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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낭소리 Nov 16. 2019

[다낭소리] 그래도 사랑

 그래도 사랑

 떠날 때가 되니 사람들이 물어본다. 베트남이 어떠했는지, 내 평가를 듣고 싶어 한다. 무엇이 가장 보람 있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내 안의 어떤 점들이 변화되었는지…. 그 질문이 마치 지난 2년을 한 번 정리해보라는 소리처럼 들려 나도 가만 물음표를 띄워 본다. 그러나 쉽사리 답을 내리지 못한다. 내게 차분함이 없어서 그런가? 끝까지 왜 이렇게 뒤죽박죽일까. 


 해외에서 2년을 살았다고 해서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정리정돈을 안 하며 핑계를 잘 댄다. 가져갈 짐을 줄이지도 욕심을 내려놓지도 못했다.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릴 때가 많으며 힘들 땐 땅 파놓고 그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래도 분명 자기 성찰의 시간은 있었다. 그다지 바쁘지 않은 생활이었기에 틈만 나면 나를 돌아보곤 했다. 그러면서 내 안에는 정의할 수 없는 여러 모습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화롭지 못한 말 같지만 나는 생각보다 예민하고 우직한 사람이었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나를 몇 가지로 규정짓고 싶어 했다. 왠지 그게 쿨하고 멋져 보여서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내 자신이 촌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그게 싫어 애써 ‘난 이걸 잘해, 그런 일에는 취미 없어.’하며 나를 설명하는 틀을 만들려고 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자신 있어 하는 일에도 얼마든지 고꾸라질 수 있고 막상 해보면 처음 하는 일도 그럭저럭 잘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었다. 그러니 이젠 스스로 너무 자만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겠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베트남. 내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선물한 나라. 추운 밤 차 맛을 알려준 나라.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실컷 맡게 해 준 나라. 동시에 역류성 식도염을 안겨 준 나라. 수시로 나를 빡치게 만든 나라. 누군가 내게 베트남이 좋았냐고 물어보면 그 즉시 고개를 끄덕이진 못할 것 같다. 나는 베트남에 그다지 큰 호감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베트남 역시 내게 늘 호의적이지만은 않았고. 


 이놈의 베트남. 나를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운 나라. 수많은 눈물 콧물과 잠 못 이루는 밤을 선사한 나라. 나를 수준급 욕쟁이로 만든 나라. 미웠다. 내 신경을 긁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베트남이 지겨우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베트남을 아낀다. 모두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학생들뿐만 아니라 길에서 마주치는 낯선 베트남 사람들조차, 단순히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여러 기준에 맞춰 보아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베트남을 생각하면 언제나 모순된 감정이 들었다. 애증이었다. 봉사단원의 보람은 누가 찾아주거나 일러 주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가치관과 기준에 맞게 움직이고 거기서 보람을 느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금세 무력감과 회의감이 찾아왔다. 그래서 애를 썼다. 나는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또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려 노력했다. 정리되지 않는 말을 골라 놓고 보니 그래도 사랑이라는 마음이 더 크게 남는다. 사랑, 그건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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