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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Dec 31. 2020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찌이

본의 아니게 무례한 사람에게 실수로 대처했다


이상하다. 주문한 지 열흘이 지난 핸드 타월 배송이 아직이다. 배송 예고 문자를 찾아 배송 추적을 해보니 23일 오후에 도착했단다. 그날 우리 집엔 다른 집 물건이 배송되어 그 집 문 앞에 물건을 갖다 준 기억 말고는 따로 받는 물건이 없었다. 담당 택배기사에 전화를 걸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기사님은 늦게 전화를 받았다. 물건을 못 받아 연락했다고 하니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으로 사는 데가 어디냐 묻는다. 동네 이름을 대자 "00동 어디요?"라고 쏘아붙인다. 나는 상냥하고 침착하게 한 단계 한 단계 풀어가려 했는데, 상대방 입장에선 시간도 없어 바빠 죽겠는데 동네 이름을 대고 있으니 복장이 터진 건가.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팍 상했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를 이딴 식으로 받는 건 아니다 싶어 상냥한 목소리에서 급히 상냥을 빼고 낮고 건조한 말투로 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나의 소중한 인내심을 이 대화에 쓸 일말의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동/호수를 대자 택배 기사는 물건을 현관 앞에 두었다고, 이렇게 전화할 게 아니라 가족들에게 먼저 확인해 보란다. 나는 있던 가족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며 ‘가족 없고, 받는 적이 없다’ 고 응수했다. 그는 그날 분명히 같은 층 두 집에 배송한 기억이 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새로운 정보였다. 저번 날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그 물건이 떠올랐다. 그제야 모든 것이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나는 여봐라는듯 ‘아저씨가 물건을 바꿔 배송해놓고, 내게 이렇게 화를 내면 어쩌냐’고 따졌다. 화가 나서 목소리가 발발 떨렸다. 내 입에서 ‘아저씨’라는 말이 튀어나온 건 상대에 대한 나의 존중감은 1도 남아있지 않음을 의미했다. 헌데 그 ‘아저씨’는 잘못을 인정하고 누그러지기는커녕, 물건 행방을 알았으면 가서 찾으면 될 일이라며 도리어 소리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인데,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동시에 말했고 내가 잠시 숨을 고르는 틈에 그 ‘아저씨’는 이따 들려서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분이 풀리지 않았다. 누구도 이런 무례를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속으로 내가 목소리 걸걸한 남자였어도 저렇게 나올까 싶으니 전화를 끊고 나서 얼굴은 더없이 불콰해졌다. 그러나 일단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가지고 이웃집 전화번호를 수소문해 문자를 넣어두었다. 


두 시간여 뒤 이웃집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 물건 받은 적이 없단다. 그렇다면 물건은 어디로 증발한 건가. 이웃집 아주머니에 대한 의심이 인다. 사람 마음 참. 일단 업체 측에 아무래도 물건이 분실된 것 같고 택배기사분과는 통화했지만 다시 연락하기 공포스러울 정도라고 일러뒀다. 그 사이 나는 두 세 차례 택배사에 온라인 컴플레인을 시도했다. 주된 내용은 배송 지연과 택배기사의 무례한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택배사를 꾸짖는 것도 잊지 않았다. 회사가 배송 사고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인 택배기사 개인에게 오롯이 지운 탓에 노동자가 방어적으로 일하는 거 아니냐는 논리였다. 뭔가 꺼림칙했지만, 전송 버튼을 눌렀고 모바일 불안정성으로 인해 전송되지 않았다. ㅅㅂㅅㅂ 바들바들 


이윽고 타월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택배기사와 통화했단다. 내가 걱정스럽게 힘드셨겠다고 하니,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며 ‘이런 분들 많아요’ 하더니 ‘차분하게 설명하니 알아들으셨다’고 했다. 속으로 그런 사람과 차분하게 설명하는 게 가능하구나 대단타 싶었다. 그러더니 집이 몇 호냐고 다시 확인한다. 000호라고 말하자 @@@호 아니냐고, 송장에는 @@@로 적혀있고 이는 고객이 작성한 것을 토대로 자동 입력되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아뿔싸.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은 나구나. 하아. 겸연쩍어하며 ‘아하하..제가 잘 못썼나 봐요. 죄송해요’ 하자 사장은 아까처럼 대수롭지 않다는 듯 ‘괜찮아요, 이런 분들 많아요’ 한다. 세상을 초탈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리스팩트. 졸지에 나와 그 상종 못할 것만 같았던 택배기사는 ‘이런 분들’ 범주에 함께 묶였다. 전화를 끊고 업체 사이트에 접속해 내가 입력한 주소지를 찾아본다. @@@호. 제길. 지 이름도 짝대기 하나를 빼고 썼다. 제기랄. 쒯. 


문제는 택배기사를 대면하는 일이었다. 나는 집을 빠져나와 과거 정든 동네를 배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의 전화번호가 내 휴대전화를 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왜 하필 그때 호주머니에 잠자고 있던 애를 깨워 시간을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는데 핸드폰 화면에 번호가 사라진다. 휴우. 그래. 그냥 현관 앞에 고이 두고 가시면 좋겠다 하는데 또 전화가 울린다. 하아. ‘받자 그래, 직면하자.’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근엄하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엿포세요..”, 저기 000 씨 되시죠? 아 네, 0@0입니다. 내가 잘못 쓴 내 이름을 정정하고 있다. ‘아저씨’는 아까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고, 물건은 경비실에 맡겨놨다고 했다. 그리고 다소 볼륨 높여 말했다. “아아니~~ 주소를 잘못 써 놓고 아까는 내한테 되~애게 뭐라 하대에~~.?” 나는 짧게 침묵하고 단호히 죄송합니다를 두 번 연발했다. 근엄한 목소리가 어느새 모기 목소리가 되어 쥐구멍을 찾아들어갈 참이다. 다소 의기양양해진 ‘아저씨’의 음색은 오전과 다르게 딱히 무례하지도 그렇다고 딱히 상냥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 소리였다. 살짝 나를 놀리는 듯한 뉘앙스에 인간미마저 느껴졌다. 나는 늘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인데 그 말의 가장 큰 수혜는 늘 내가 제일 많이 입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며, 핸드타월을 욕실에 보기 좋게 걸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혼자 말한다. “아아니~~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찌이~”


사장님, 택배기사님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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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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