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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Aug 16. 2019

21년 만에 뜻밖의 사과

불평등한 관계 속 약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친의 칠순을 맞이해 가족이 함께 떠난 여행 마지막 날 나는 일생일대의 획기적인 순간을 마주했다. 21년 전 벌어진 부친의 폭력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를 받은 것이다. 고2, 그 시절 나는 학습에 대한 열의가 높지 않았지만 입시생으로서의 위엄만큼은 그 어느 누구 못지않았다. 그날은 휴일 저녁이었고 양친이 외출을 하고 다소 늦은 귀가를 한 탓에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했던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거실 티브이 소리는 여느 날보다 거슬렸고, 나이 터울 많은 어린 동생은 비명에 가까운 데시벨로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부친은 동생을 얼르고 달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는데, 그 줄어들지 않는 소음이 마치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듯 느껴져 나는 방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티브이 소리를 줄이던지, 애를 달래던지!!!!!”

짧은 정적이 흐르고 부친의 눈에서 이내 불꽃이 일었다. 그는 무릎 위에 있던 동생을 내팽개치듯 던져 버리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짧은 구간이나마 그는 거의 뛰고 있었다. 순식간에 부친의 주먹이 내 얼굴로 날아들었다.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주저앉아 있었고 시야 멀찍한 곳에 안착해있는 안경이 벌어진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부친은 “대체 뭐가 불만이야??!!!”라고 우렁차게 소리를 내질렀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놀란 외조부가 뛰쳐나와 씩씩대는 부친을 말렸다. 간신히 부친과 분리가 되어 나는 곧장 내 방 침대로 쓰러져 서럽게 울었다. 몇 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혼자 남겨졌고 그 누구도 내 방을 찾아 위로하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그래 봐야 10분 남짓) 아무도 찾지 않아 불안이 엄습할 무렵, 설마 했던 부친이 내 방을 다시 찾았다. 쉽게 찾아올 평화가 아니었다. 방에 그와 내가 남겨졌고 그는 방문을 잠갔다.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심산이었다.  ‘아 ㅈㅗㅈ됐다’ 당시 심정을 이만큼 적확하게 표현해낼 단어가 어디 있으랴. ‘뭐가 불만인지 말해보라’는 그의 목소리는 냉정을 찾은 듯 보여 안도감을 느꼈는데, 꺼이꺼이 울며 질문에 답하지 못한 나를 보고 그의 분노는 점점 거세지더니 급기야 내 뺨을 세게 후려치기에 이르렀다.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내심 ‘어랏 이번에는 주먹이 아니네?’라고 생각했다. 나는 땅을 치며 대성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터트렸다. 방문 밖에서 모친, 조부모 할 것 없이 아우성이었다. “이 서방 이러면 안 되네”부터 “가원 아빠 그만해요”라는 강력한 호소가 교차하며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나는 목청껏 서럽게 더 서럽게 울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내 통곡을 들어 부친을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이 열리자 할아버지는 부친을 끌고 안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진짜 끝났다’는 안도가 찾아들었다. 곧 어린 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안아줬다. 나는 동생을 끌어안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처럼 울었다. 울면서도 ‘대체 이게 뭔가’ 싶었지만 우는 게 어색해질 때까지 울었다.  

날이 밝았고 내 한쪽 눈알에 실핏줄이 터져 흰자에 선명하게 핏발이 섰다. 월요일이었다. 등교를 아니할 수는 없었다. 친구들이 내 자리로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동생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맞았다고 둘러댔다. 집에서 부모에게 맞고 산다는 친구들을 여럿 보았는데, 내 일이 되고 보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나 지났을까. 입이 근질근질한 나머지 친구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무용담에 가까웠다. 나는 부친의 폭력적인 모션을 따라 하며 폭력을 당한 내 모습을 희화화했고 친구들은 재밌다고 웃어댔다. 친구들과 유대감이 한껏 높아지는 듯했다. 집에서는 철저히 부친과의 대면을 피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생일을 맞이했다.

여전히 눈알에는 핏발이 서려 있었다. 나는 등교 준비를 하며 피아노 위에 놓인 손거울로 눈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부친이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날 이후 첫 접촉이었다. 공기는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그는 “어디 보자” 하며 내 턱을 들어 올려 한쪽 눈알을 들여다봤다. 나는 고개를 훽 돌리는 것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부친은 친구들과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며 피아노 위에 현금 몇만 원을 올려놓고 겸연쩍어하며 출근했다. 폭력이 있고 난 이후 부친이 처음 보인 미안함의 제스처였고 나는 그 미안함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그리고 21년이 지나 부친의 칠순 여행지였던 대만의 한 음식점에서 부친의 ‘진짜 사과’를 받았다. 고량주를 연거푸 마신 그는 몹시 슬프고 선한 눈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무엇을 듣게 될지 예상되었다. 부친이 21년 전 그 폭력 사태에 대한 죄책감을 모친에게 자주 털어놨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부친이 무엇을 말하든 그의 부담을 덜어 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부친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는데, 속으로 제발 그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눈물은 고인 상태로 말랐다. 나는 부친이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당신의 미안함을 잘 알고 있고, 나는 그 사건을 나름 잘 소화했으니, 더 이상 그 일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친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리 서둘러 그의 사과를 ‘처리’ 하고 도리어 그를 위로하려 했을까.

그 날의 그 폭력은 그리 놀라운 사건이 아니었다. 부친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뿐, 어디까지나 집안의 가장 권위 있는 사람으로 군림하며 집안의 모든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밖에서 세상 좋은 사람으로 살다 집안에서는 배우자와 자식에게 정서적인 폭력을 가하는 위선이 참기 힘들 정도였다. 힘이 대등하지 않으니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해도 나는 싫은 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편이었다. 그날 부친에게 맞으면서 어쩌면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디 한번 그 위선적인 가면을 벗어보라는 듯, 나의 눈빛은 그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 차 있었던 거 같다. 마치 부친의 이성을 잃은 행동을 끌어내는 것은 일종의 그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졌다. 학교에서도 그랬다. 고3 담임과 불화할 때 그이의 폭력을 당하고 모욕감을 느끼기보다는 묘한 쾌감이 일었다. 체벌은 권위에 도전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덕분에 그를 더 경멸할 이유가 생겼으므로.

이번 휴가 몇 권의 책을 읽었고 그 끝에 <체벌거부선언>을 읽었다. 몇 장 넘기기도 전에 깊은 한숨을 들이마시고 뱉어야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무슨 잘못을 하면 아빠는 나와 언니를 방으로 불러 문을 잠그고 장롱 뒤 매를 꺼냈다.” 문을 잠근다는 부분에서 심장이 내려앉는다. 가정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체벌은 공포스럽고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 어떤 체벌도 ‘교육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막상 나는 학교든 가정에서 내가 겪은 폭력을 그리 끔찍하게 여기지 않고 살았다. 그저 생애 누구나 겪는 하나의 해프닝일 줄만 알았다. 막상 글을 쓰고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자 심장이 얼마나 벌렁거리는지.

책의 필진들은 과거 체벌에 대해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대체로 피해와 가해의 경험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부친 역시 어린 시절 당신 부친에게 심한 언어폭력을 당했고 그 경험을 재생산하지 않겠다 젊은 시절부터 다짐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이 그 날의 폭력이었다고 고백할 정도니 죄책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좀 알 거 같다.

책을 덮고 나니 고민 하나가 남는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안에서 약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권력의 포식자는 할 수 있는 일은 비교적 선명하다. 그 힘을 성찰하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고 실천에 옮길 때 당장 그 권력자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힘의 관계 속 약자가 주체적으로 권력관계를 해체하고 균열을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막막해진다. 폭력에 눈 감지 않고 함께 목소리 내는 일이 그저 ‘함께’ 체벌당하기와 같은 결과를 예상할 수밖에 없을 때, 약자는 어떤 근원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을까. 고교시절 무지막지하게 선생한테 구타당하던 친구를 바라보며 그 선생에 대한 적개심에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거린 기억이 난다. 그때 내가 그 선생을 향해 ‘당장 그만 두시라, 어떤 이유로도 당신에게 이토록 굴욕적으로 맞을 만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와 같은 한마디를 할 수 있었다면, 아니 그 말을 할 수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 필요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체벌거부선언>을 읽고 크게 공감하고 분노를 느끼며 내가 속한 모든 관계를 성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남는 질문.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 할까. 같은 질문만 맴돌아 괴로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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