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업계는 급변하는 중
넷플릭스에서 한창 핫했던 <승리호>. 왓챠를 보니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영화인 듯하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자체가 어떻다는 내재적인 분석보다는 <승리호>가 한국 영화 역사에 불러일으킬 변화와 가능성에 대해 다뤄보려 한다.
<옥자>가 개봉할 때만 해도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개봉한다는 것은 몹시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고작 몇 년 새 우리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개봉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론 코로나도 큰 몫을 했다. 최근 5년 사이 영화업계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나만 느끼는 변화는 아닐 것이다. 전 세계 영화시장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특히나 한국 영화계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 5년 사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 영화업계는 새로운 기류를 맞이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비주류'의 급부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시장(특히 할리우드)에서 급부상한 '비주류'는 다음과 같다.
- LGBTQ
- 백인이 아닌 주인공
- 여성 주인공
- 넷플릭스
그리고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는 아래와 같은 일들이 있었다.
2015년 - <검은 사제들> : 한국 가톨릭 엑소시즘 장르로 500만 관객 동원.
2016년 - <부산행> : 거의 최초나 다름없는 한국 좀비 영화로 1000만 관객 돌파.
2017년 - <옥자> :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하고 봉준호 감독이 감독을 맡았음에도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개봉하지 않고 소형 극장들과 넷플릭스에서 개봉.
2018년 - <마녀> : 엑스맨과 비슷한 슈퍼히어로.. 판타지/액션 장르로 우리나라에서 매우 매우 보기 드문 시도.
2019년 - <기생충>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코미디와 스릴러를 결합해서 '장르가 봉준호'를 보여줌.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기록적인 기록을 세움.
2020년 - 코로나로 인한 영화 암흑기.. 최초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운영하지 않는 사태 발생
2021년 - <승리호> : 한국 최초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개척.
할리우드가 영화의 내용적 새로움을 찾아 나섰다면 그동안 우리나라는 형식적 도전이 많았던 것 같다. 써서 정리하고 보니 꽤 놀랍지 않은가? 그 전에는 한국식 느와르, 시대극 영화가 영화 시장을 꽉 잡고 있었다. 매년 하나씩은 개봉했던 것 같다. 최근 5~6년 사이에 한국 영화는 스케일적으로 점점 커졌고, 최초 타이틀을 달고 흥행하는 영화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미국 영화를 통해 익숙해졌지만, 우리나라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들에 신선함을 느끼고 열광하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드라마 시장에서 이런 변화가 가능해진 이유는 웹툰의 급부상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승리호도 동명 웹툰이 원작이고, 아직 연재중이다. (그래서 카카오페이지가 투자사 중에 하나로 있다)
<승리호>에 대한 평가는 다소 극과 극인 것 같은데, CG에 대한 칭찬과 스토리에 대한 비판이 대립되면서 별점이 갈린다. 나의 경우에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엔딩 크레딧에 올라갈 때 VFX 회사들을 보면서 한국 회사들의 기술력에 감탄하는 동시에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을지, 그리고 CG 제작자들의 연봉..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스토리는 곱씹어 생각해보면 약간 읭? 스러웠지만 그래도 보는 동안에는 VFX에 감탄하느라 그렇게 심하게 방해가 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VFX 덕분에 스토리의 부족함이 상쇄된 것이라면 이건 초심자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VFX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다음에 나올 같은 장르의 영화는 좀 더 긴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영화는 엔딩크레딧을 보니 다른 스튜디오들도 있지만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VFX, 사운드, DI까지 후반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 같다. 내가 추천하는 유튜브 채널 'Skim On West'에서 승리호와 관련해 덱스터 스튜디오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여기서 <승리호>는 덱스터에서 맡은 영화 중에 아주 고난도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다른 후반작업 관련된 내용들을 들어볼 수 있으니 궁금하시면 한 번 시간을 내서 시청해보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중간에 아주 바쁠 때는 동시에 10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도 있다는 말 듣고 매우 충격받았다. 구직사이트에 사원 수 약 300명 정도로 되어있던데 경영지원팀이나 HR팀 등을 제하면 실제 작업 인력은 당연히 그보다 적을 것 아닌가..! 어떻게 10개를 동시에 하지...?!)
어쨌든 덱스터를 비롯한 한국 회사들의 기술력이 한국 관객들이 기대했던 수준보다 훨씬 위에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이제까지 이런 퀄리티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것은 넷플릭스처럼 경제적 지원을 빵빵하게 해 줄 수 있는 국내 투자사가 아직 없었던 것 아닐까?
<검은 사제들>의 등장 이후로 <곡성>, <사바하> 같은 영화들이 나왔고, <부산행> 이후로 <킹덤> 같은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다. <마녀>와 <승리호>는 이제 또 어떤 영화들의 길을 열어줄까? 기대가 된다. 참고로 현재 <마녀 2>가 촬영 중이다.(지인 중에 촬영장에 계신 분이 있어서 인스타에 현장 일기가 올라오는데.. 무사귀환 응원중..) <마녀> 같은 경우에는 애초부터 시리즈로 기획되었다고 하니, 당분간 <마녀>가 속한 장르는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다. <승리호> 이후로 어떤 영화가 또 등장해서 영화계를 뒤흔들지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