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천천히 가도 괜찮아.
'파랑'.
맑게 갠 하늘.
제목만 봐선 이 작품이 왜 'SF'인지 바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목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집어든 책입니다. 읽으며 무섭게 빠져들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이유모를 답답함이 솟아올랐습니다. 분명, 좋은 책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소설 중 손에 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감정없는 로봇의 등장이 한 가족을, 한 사회를 바꾼 잔잔하고 따뜻한 책입니다.
'신장 150센티미터, 몸무게 40키로그램의 기수는 창문 하나 없는 사각형의 방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기수로봇 콜리는 다른 기수와 달랐습니다. 인간의 실수로 탄생했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로봇은 아니었지만 콜리로 인해 많은 생명들이 되살아납니다.
콜리는 1,000개의 단어만 입력된 채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그 1,000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깊은 만남을 이어갑니다. 콜리 주변 인물들은 콜리를 사람과 같이 대합니다. 콜리는 단지 궁금한 것은 묻고, 인간이 물으면 본인의 답을 하고, 인간의 명령을 거스르지 않으며 소통합니다. 미묘한 감정이 아니라 몸의 떨림, 눈에서 흐르는 물의 의미를 통해 감정을 간접적으로 이해합니다. 본인도 눈물이 났으면 좋겠다는 표현도 합니다.
콜리는 거창한 피드백이나 격한 공감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나요? 그렇지 않다면 대화를 하지 않고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나요?"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 뜨끔했습니다. 상대에게 말하지 않고, 묻지 않고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여 속앓이나 타인을 미워했던 적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콜리는 로봇이기에 소통을 어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콜리는 로봇이기에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고 생각이 이끄는대로, 상대를 배려합니다. 콜리가 애교있고 다정한 존재는 아니지만 이런 콜리로 인해 한 가족이 변하고 인물들이 변합니다. 어찌보면 콜리의 가장 큰 장점은 들어주는 것을 잘하는 것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가을하늘이라 더 높고 푸르게 보였습니다. 책 속에 콜리도 말합니다.
"왜 가을하늘은 높나요?"
콜리는 하늘을 보았기에 사고를 당하고 하늘을 보며 다시 돌아갑니다.
앞으로 하늘을 볼때마다 콜리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다들 더 빠르게 달리려고 애쓰는 세상에 천천히 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조용히 짚어주는 책입니다.
천개의 파랑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