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칵테일_02
네 잔째. 뇌에서 소리를 지른다.
"야~ 뇌에 힘 꽉 줘라. 안 그러면 블랙아웃된다!!"
사실 바에 가면 석 잔을 최대로 잡는다. 대체로 드라이하고 스피릿의 맛을 헤치지 않는 클래식한 칵테일을 많이 마신다. 그러니 도수는 말할 것도 없이 세다.
하지만 이날은 좀 신났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친구 앤이 알고 보니 칵테일에 심취해 있단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돈 G-ral를 하며 우-아한 척 한남동 파인 다이닝에서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쥬를 즐기고 헤어지려 했건만. 글러먹은 술꾼은 앤을 꼬드겨 칵테일바로 향한다.
어디로 향할까? 칵테일을 타국에서 배운 앤을 만족시킬 만한 곳. 클래식하지만 한국 가옥의 정취가 가득한 그곳으로 가자! 내자동 코블러. 원래 누군가 추천 장소로 데려갈 때는 모든 게 평균 이상인 안전한 곳을 가게 된다. 내자동 코블러가 나한테 그런 곳이다.
첫 잔은 늘 그렇듯 올드 패션드로 시작한다. 두 번째 잔은 잭 로즈. 처음 마셔보는 칵테일이었다. 브랜디+라즈베리+레몬+오렌지+라임의 상큼달큰한 칵테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너무 달았다. 세 번째 잔은 라스트 워드. 예전에 처음 라스트 워드를 마셨을 때는 샤르트뢰즈 그린의 맛이 좀 비리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마시니 향긋하니 잘 넘어갔다. 원래라면 여기서 끝났어야 했는데.
요즘에 커피보다 차에 관심이 커졌다. 홍차나 커피나 카페인은 거기서 거기지만 이상하게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못 잔다. 그리고 다도가 주는 여유로움, 호젓한 느낌 또한 좋아한다. 눈앞에 차가 보관된 캔이 있길래 "차로 만든 칵테일도 있나요?"라고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찻잎을 칵테일에 직접 넣기보다는 찻잎을 우려 만든 시럽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바에서 만든 아마레또 사워에 이 시럽이 사용된다고 설명해주셨다. "아 그럼 마셔볼래요~~~"
맛이 잘 기억난다면 그것은 구라임이 틀림없다. 그날 나는 정말 뇌에 힘을 뽝 주지 않으면 잠들었을 테니깐. 하지만 메인 리큐르인 디사론노 아마레또의 향을 맡았던 것은 기억난다. 달큰하게 퍼지는 살구 향이 인상적이었다. 계란 흰자에 쉐이킹이 들어가 크리미하게 잘 넘어갔다. 술을 깨면서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 한 시간 이상 물과 함께 천천히 마셨다.
친구 앤의 칵테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녀의 최애 칵테일은 그라스호퍼. 민초단의 사랑을 받는 크리미한 녀석이다. 그래서 칵테일 바에 가면 그라스 호퍼를 마시고, 그 바의 시그니쳐 칵테일을 시킨다고 한다. 그녀가 살던 화려한 도시의 칵테일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당장 그곳에 가고 싶어 진다. 나중에 코로나 19 상황이 나아지면 2주 정도 여행 가서 칵테일바만 조지기로 약속했다.
벌써부터 앤과의 칵테일바 탐방이 기대된다. 술에 이야기가 쌓이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