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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가라치바 Dec 30. 2022

후지산! 그런데 이제 바이크를 타고 - 제2화

도쿄행 그리고 첫째 날

Day 1


여행 첫째 날은 재택근무와 함께 시작되었다. 오후 네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연차를 쓸 필요가 없어서 반차만 냈다. 오전 여덟 시부터 열두 시까지 네 시간을 근무하고 빼먹은 짐이 없는지 체크한 후 우리 집 댕댕이를 산책시키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면 딱 맞는 일정이었다. 원래는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탈 생각이었는데 공항까지는 감사하게도 어머니가 태워주셨다. 바이크 장비다 뭐다 짐이 많아서 걱정이 되셨는지도 모르겠다.


왜 인천공항이 아니라 김포공항을 선택했는지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도쿄행이라면 인천공항보다 김포공항을 추천한다. 우선 인천공항에 비해 서울 도심에서 훨씬 가깝고 접근성이 좋다. 그리고 김포공항발 여객기는 보통 일본의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는데, 하네다 공항은 김포공항처럼 도쿄의 다른 공항인 나리타 공항보다 도쿄 도심에서 가깝다. 대신 나리타 공항에는 도쿄 도심으로 향하는 고속열차가 있는데 티켓이 비싼편이다. 하네다와 나리타의 거리 차이가 궁금한 사람은 링크로 들어가서 확인해 보자.


다른 이유는 사람이 적다는 점이다. 이 역시 김포와 하네다 공항이 서로 비슷한데, 인천과 나리타 공항에 비해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 입국이나 출국할 때 줄 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인천공항은 잘못해서 피크 시간에 걸려버리면 출국수속에 한 시간 이상까지 걸리기도 하는데, 나는 실제로 비행기 시간에 늦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스튜어디스가 찾으러 온 사람을 본적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람이 붐비고 시끄러운 장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김포공항을 훨씬 쾌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김포와 하네다 사이에서 오가는 비행기는 대부분 메이저 항공사라 저가항공사로 싸게 여행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메이저 항공사는 무료로 수화물 하나를 맡길 수 있고 시간대가 좋아서 돈 값은 한다고 본다. 이건 반드시 뭐가 좋다는 건 아니고 선택에 달린 일이니 자신한테 뭐가 좋을지 생각해보자.

텅 빈 김포공항 국제선 터미널

다시 여행으로 돌아와서, 김포공항에 도착한 나는 티켓과 수화물 체크인을 무인으로 빠르게 처리하고 입국수속 후 터미널로 들어갔다. 무인서비스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리얼 개꿀이다. 자동문을 통해 들어간 김포공항 터미널 내부는, 뭐랄까, 언제나처럼 볼품없었다. 이게 김포공항의 또 다른 단점인데, 인천공항에 비해 볼거리도 없고 면세점도 작고 적다. 나는 면세점에 흥미가 없어서 부탁받은 담배 한 보루만 사서 조용히 기다렸다.


그 후 비행기 탑승부터 일본까지의 여정은 중간에 예상치 못한 기내식이 나왔던 것 말고는 평범했다. 비행기 시간이 애매한 시간대라 안 나올 줄 알고 미리 받아둔 영화에 빠져있었는데 어느새 서빙을 하기 시작했다. 기내식은 메인으로 비빔밥, 사이드는 샐러드, 빵과 버터 그리고 식감이 특이한 당근케이크가 나왔다. 나는 기내식에 비빔밥이 나오면 남는 고추장을 버터와 함께 빵에 발라먹는 걸 좋아하는데 꽤 맛있으니 다들 해보는 걸 추천한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다가 비행기가 일본 본토로 들어가고 나서는 계속 창박을 구경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도쿄의 야경은 괜찮았다. 사진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비행기에서 보는 달은 정말 밝다. 왜 옛날 사람들이 보름달이 뜬 날에는 암살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달빛이 드는 도쿄만

멍하니 창 밖을 보면서 도쿄만이 정말 크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도 잠깐 보였는데, 그때서야 실감이 됐는지 영 반응이 없었던 여행의 흥분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일본, 3년 만이었다.


비행기는 무사히 하네다 공항에 착륙했고 승객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터미널에 주기하고 여객기의 문이 열리자 승객들은 좌석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지만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 타이밍에 일어나 봐야 어차피 좌석도 뒤쪽이라 노력한 만큼 빨리 나가지도 못한다. 사람에 치이느니 모두 빠져나간 다음에 움직이는 게 마음 편하다. 게다가 비행기에 실린 수화물이 나오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가봐야 짐을 기다려야 한다.


승객들이 충분히 빠졌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내를 빠져나갔다. 공항에 들어서니 미국인들이 정말 많았는데, 달러의 강세와 엔화의 약세인 지금 타이밍을 노리고 여행을 온 게 아닐까 싶었다. 현명한 선택이다.


터미널 통로에서부터 직원들이 visit japan에 등록한 QR코드를 미리 준비하라고 성화였다. 하지만 정작 입국심사장에 가보니 줄도 길고 그리 빠르게 통과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QR코드만 찍으면 통과! 는 아니고 기존 절차는 그대로인 모양이었다. 그저 입국하는 사람들마다 일일이 서류를 뒤적거리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라 이러면 뭐 하러 미리 준비하라고 했나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일본 스럽기도 했다. 일본은 변하지 않는 나라다.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출국장에 나가보니 형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시간은 오후 여섯 시 즈음, 형이 타고 온 렌터카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 도쿄 도심으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에 오다이바를 지나길래 리얼사이즈 건담이 보일까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오다이바, 시부야, 신주쿠 등 지나가는 길목은 다 아는 얼굴들이었다. 차 안에서는 형과 일본의 도로교통수칙 등 내가 바이크를 탈 때 조심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여행 계획에 대한 얘기로 이어졌다.


일단 첫째 날에는 뭘 할 시간도 없으니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는 쪽으로 얘기가 되었다. 형이 일본에서 소유하고 있는 바이크를 조금 타볼까 싶었지만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남은 시간은 많으니까. 목적지에 도착해서 렌트했던 차를 주차장에 반납하고 하루를 보낼 호텔로 향했다. 호텔의 이름은 사쿠라 호텔 하타가야, 예림이 그 패 봐봐 드립이 치고싶다. 썩 좋은 호텔은 아니었지만, 뭐 가격이 싸니까 그러려니 싶다. 나에게 해외여행지의 숙소란 최대한 돈을 아낄 구석이라 완전히 쓰레기만 아니면 문제 없다. 거기서 아낀 돈은 다른 곳에 쓰는게 더 좋다.


로비에서 체크인을 도와준 직원은 인도 사람이었는데 명찰에는 구사 가능한 언어가 그 나라의 국기와 함께 나와있었다. 일본어, 영어, 인도어, 프랑스어? 꽤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홀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병맥주를 팔고 있어서 해외여행객들에 대한 배려가 괜찮다 싶었더니 역시나 서양 쪽 관광객들이 많았다. 배정받은 방은 심플했다. 작은 화장실 싱글배드 끝. 일단 짐만 던져놓고 바로 방을 나섰다.


형의 집이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바이크를 타지는 못하더라도 구경이라도 하자 싶어 좀 둘러봤다. 그래도 명색이 바이크 여행기인데 바이크 얘기를 좀 하자면, 하나는 야마하의 SR400, 하나는 혼다의 4기통 클래식 바이크인데 모델명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CB1100시리즈 아니었을까 싶다. 둘 다 어지간히도 오래된 모델이다.

타보고 노느라 사진을 안찍어서 그냥 이미지로 대체한다.

SR400은 단기통 특유의 진동감이 좋았고 발로 엔진을 가동시키는 킥스타트가 달려있는 게 재밌었는데, 길 가다가 시동이 꺼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킥스타트가 뭔지 잘 모르시는 분은 이 영상을 보자. 혼다 모델은 4기통 엔진의 볼륨감이 묵직하고 바이크 자체도 상당히 무거웠지만 배기음 자체는 상당히 조용했다. 아무래도 4기통이기 때문에 두두두두가 아니라 위이이잉에 가까운 소리가 나는데 흥미롭지는 않아도 빠를 것 같기는 했다. 이번 여행에는 뭐를 타냐고 물었더니 SR400을 탈거라고 했다. 단기통 엔진이 보통 연비가 좋은 편이라 장거리 여행에서는 좋은 선택이다.


바이크 구경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러서 배가 고팠다. 드디어 일본에서의 첫끼를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어딜 갈 거냐고 했더니 무슨 꼬치집이라고 했다. 야끼토리인가? 생각했는데 도착해보니 전혀 아니었다. 가게 이름은 はたがやレバー 本店, "하타가야 레바 본점" 이라고 읽는다. 하타가야는 역 이름이고 레바는 liver의 일본어 발음, 간이다. 그렇다, 그 가게는 소의 간을 주 종목으로 하는 이자카야였다. 메뉴판에는 한자가 워낙 많아서 내가 읽지는 못했고 형이 시키는 족족 따라먹었다. 처음에 나온 건 생 간 비슷한 것에 간장 양념과 쪽파가 올라간 것이었다. 하나 들어서 계란 노른자에 찍어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생맥주 한잔, 내가 이걸 먹으려고 살아왔나 싶은 맛이었다.


막간을 이용한 쓸데없는 지식이지만, 일본에서는 혹시 모를 기생충 때문에 가열하지 않은 소의 생 간을 먹는 게 불법이다. 그래서 메뉴로 나온 생 간은 아마도 저온으로 오래 익힌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이후로는 간 구이 꼬치, 대창 구이 꼬치, 갈빗살 등등 정말 많이도 먹고 마셨다. 얼마나 정신없이 먹었는지 사진을 단 한 장 찍었는데, 음식 사진이 정말 개판이니 보고 놀라지 말자.

대창, 간, 갈빗살이다.

세상에는 음식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안 찍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는데, 나는 뭐 딱히 대답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앞으로의 여행기에서도 먹음직스럽고 제대로 된 음식사진은 많지 않을 예정이다. 심지어 아예 사진을 안 찍은 끼니도 많으니 너른 이해를 바란다.


전부 먹고 일어나니 총 1만 엔 정도 나왔는데, 한국이라면 한 끼 식사로는 비싸다 했겠지만 음식맛도 좋고 배도 불렀으니 만사 오케이였다. 원래 여행은 돈 쓰는 게 일이다. 영어 메뉴판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일본어가 좀 되는 사람이라면 방문을 추천한다. 적어도 나는 꼭 다시 가고 싶다. 가게를 나와서 형은 집으로 나는 호텔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맥주 작은 것 한 캔과 초코가 둘러진 에끌레어를 하나 샀다. 방에 도착해서는 바이크 투어에 가져갈 물건만 하나의 가방으로 몰고 나머지는 전부 캐리어에 넣어 짐을 좀 정리했다. 그날의 할 일은 그게 끝이었다. 나는 씻고 나와서 사온 맥주와 간식을 먹은 후 유튜브를 좀 보다가 잠들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보낸 시간은 얼마 안 됐지만 여행을 왔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스러운 첫째 날이었다.




뜬금없는 일본어 팁 하나. 일본 식당에서 계산서를 요구하거나 계산이 필요할 때는

"오카이케 오네가이시마스"

라고 한다. 여기서 오카이케는 우리말로 "회계"에 높임말 표현인 "오"를 붙인 것인데 분식회계할 때 그 회계가 맞다. 왜 회계를 계산에서 사용하지?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려니 하자. 만약 종업원이 멀리 있거나 가게가 소란스러워서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것 같으면, 양손 손가락으로 X자를 만들어 보여도 같은 의미가 된다. 식사가 종료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내가 이걸 몰라서 어릴 적 일본여행에서 계산을 하려다 고생을 좀 했던 게 갑자기 떠올랐다. 혹시나 몰랐던 사람이 있다면 알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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