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 사람은 그래서 왜 화가 난거지?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뿐인데, 노력의 결과로 돌아오는 것은 늘 진창이었다. 관계는 삐걱였고, 결국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 사람을 화나게 했다'라는 단순 정보값에 의한 죄책감에 허덕였다.
"제가 이상한 거예요? 아니면 모든 ADHD가 이러나요?"
울상인 표정으로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조금 뜸을 들이시고는 입을 여셨다.
"ADHD는 정보수집과 그 처리가 조금 어렵다고 해요. 아마 환자분이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지 못한 이유도 정보값이 목소리뿐인, 통화를 하는 도중이라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남들에 비해 부실한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ADHD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역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ADHD인이지만 놀랍게도 '사회생활 좀 한다'를 들어본 나도 소통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많다. 혹시 실수할까 눈치를 보는데도 그 노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나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ADHD인이 아니라 단순히 외향인과 내향인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도 당신의 곁에 지금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수년간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며 쉽게 관계를 깨지 않은 방법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1, 입을 다물고 있는다.
나의 경우, 말을 했을 때 '횡설수설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ADHD인 특유의 '쿠션어 사용'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내가 할 말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서론을 길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말만 명료하게 하면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반강제로 입을 다물게 되었는데, '말하기보다는 듣기'라는 대화의 기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제법 애용한다.
꼭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상대의 말이 끝난 후, 그 주제에 편승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다른 말을 하고 싶어도 어차피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순간 까먹게 되어 있기 때문에.
2. 상대에게 집중한다.
상대의 눈을 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눈에서 조금 빗겨나간 눈썹이라던지, 목걸이 등의 악세사리를 응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심한 ADHD의 경우 시선의 위치가 눈이 아닌 것만으로도 다른 생각에 빠질 수 있으니 최대한 눈을 보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말하고 있는'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1번처럼 대화에 있어 기본적인 예의가 되기도 한다. ADHD인의 경우에는 상대에게서 시선이 떠나가는 순간 무조건 신경이 다른 것으로 쏠리게 되어 있으니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설령 대화를 들어주는 것이 지루해지더라도 관심 없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 그것을 상대에게 들키는 순간 나에게서 정이 떠나가는 첫 단계가 된다.
음절 음절을 세며 고개를 끄덕인다던지, 맞장구를 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나, 이 방법은 대화의 주제에서 이미 관심이 떠나갔을 때 상대에게라도 집중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임을 명심한다.
3. 말꼬리를 잡는다.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다. 말꼬리를 잡듯 대화하는 것이다. 만일 상대가 "나 너무 우울해서 충동소비 해버렸어."라고 말할 경우, "나도 저번에 우울했어"처럼 다른 주제를 꺼내지 않는다. 위의 경우, 대화의 주제가 상대에게 맞춰져 있음을 명심하며 "우울했어? 왜?" 혹은 "충동소비 했어? 뭘 샀는데?" 등의 답을 내놓는다. 예시의 경우 MBTI F인가 T인가에 따라 상대가 조금 서운해 할 수도 있는 대답이지만, 적어도 내가 정신병자임을 들키지는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심지어 대답 여하에 따라 공감왕이 될 수도 있는 기회다.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중간에 말이 끊기더라도 나의 말꼬리 잡기 덕에 대화가 다시 이어지게 되는데, 상대방은 자신의 말에 내가 집중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4. 갑을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대화는 언제나 수평적 관계로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한다. '무조건 상대가 맞다' 식으로 자아를 버리면 편한데, 그렇다고 내가 틀린 것도 아니니 자존감이 낮아질 필요는 없다.
나의 지론은 '왕보다 그의 귀여운 애첩이 훨씬 낫다'인데, 이의 연장선으로 '차라리 귀여운 척한다'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애써서 이미지를 구축해 봤자 나의 ADHD력에 얼마 안 가 전부 무너지기 때문이다. 다른 것보다 상대가 귀여워 보일 때 가장 헤어 나오기 어렵다고 하는 것처럼, 귀여움을 받는 것은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편한 방법이다.
5. 고마움과 칭찬은 바로바로 표현한다.
이 경우 최대한 과하게 표현해도 괜찮다. 고마움의 감정만큼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없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검증된 인간관계가 특효약이다.
설령 내가 실수를 하여 상대를 지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칭찬이나 고마움의 감정은 관계의 끝을 미룰 수 있게 해 준다.
성인이 된 ADHD인은 '내가 또 실수할까 봐'라는 생각 탓에, 혹은 어릴 적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사회생활의 기술이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릴 적 다른 이들에 비해 내가 쌓지 못한 기술은 결국 자신에게 피해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 어린아이가 아니다. 사회에 나와 소극적으로 변한 나의 관계에서 현재 나의 곁에 있는 이들은 나의 불편한 점들도 감수하고 함께 해주기로 한 소중한 이들이다. 그것에 보답하기는 어려워도 그들이 나와의 대화에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얻었으면 좋겠고, 그들이 나에게 지치기 전에 최대한 관계의 유효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에 노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