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구 Oct 26. 2024

밤 산책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요즘 내 거처는 오사카다. 한동안의 근황을 짧게 얘기하자면 6년 동안 만난 지금의 파트너와 결혼을 했고 그를 따라 이곳 오사카에 왔다. 다행히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바뀌진 않았다. 다만 각자가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긴 사람들이라 같이 산다는 것에 지레 겁을 먹었을 뿐. 가령 감기처럼 잦은 우울이 찾아오는 나로서 그 우울을 견디는 방법으로 고립을 선택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여럿 불안이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겪었던 것은 일종의 메리지 블루가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나 같이 제멋대로 살아왔던 사람은 나만의 것이 구체화되어있기 마련이다. 크게는 누군가에게 구속받지 않았던 생활 패턴이며 디테일하게는 수건을 개어 넣는 모양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붕괴되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야 된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다행히 나와 파트너는 정답을 정하지 않았고 각자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방법으로 서로를 받아들였기에 이러한 스트레스가 그저 나의 불안으로 끝날 수 있었다.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세상의 모든 불안은 생각으로부터 기인한다. 겪어 보지 않았기에 나는 결혼 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있었다. 누군가에겐 그것이 매체로 전해 듣던 고부 관계일 수도 있으며, 자신이 겪은 부모의 사례를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과거의 경험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게는 과연 스스로가 이 관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문이었다. 


나는 뭐든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라는 인간 만으로도 충분히 그 짐이 버겁게 느껴지고 나 혼자 잘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늘 의심한다. 평생을 해야 되는 것들로 살아온 부모님은 이런 내가 예민하다고 했으며, 가난으로 그 어디에도 도피처가 없던 파트너는 다른 의미로 이 마음을 이해하는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결혼은 나와 가장 안 맞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가장 의심했던 사람이 부모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이나 말이다.


사실 나보다 결혼에 더 큰 결심을 한 것은 나의 파트너였다. 가난했던 집안에서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왔던 파트너는 자신 때문에 마지못해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생각한 부모님을 불쌍히 여겼다. 집을 떠나고 싶어 어머니 몰래 쓴 타 지역 국립대들을 모두 합격해 놓고도, 남은 동생이 불쌍해서 결국 안전빵으로 쓴 집 근처 사립대를 간 바보였다. 이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왜? 살아가기 바빠서. 그래서 책임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어쩌다 만났다. 6년의 연애 기간 중 코로나로 인해 2년을 못 본 적도 있었다. 다행히 우리는 적당히 늙었고 그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 긴 롱디(장거리 연애)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서로의 것들을 존중하기에 가능했다. 마치 지금 우리의 결혼 생활 연장처럼 말이다. 적어도 우리의 방법은 서로의 책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각자의 최선 같은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서로가 다른 우리는 두 손을 잡고 밤 산책을 한다.


저녁을 먹고 난 뒤 하루의 끝, 춥지도 덥지도 않은 가을밤은 늘 아깝다. 그 아까움에 못 이겨 밖을 나서 본다. 한국보다 일찍이 해가 지는 일본은 11월이 다가오는 요즘 5시가 조금 넘어도 깜깜해진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주택가와 번화가 사이에 있어 조금만 발을 돌리면 아주 조용한 적막으로 건너갈 수 있다. 집 근처 작은 냇가를 따라 하루의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늘여 놓으며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함께 걷는다. 우리의 밤 산책이 좋은 건 그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서 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마지막 목적지는 같은 집이니 말이다.


우연히 백예린이 부른 <산책>을 들은 후로 나의 밤 산책은 언제나 비슷한 마음을 가진다. 백예린의 산책보다는 원곡자 이한철의 마음이 좀 더 비슷한데 다름 아닌 어떤 그리움이다. 내게 밤 산책은 미래 언젠가의 내가 지금 걷는 이 밤 산책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마음이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걷는 이 밤은 시간이 지날수록 켜켜 쌓일 것이고, 서로의 좋은 파트너로서 서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쌓이는 밤이라는 것을 말이다. 


언젠가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어떤 날, 우리의 밤 산책이 떠오르길 바라며 오늘도 당신과 나는 밤 산책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후 4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