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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류 Oct 27. 2023

최애 생일카페 협력 제안을 받았습니다

-1 마음은 앞서지만 실력은 뒤쳐진

 한국에는 ‘생일 카페’라는 것이 있다. 좋아하는 연예인, 혹은 아이돌의 생일에 맞추어 팬들이 진행하는 이벤트인데, 카페를 관련된 물품(슬로건, 사진, 영상 등)으로 채운다. 그리고 카페인  만큼 음료나 디저트를 구매하면 팬이 직접 제작한 굿즈 또한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생일뿐만이 아니라 그룹의 기념일 등 기념할 만한 날에 맞추어 진행되는 것 같고, 꼭 하나만 진행하라는 법도 없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여러 개의 생일 카페가 열리기도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생일 카페라는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 내가 한평생 납작한 이들만을 사랑해 왔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될 수 있겠으나, 심각한 내향형 인간인 탓에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기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탓이다.  언젠가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공황 발작이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한몫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몸 담아왔던 장르들은 빠짐없이 생일 카페나 기념 카페가 주최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나, 나는 언제나 그에 대한 욕망만 가질 뿐 참여하지 못했다. 그래도 욕망만은 늘 거대했다.

‘언젠가 나도 저런 행사를 주최해보고 싶어!’

라는 터무니없는 꿈을 가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어떠한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이번 카페에 찬류님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네? 저를요?’

“뭐?!”

인터넷 연락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도 육성으로 소리가 나왔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늘 욕망만 거대하지만 그럴 역량은 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이 학생회장에게 같이 축제를 주관하자는 말을 들어본다면 딱 이런 기분일까.

심지어 우리는 실제 연예인을 상대로 한 행사가 아니었으므로 일러스트를 통한 굿즈 제작이 필수였는데, 함께 해주었으면 한다고 협력 요청을 받은 분야가 ‘일러스트'였다. 맙소사, 나는 그럴 실력이 되지 않는데도.

잠시 세상이 나를 상대로 트루먼쇼를 펼친다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실력으로는 내가 협력 제안을 드렸으면 드렸지,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 처참한 실력에 말을 얹는 경험은 겪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를 생각해서 연락을 주신 것은 매우 감사했다. 사람이 모여서 덕질을 하는 곳에서 내가 무언가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뜻일 테니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내 불안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결국 끝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비단 신뢰만이 걸린 문제가 아니었기에 신중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승낙을 외쳤다. 승낙을 외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생각은 ‘네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어’였다. 이미 많은 기회를 흘려보낸 나기에,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순간을 놓치고 더 이상 후회하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 ‘못 먹어도 고’를 실천하게 된 것이다. 그 첫걸음은 생일카페 협력이 되었다.


 그럼 우선 무엇을 해야 하지? 설레는 마음도 잠시, ‘잘 해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나의 뇌를 잠식했다. 남은 기간은 약 반년 남짓, 우선 나에게 실망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림 수련부터 시작해야 했다.

내가 ‘수련’이라 부르기 시작한 그림 연습은 지금까지 약 2주간 이어졌다. 매일 하루에 하나씩 그림을 그리고,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이 있어서인지 그려지는 것들은 좀처럼 마음에 차지 않았다.

마음을 먹어놓고는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림을 그리기를 거부하는 내가 보였다. 겨우 2주인데, 마음을 먹어놓고도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모든 게 작심삼일에서 끝난다면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면 된다’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이 어디 쉬운가. 결국 모든 그림들은 낙서에서 그쳤고, 내가 만족할 만큼의 결과물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손이 느린 나이기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그림 연습을 겨우 생각해 낼 쯤이면 늦은 시간이라 몸이 열정을 따라주지 못했다. 집중력은 금세 소모되고 목표치에는 달성하지 못했다. 마음이 급한 나는 또 자괴감에 휩싸였다. 차라리 실력이 처참한 지금, 무언가가 당장 결판이 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훨씬 이롭겠다 싶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던 와중, 참가가 확정된 이들에게 단체 연락망이 주어졌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속으로는 비명을 지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주최님은 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는지, 나에게 또 하나의 설렘을 안겨주셨다.

‘찬류님께 이것의 디자인을 맡겨도 될까요?’

오예! 언제나 디자인 작업에 대해 목마름을 가지고 있던 나이기에 당장 오케이를 외쳤다.

‘그래, 어차피 참가하는 것, 후회 없이 모든 걸 펼쳐보자.’

지금의 고민도 결국 미래의 나에게 주어질 밑거름이다. 미래의 나를 믿고 지금은 고민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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