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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구 Nov 11. 2022

오후 4시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합니다.

오늘과 어제 나는 궁극의 행복을 경험했다.


어제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 점심을 먹고 오래간만에 낮잠을 잤다. 평소 낮잠과 거리가 먼 나였지만 한동안 타지에 와 여행과 생활 그 중간 어디쯤 살아가고 있는 내게 여유가 필요했다. 한두 시간 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나는 지난밤 시작한 <오후의 이자벨>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랑으로 청춘을 수놓기 시작했고 간단히 읽으려 했던 내 모든 오감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또 한두 시간, 문득 틀어 놓은 유튜브 음악과 뒤늦게 들어오는 햇빛에 잠시 넋을 놓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서향이라 오후에서야 아주 약간의 해가 든다. 처음엔 얼마 들지 않는 이 일조량이 그저 불만이었지만 3주 차에 접어든 지금은 어느덧 이 시간의 햇빛마저도 고마웠다. 그리고 문득 내가 궁극으로 생각하는 행복이 그 오후 4시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2학년, 오후 4시에 관한 에세이를 써선 교내에서 제일 좋은 상을 받은 적 있었다. 뻔한 교내 글쓰기 행사였고 대충 써 갈기고 수다를 떨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때마침 뭐라도 쓰고 싶은 학생이었다. 그렇게 글쓰기조차 까먹고 살았던 몇 주가 지났고, 상을 받게 되었다 말씀해주셨던 수학 담당 담임 선생님은 그 글이 너무 좋았다며 칭찬하셨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변변히 칭찬할 거리가 없던 내가 그 선생님께 다시 보였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썼던 글이 다름 아닌 오후 4시에 대한 찬양이었고, 얼마 전 부모님 댁에 잘 보존되어 있던 교지를 통해 다시 읽을 수 있었다. 다시 본 그 글은 딱 10대의 허세 가득한 글이었다. 하지만 오후 4시에 대한 감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덧 그 빛을 누렀던 10대를 그리워하는 30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오후 4시를 어제도, 오늘도 가장 아름답다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의 내 글은 지난 시간만큼 담담해졌다. 더 이상 감정 가득했던 지난 허세 글을 흉내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늘, 그 마음 만은 여전한 오후 4시의 행복을 쓰고 싶었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되는 오늘의 나는, 낯선 고베에서 오후 4시 두 잔 잔의 맥주를 마시며 함께 사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오후 내내 많이 걸었고 적당한 취기에 붉어진 얼굴을 뒤늦게 화장으로 가리려 애썼다. 그리고 지금 아름답던 오후 4시를 지나 해가 지고 있다. 다행히 지금은 그 지는 해가 아름답다 느끼는 어른이 되었다. 언젠가 우울증을 앓던 나는 지는 해를 마주할 때마다 울었었다. 그런 시간들을 버텼던 지금의 나는 밤이 되기 직전 푸른빛을 가장 사랑한다. 내일 또 해가 뜰 것이라는 당연함의 기대가 그때와 나와 지금 나의 차이다. 물론 앞으로의 내 삶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직장에서 돌아오시기 전이었던 오렌지 빛이 가득했던, 오롯이 나 홀로였던 그 시간인 오후 4시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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