는 그만큼 전시장을 찾는 이들의 관심사에 맞추려 했던 노력으로도 보여진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관람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참고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전시장 벽에 제시된 소개글부터 팜플렛, 오디오 가이드, 도슨트와 작가 인터뷰 영상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올해의 작가상>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나, 이것이 일반인들의 심층적인 작품 해석에 얼마나 활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팜플렛은 짧고 어려운 반면 인터뷰 영상은 너무 길다. 그리고 부족한 수량 탓에 동나기 일쑤인 오디오 가이드도슨트는 제한된 시간에 소수의 인원만 이용할 수 있다. 이를 종합했을 때 관람 시간을 자율적으로 운용하면서 충분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작품을 보는 그 자리에서 바로 궁금증을 해소하게 하는 것은 관람객이 상상할 자유를 빼앗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실마리가 없는 상황 역시 관람객이 작품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일 기회를 제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의 작가상 2017> 디지털 아카이브

국현에서 관람객들과의 거리를 보다 좁히기 위해 마련한 장치가 바로 디지털 아카이브전시 연계 프로그램이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 아카이브는 특히 중요한데, 후보 선정 이유를 설득하기 위한 증거물로서 역대 작업들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장 출구에 설치했던 작년과 달리 아카이브를 교육동에 위치한 디지털 아카이브로 이동시켰다. 아마 부족한 면적 탓에 전시할 수 있는 작업물의 양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테지만, 아카이브를 전시장과 분리시킴으로써 다시금 관람객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타 미술관보다 훨씬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형식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강연이나 갤러리 투어, 작가와의 대화에서 관람객은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로서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전시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




앞서 여러가지를 지적하긴 했어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는 사실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와 닿지도 않는다. 뭐랄까. 푸드 코트에 진열된 맛있게 생긴 레플리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 전시 같기도 하거니와, 그다지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립'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제도로서의 성격이 강한 전시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탓도 있을 테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가 균형추로 작용할 것인지, 아니면 발목을 붙잡는 족쇄가 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전시였다.



<올해의 작가상 2017> ~2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menuId=1020000000&exhId=201703130000541
올해의 작가상 2017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여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수상제도로서,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할 역량 있는 작가를 전시하고 후원함으로써 한국현대미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마련되었다. 대상 작가는 실험성과 참신성을 갖추고 한국 미술계는 물론 세계 미술계에 새로운 이슈와 담론을 창출하며, 미래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생존 작가이다.‘올해의 작가상’ 제도는 공정하고 개방적인 작가 선정과 지원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동시대 미술계의 필요에 응답하는 현장 중심적이며 실질적인 미술후원 제도를 지향하고 있다. 올해는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예술적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써니킴(1969~), 박경근(1978~), 백현진(1972~), 송상희(1970~)를 ‘올해의 작가상 2017’전의 SBS문화재단 후원작가로 선정하였다. 4명의 작가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10명의 추천위원을 선정하고 그 추천인단을 통해 역량 있는 작가들을 추천 받아, 국내외 미술인으로 이루어진 4명의 심사위원의 포트폴리오 심사 및 작가 스튜디오 현장 인터뷰를 통해 선발되었으며, 서울관 1, 2전시실에서 다양한 주제로 신작을 선보인다. 오는 12월에는 각 작가에 대한 심사위원단의 2차 심사가 개최되며, 이를 통해 <올해의 작가상 2017>의 최종 수상자 1인이 선정 될 예정이다. 1전시실에서 써니킴은 <어둠에 뛰어들기>라는 주제 아래 회화와 설치작업으로 공간을 연출하며, 내재된 기억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심리적 영역을 실제 공간으로 불러낸다. 회화는 오브제, 영상, 소리와 어우러져 ‘완벽한 이미지’를 위한 하나의 무대를 구성한다. 이어지는 백현진의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은 도피처이자 휴게실, 명상의 장소이자 복합문화공간을 재현한다. 관객은 어느 남성의 삶에 관한 가상의 시나리오 ‘시’에 간섭하며 한편의 극을 경험하고 완성시켜나간다. 2전시실로 연결되는 14m의 천정을 가진 공간에서는 박경근이 <거울 내장: 환유쇼>이란 주제로 로봇 군상의 일률적인 제식 동작을 연출하고 빛과 색채는 움직이는 조각들에 반응한다. 이를 통해 시스템 안에서 집단화되고 소외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강하게 질문한다. 2전시실에서 송상희는 종말과 생성의 관계들을 영상과 사진, 드로잉을 통해 섬세하게 읽어낸다. 아기장수 설화를 빌어 죽음과 재탄생의 변이와 확장을 이야기하는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영상작업과 함께, 비극적 폭발 이미지들이 담긴 푸른 모노크롬 벽 앞에서 낯선 안부 인사들을 듣게 된다. <올해의 작가상 2017> 홈페이지

www.mmc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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