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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ra Mar 08. 2022

일상을 새롭게 거니는 방법

『일상적인 삶』서평/ 구상의 세계를 추상의 세계에서 재조립하다. 

  석사과정을 하며 ‘개념개발’ 수업을 들은 적 있다. 특정 현상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정의 내리는 연구 방법론 강의였다. 하나의 개념을 개발하기 위해 다양한 층위와 시각으로 분석이 진행된다. 에세이집을 읽으며 문득 개념개발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지리멸렬하게 마주치는 구상의 세계는 오히려 편견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이미 이름 붙인 존재는 더 자세히 마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만들어진 선입견과 낙인이 실제를 대신한다. 장 그르니에는 우리가 쉽게 넘겨짚는 물건, 상태 혹은 순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은 여행, 산책, 포도주, 담배, 비밀, 침묵, 독서, 수면, 고독, 향수, 정오, 자정 12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작가는 이 구상의 세계를 추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분해하고 다시 조립한다. 그리하여 일상에 새로운 시각이 부여된다. 


  특히 침묵에서 중립을 다루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작가는 침묵으로서 중립은 범죄에 동조한다는 현대의 시각을 설명하고, 이 시각이 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해석한다. 되려 침묵을 범죄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오히려 선택을 강요받는 시민이 딱하다는 저자 마지막 문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관심이 없던 주제는 부분은 지루했지만, 평소 흥미를 느꼈던 내용은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어떤 부분은 고개를 끄덕였고, 생각해보지 못한 시각에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특히 ‘비밀’과 ‘독서’는 줄까지 치며 읽었다.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뛰어난 사람의 글과 강연은 종종 친절하지 않다. 그들이 아는 철학, 문학을 독자와 청자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책에 나오는 여러 문헌이 제목이나 저자만 언급되고 넘어간다. 글을 읽으면서 소외당하는 느낌에 머쓱하다. 하지만 내가 무식한 걸 어찌 작가를 탓하겠는가? 오히려 약간의 투지가 타오른다.  


  책의 두 번 째 장 '산책'의 마지막 문단은 아래와 같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 주는 수단이 아닐까?" 


  가벼운 마음으로 책『일상적인 삶』을 거닐어보자. 산책 중 일상의 새로움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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