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타고 보는 후지산
또 일본행, 하지만 이번에는
11월이 끝나갈 무렵 올해의 마지막이 가까워 오면서 회사에서 연차를 소진하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나는 작년에도 12월까지 연차를 6일이나 남겨서 예정에도 없던 장기 휴가를 갔던 요주의 인물이었고 올해에도 3일 정도 연차가 남은 상태였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쉴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그러기에는 연차가 너무 아까웠다. 슬슬 코로나도 익숙해지면서 해외여행이 가능해지던 찰나, 어딘가 여행을 가고 싶었다. 3년간 참아왔던 해외여행의 갈증을 풀 때가 된 것이다.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나라는 일본이었다. 낮은 엔화 환율, 입국 방역 절차의 간소화, 가장 가깝고 싼 해외여행지. 안 갈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일본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여행지라는 점이었다.
나는 이미 일본을 많이 가봤다. 만약 일본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질려버렸을 정도로 많이 다녔다. 나는 질렸다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언제나와 같은 여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하는 일본 여행, 이번에는 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나는 요 한 달간 바이크라는 새로운 취미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일본에서 즐겨보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나에게 바이크 가스라이팅을 했던 친형이 일본에 살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바이크 여행을 쉽게 계획할 수 있었다.
나는 바이크도 초보고 일본에서 바이크를 타는 건 애초에 처음이기 때문에 이동 경로는 대부분 형에게 일임했다. 최종적으로 나온 코스는
도쿄 -> 야마나시 -> 하코네 -> 이즈반도 -> 도쿄
로 이어지는 경로였다. 야마나시는 후지산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지역이고 후지 5호라고 불리는 다섯 개의 호수와 고지대의 여관들로 유명하다. 하코네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온천지역이자 관광지로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이즈반도는 하코네 아래쪽에 툭 튀어나온 반도로, 반도 양 옆으로 펼쳐진 태평양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다만 자세한 여행기는 2탄으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일본 여행과 바이크 여행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전달을 우선할 생각이다.
일본 여행에 필요한 것
우선 이 글이 12월 18일 기준 일본의 입국과 방역 관련 정보를 토대로 작성되었음을 밝힌다. 현재 일본이나 한국이나 코로나 확진자 수가 다시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는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고,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일본과 한국 정부나 대사관 정보를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1. 여권
당연한 거 아님?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생각보다 자신의 여권 만료기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번에 항공권 예매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권 만료기간이 6개월 이상 남지 않으면 항공사에 따라서 항공권 예매가 불가능한 경우가 있으니 여권의 만료기간은 명확하게 확인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여권은 새로 발급하기까지 시간과 돈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므로 집 어딘가에 잠들어있을 여권부터 찾아보자.
2. 항공권
이 역시 당연한 부분이고 배를 이용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지만 일부러 추가한 이유가 있다. 현재 일본행 항공기의 운임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비싸기 때문이다. 시간대가 좀 구리긴 했지만 옛날에는 잘하면 도쿄행 왕복 항공권을 10만 원대로 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비수기라도 40만원 혹은 그 이상을 지불할 생각을 해야한다. 만약 여행 계획을 짜고 있는 당신이 대학생이라면 이러한 운임은 상당히 부담이 될 것이고, 직장인이라고 하더라도 망설이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유자금과 일정을 잘 살피고 찾아보자.
나는 보통 스카이스캐너를 사용한다. 그냥 항공권 정보를 모아다 보여주는 서비스지만 전체적인 항공운임을 파악하기 쉽다. 다만 특정 항공사의 프로모션이나 이벤트에 따라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니 기민하게 확인하자.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기준 내년 1월 중순 평일이라면 도쿄행 왕복 40만원정도에 항공권을 구할 수 있다. 만약 주말을 끼거나 홋카이도처럼 목적지가 멀어지면 가격은 더 상승한다는 점은 고려 바란다.
비행기에서 보는 일본 해안의 야경. 비행기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다.
3. 방역정보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현재 일본 여행을 하려면 아래 두 가지 중 하나가 꼭 필요하다.
출국일 기준 "3일 이내"의 PCR 검사 음성 확인서 - 이는 백신을 2차 혹은 그 이하로만 접종한 대상자일 경우에만 해당된다. 3차 이상 접종한 사람은 필요가 없다. 검사가 법적 효용을 가지는 PCR 검사인지 꼭 확인하고 신속항원검사는 해당되지 않으니 반드시 PCR 검사를 받자
3차 이상 접종 이력이 있는 "영문" 백신 접종증명서 - 백신을 3차 이상 맞은 사람의 경우 필요하며 반드시 영문이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은 괜찮을 것 같지만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백신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이 특수한 백신을 맞았다고 생각된다면 해당 백신이 인정되는지 확인해보자.
백신 접종증명서의 경우 정부24에서 출력할 수 있다. 간혹 COOV앱의 접종 증명서도 괜찮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확인된 사항은 아니니 문서로 출력하는 걸 추천한다. 이러한 문서는 공항에 도착해서 항공권 체크인부터 비행기 탑승까지 승무원 혹은 공항 직원들이 지속적으로 제출을 요구하니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백신 접종증명서를 출력했다면 visit japan web에서 일본 입국 관련 정보를 기입하면 좋다. "하면 좋다"인 이유는 필수는 아니기 때문인데, 본인이 괜한 시간을 날리고 남들보다 늦게 공항을 빠져나가는 걸 좋아한다면 일본 도착 후 공항에서 해도 된다. 안 할 이유가 딱히 없으니 그냥 하자.
서비스에 접속해서 회원가입과 로그인을 하면 간단한 개인정보와 여권정보, 예약한 항공기 정보, 입국 날짜 등을 입력하면 아래의 세 가지 입국 관련 정보를 등록할 수 있다.
검역 수속
입국심사
세관신고
입국심사와 세관신고는 일본에서 입국을 거부당한 적이 있는지 등의 간단한 질문이고 세관도 위험한 물건이나 금지물품 혹은 고가의 물품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지만 대부분 여행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니 통과. 다만 최근 일본 세관에서 음식물 등에 대한 세관절차가 까다롭다고 하니 되도록이면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 남은 검역 수속이 포인트인데, 우선 여권을 사진으로 찍어서 등록하면 심사 중 표시가 나온다. 요건 몇 십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사가 끝나면 메일로 결과가 나온다. 두 번째는 코로나 방역 관련 간단한 질문표다. 증상이 있는지 등 코로나와 함께한 3년 동안 이미 익숙해진 내용으로 보면 알 수 있는 정도 수준이며 단순 관광객이라면 문제 될 부분은 없다. 세 번째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등록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요건 심사까지 반나절 정도 걸렸다. 만약 백신을 3차 이상 맞은 사람이라면 여기서 종료되고 심사 완료 표시가 나온다. 백신 3차 미만 접종자의 경우, 백신 접종 증명서 말고도 처음에 얘기한 "출국 전 72시간 이내 PCR검사 음성 증명서" 도 등록과 심사가 필요해진다.
모든 절차를 마무리했다면 일단 입국 전 준비는 완료됐다. 일본 공항에 내리게 되면 등록된 정보와 QR코드를 직원들이 확인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웹이나 앱의 실시간 화면만 확인하므로 QR코드등을 캡처한 이미지는 소용이 없다.
바이크 여행에 필요한 것
일본 입국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제는 일본에서 바이크를 탈 준비를 해야 한다. 참고로 이 부분은 여러분이 한국의 2종 소형 면허가 있다는 전제하에 작성한다. 애초에 바이크 면허도 없으면서 일본에서 바이크를 타겠다는 것부터가 이미 문제지만 말이다.
1. 국제면허
일본에서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서는 국제면허가 필요하다.
요렇게 생긴 것이 국제면허인데 협약이 되어있는 국가들 간에 면허의 효력을 공유할 수 있다. 유효기간은 발급일로부터 1년이다. 운전면허시험장 혹은 민원실이 있는 경찰서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경찰서를 추천하는데, 운전면허시험장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평일이라도 한 시간까지 기다릴 각오는 해야 한다. 면허 발급을 위해서는 "여권사진"과 몇천원 정도의 발급비용이 필요하다.
참고로 "영문 운전면허증"은 일본에서 사용이 불가능하다. 일본과 한국 간에 영문 운전면허증관련 협약이 이루어지지 않아 효력이 없다.
2. 바이크
사실 모든 걸 다 떠나서 이게 가장 중요하다. 전부 준비했지만 정작 바이크가 없다면 일본에서 바이크를 어찌 타겠는가. 다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 본인 명의 바이크가 있는지? 그 바이크를 일본에 가지고 가고 싶은지? 아니면 일본에서 빌리고 싶은지? 질문의 답변에 따라서 방법이 두 가지로 갈린다. 참고로 두가지 방법 다 국제면허가 필요하므로 우선 국제면허를 발급한 후 진행하자.
본인 바이크를 가지고 가고 싶은 경우, "차량 일시 수출입"이라는 방법이 있다. 본인 차량을 짧은 기간 동안만 외국에 반출하고 다시 들여올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인데, 이렇게 하면 외국에서 국내 등록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차량등록증명서등의 서류를 준비해서 일본까지 가는데 이용할 페리회사에 제출하면 된다. 관련 절차는 링크를 남겨놓고 장단점을 빠르게 알아보자.
장점
익숙한 본인 바이크를 이용할 수 있다.
렌탈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단점
비행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배를 이용해야 한다.
차량 선적비용이 든다.
출국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가 늘어난다.
외국에서 혹시나 사고가 났을 때 보험 등의 처리가 복잡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장점에 비해 단점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지만 본인 바이크를 타고 일본을 여행하는 로망이 있는 사람, 시간의 여유가 충분해서 배로 여행해도 되는 사람, 절대로 사고를 내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방법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참고로 렌탈비용은 기간에 따라 늘어나지만 배의 차량선적비용은 늘어나지 않으므로 본인의 여행기간을 생각해서 어느쪽이 더 비싼지 고려해 보는 것도 좋겠다.
다른 방법은 현지에서 바이크를 빌리는 것이다. 나는 지난 여행에서 이 방법을 선택했다.
렌탈했던 바이크. 혼다의 Rebel 250이다. 바이크를 어디에서 빌릴지는 여러 종류의 바이크를 빌려주는 개인업체도 있고 혼다, 야마하 등 바이크 메이커의 대리점에서 빌리는 방법도 있다. 나는 혼다 대리점에서 빌리는 것을 선택했는데, 친형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이게 더 간단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인터넷에서 바이크 렌탈 업체를 여러 개 찾아보고 비교해서 결정했을 것이다. 장단점을 알아보자.
장점
평소에 타보고 싶었던 바이크를 타볼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
따로 필요한 서류가 없다.
보험이 포함되어 있다.
단점
렌탈비용이 들어간다.
렌탈 업체를 직접 찾아서 빌려야 한다.
빌리고 반납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가장 까다로운 단점은 렌탈 업체를 찾고 빌리는 부분일 것이다. 아무래도 업체는 일본에 있기 때문에 언어적인 어려움도 생각할 수 있고 들어가는 비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고가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덜 수 있고 비행기로 이동하면 배에 비해서는 확실히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타보고 싶었던 바이크를 빌려서 여행기간동안 원 없이 타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참고로 나는 4일간의 렌탈비용 + 보험료로 4만엔 정도를 썼다. 다른 업체의 경우 어떤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 겠거니 참고하자.
바이크는 바이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만큼 신중하게 선택해서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골라보자.
3. 보호장비
바이크처럼 보호장비도 빌릴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본인 장비를 가져가는 걸 추천한다. 특히 헬멧은 머리에 딱 맞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본인 장비인 편이 좋다. 헬멧은 물론 보호대 종류와 같은 바이크 장비는 항공기에 가지고 탈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보호장비는 목숨이 걸린 일이므로 충분히 준비하자.
4. 일본의 교통수칙
일본에서 바이크를 타려면 일본의 도로를 알아야 한다. 단순히 왼쪽 오른쪽이 한국과 반대라고만 알고 있어서는 부족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오히려 좌측통행은 그리 헷갈리지 않았지만 신호등의 차이, 중앙선의 모양과 의미 등 한국과 세세하게 다른 점들이 많아서 놀랐다. 다행인 점은 유튜브나 인터넷 글 등에 이미 일본의 교통규칙에 대해 설명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무리 준비하고 가도 일본에서 적응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조금이라도 알고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한 가지 예로 한국은 바이크의 고속도로 주행이 불법이지만 일본은 125cc 이상 바이크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준비 만전
나는 준비하면 일리단이 떠오르는 몹쓸 버릇이 있다. 여러분은 준비가 됐다! 여기에 나와있는 모든걸 처리했다면 여러분은 준비가 되었다. 이제 게살 버거를, 이 아니라 일본에서 바이크를 탈 수 있다. 여러분이 일본의 어디에서 어떤 바이크를 타고 무엇을 볼지 나는 알 수 없으나, 지난 여행에서 내가 그러했듯이 여러분의 여행도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길 진심으로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