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디스토피아조차 새로움이 없는가
부산행의 후속편
코로나로 인해 영화가 가뭄에 콩나듯 나올 때 나왔던 영화.
감독: 연상호
주연: 강동원, 이정현
줄거리/설명
4년 전, 나라 전체를 휩쓸어버린 전대미문의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던 ‘정석’(강동원).
바깥세상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반도에 다시 들어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나와야 하는 미션을 수행하던 중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4년 전보다 더욱 거세진 대규모 좀비 무리가 정석 일행을 습격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폐허가 된 땅에서 살아남은 ‘민정’(이정현) 가족의 도움으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이들과 함께 반도를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보다 먼저 보았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감상이 사라지기 전에 글을 남기고 싶어서 순서가 바뀌었다.
<반도>를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꼈다.
사람들의 평만 들었을 때는 거의 0.5점 수준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부산행>과 비교를 하던데, 나는 사실 <부산행>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수준 차이가 많이 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CG 같은 부분은 오히려 이쪽이 더 많은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부산행>이 관객을 천만명을 동원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고 생각했던 쪽이기에. <반도> 역시 생각보다 괜찮았다. 개인적으로는 <부산행>보다는 좀 더 애니메이션에 가깝고, <염력>보다는 좀 더 영화에 가까운 영화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는 드문 캐릭터
영화의 초반에 준이(이레)는 한정석(강동원)을 태우고 엄청난 운전 솜씨로 좀비들을 따돌린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있었던가? 물론 이 과정에서 매드맥스가 떠오르긴 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별로 흔한 캐릭터는 아니다.
준이의 동생 유진(이예원) 캐릭터도 그렇다. 이런 캐릭터들은 미국 애니메이션에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이런 캐릭터들은 뭔가 자기가 만든 것 중에 가장 대단해 보이는 것을 가지고 와서, (남이 보기에는 조잡해 보여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 자신이 분명히 해결할 것이라는 당당함을 내비치지만, 결국 일이 꼬여서 잘 안되고, 웁스 쏴리.. 이러다가 결국 어찌어찌 잘 해결된다. 미국 애니메이션 중에 어떤 걸 틀어도 이런 상황이 꼭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면서 곳곳에 영화의 형식에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연출은 비슷하면서도 확실히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 둘의 결합을 지켜보는 것으로도 꽤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모방에서 그치지 말아야 할 것
하지만 반도에서 아쉬웠던 점은 너무 많은 부분을 모방하려 했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로만 한정 짓는다면 새로운 시도들이 많았을지 모르나, 요즘 관객들은 전 세계 영화와 드라마를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을 손에 넣었다.
<부산행>이 <반도>보다 좋았던 것은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좀비 소재의 이야기들은 많지만, 대부분이 마을이나 집 안, 아니면 차 등에 갇히지 기차에 갇히진 않는다. 내용은 결국 비슷하더라도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기차'였기 때문에 좀비 소재에 익숙한 사람들이더라도 어느 정도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비들이 장악한 동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들만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군인들. 그리고 그 사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 그들 간의 추격전. 이러한 설정에서는 새로움을 찾기 어렵다. 심지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이하 <매드맥스>)와 너무 비슷해서 거의 표절 아닌가..? 싶은 부분들도 있었다. 설정만 해도 사실 <매드맥스>와 비슷한데, 캐릭터들의 복장이나 차, 연기 등도 비슷한 부분이 많다. 물론 레퍼런스로 참고는 할 수 있으나, 이렇게까지 비슷했을 필요가 있을까? 특히나 추격전에서도 구도도 비슷하고, 렉카 운전자의 경우에는 진짜 매드맥스에서의 광기를 따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특이한 건 스케일이 이상하게 크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불필요하게 많이 나온다. 등장인물은 많은데 다들 중요해보여도 별 의미 없이 빨리 죽거나, 아니면 별 의미 없어 보이는데 이야기의 막바지까지 등장한다. 캐릭터의 수를 줄이고, CG에 힘을 좀 빼고, 스토리의 연결성에 더 고민을 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서 대위(구교환) 캐릭터는 이상하리만치 무능한데 대위라는 직함 때문인지 대장이다. 황 중사가 가져온 트럭에 얽힌 사연을 빨리 알아내는 것외에 약삭빠르다거나 하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김일병은 서 대위를 잘 따른다.
서 대위(구교환)가 영화 내에서 내용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그저 돈이 담겨있는 트럭을 한정석(강동원)이 가지고 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 그건 사실 굳이 서 대위가 아니라 황 중사가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일병은 더더욱 전체 스토리 상에서 하는 역할이 적다. 뭔가 이야기가 더 있었는데 너무 방대해질 것 같아서 잘려나간 건 아닐까 싶을 만큼 애매한 분량과 역할이다.
김 노인(권해효)도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데, 김 노인이 차라리 없고, 준이와 유진 자매 중 한 사람이 이 역할을 담당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유진. 그러면 공학적인 부분에 천재성을 드러내면서도 아이라는 점 때문에 이 아이의 말이 진짜일까? 진짜로 우리를 구하러 누군가 올까? 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았을까? 김 노인 캐릭터 역시 너무 허망하게 소비되고 만다.
한국에서는 아직 창조적인 디스토피아를 만들어 낼 능력이 없는 것인가? 언젠가는 할리우드가 제시하지 못한 독보적인 디스토피아의 형태를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