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판단하는세상에서 살아남기
Alert! 맥스 루케이도의 동화책 <너는 특별하단다>의 전체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목수 엘리(Eli)가 만든 목각인형 웸믹들은 하나의 마을에 모여 살았다. 모든 웸믹들은 다르게 생겼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서로의 몸에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이다. 재주가 많고 아름다운 웸믹들은 별표 스티커를 받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못생긴 웸믹들은 점표 스티커를 받았다. 펀치넬로는 점표 투성이인 웸믹이었다. 높이 뛰려다 넘어져서 점표를 받았고, 넘어져 몸에 상처가 나서 점표를 받았다. 왜 넘어졌는가 설명하려고 하면 점표를 받았고, 멍청한 말을 한다고 점표를 받았다.
이런 웸믹 마을에 루시아라는 특별한 목각인형이 있었다. 그의 몸에는 어떤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았다. 어떤 웸믹은 아무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는 것을 칭송하며 별표 스티커를 줬지만 붙지 않았고, 누군가는 별표 스티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무시하며 점표 스티커를 붙이려 하였지만 붙지 않았다. 펀치넬로는 이런 루시아를 동경한다. 루시아는 펀치넬로에게 자신의 몸에 아무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는 이유를 엘리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준다.
펀치넬로는 용기를 내어 엘리를 만나러 가고, 엘리는 펀치넬로를 반갑게 맞아주며 말을 건넨다.
“점표를 많이 받았구나.”
“제가 의도한 게 아니에요, 엘리.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오, 내 앞에서는 왜 점표를 많이 받았는가 설명할 필요 없어. 나는 다른 웸믹들이 생각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단다.”
“그런가요?”
“그럼. 너 또한 신경 쓸 필요 없단다. 웸믹들이 생각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펀치넬로. 그들은 너랑 같은 웸믹일 뿐인걸. 중요한 건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느냐야. 나는 네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한단다.”
…
“루시아의 몸에 스티커가 붙지 않은 이유는, 루시아에게는 웸믹들이 루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내가 루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펀치넬로의 몸에서 점표 스티커 하나가 떨어졌다.
2014년 사회 초년생으로 발을 내디디며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꽤 오랫동안 부서에서 일을 잘 못했고, 여러 사람의 눈총을 받았다. 나에 대한 앞담과 뒷담이 오갔고 늘 벌어지는 초과 근무로 몸과 정신이 지쳐갔다. 정당한 피드백 이외에도 감정적인 비난이 이어졌다. 우울증의 전조증상들이 나타났다. 집에서 거의 잠만 잤고, 감정표현이 사라졌다. 대식가가 입맛을 잃었고 몸무게가 심하게 빠졌다. 모두가 나한테 점표 스티커만 주는 것 같았다. 비난의 이유가 내가 일을 못 하는 것 때문이라 생각했기에 그 누구도 탓하지 못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파트장님은 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인지하고 상담을 권유했다. 사내에서 하는 상담을 받았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상담가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차라 씨는 너무 자기 자신에게 잘못의 화살을 돌리는 것 같아요. ‘내가 더 공부했으면, 더 잘 해냈으면 혼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데 정말 그런가요? 그 당시로 돌아가 더 공부할 수 있었나요? 들어보면 차라 씨는 그 당시 사용할 에너지 자체가 없었어요.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한 거예요. 그리고, 혼날 만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날 서게 이야기한 상대가 나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차라 씨가 상처 받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쁜 거예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상담을 받은 후 문득 펀치넬로의 이야기가 생각난 건 우연이었을까?
“엘리,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에요. 저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펀치넬로의 한 마디는 사실 외마디의 비명에 가까웠다는 걸 깨달았다. 혼나는 나날들은 그 후로도 꽤 오래 이어졌지만, 상담 이후 나는 혼이 날 때 늘 내 몸에 점표가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아무리 점표를 붙여봐라, 붙어있나.”
웸믹 마을의 인형들이 가진 재주는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예쁜 것, 재능이 있는 것, 똑똑한 것. 그래 봤자 다 웸믹들일 뿐이다. 그 재주는 범우주적으로 볼 때 사실 먼지 한 톨에 불과하다. 그들이 나에게 붙이는 점표가 의미 없다고 되뇌었다. 그리고 조건 없이 받았던 사랑들을 마음속에 기억하려 애썼다. 미숙하여 서로에게 상처가 될 때도 많았지만 끊임없는 부모님의 내리사랑, 먼 타지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환대하고 가족이 되어준 K 부부, 자신의 어려움과 힘듦 속에서도 늘 따뜻한 언니가 되어준 M 선배. 그들은 엘리가 나에게 보내준 사람이었고, 실제로 엘리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만 한 것은 아니다. 계속 부서의 고문관으로 남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썩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 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퇴사쯤에는 부서원으로서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선배 한 명은 내가 겪은 어려움을 회고하며 “부서에 차라 동상 하나 세워줘야 해.”라며 깔깔 웃기도 했다.
지금 일하는 곳에서는 혼나는 일이 거의 없지만, 여전히 별표도 점표도 붙어있지 않는 나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별표 스티커를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세상에서 아무 스티커도 붙어있지 않은 루시아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며.
모두에게 각자의 엘리가 존재했으면 좋겠다. 모든 눈이, 그리고 자신조차 스스로 존재를 평가하려고 혈안일 때, 그저 너는 존재만으로 특별하다고, 조건 없이 사랑을 내어주는 상대가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