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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reads Apr 17. 2020

인도가 그렇게 더럽냐고?

더럽게 솔직한 인도 생활 이야기

 인도를 간다고 했을 때, 내 친구가 제일 먼저 보여준 유튜브 영상은 다름 아닌 인도의 길거리 음식 제조 과정이었다. 인도의 길거리 토스트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토스트 안의 잼을 손으로 펴서 바르질 않나, 그 옆에선 향을 피우지 않나 먼지 가득한 길 한복판에서 빵을 만지는 솜씨가 여간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웃어넘겼다.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이들이 나처럼 그 영상을 웃어넘긴 듯했다.


 인도에 오니, 더러움은 단순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관한 문제였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예사였다. 인도의 길거리, 화장실, 그리고 일반적인 위생 관념이 우리가 보고 겪고 생각한 그 어떤 것을 능가했다. 인도의 생명을 중시하는 사상으로 온갖 가축들이 길거리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고, 자애로움이 세균과 바이러스에도 적용되었는지 사람들은 더러움에 참 관대했다. 회사 식당이나 화장실에 있는 바퀴벌레마저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때문에 바퀴벌레의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생명의 진화과정이었지만 말이다. 이렇듯 모기도 잡지 않고 그냥 날려 보낸다는 인도인들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전 집에는 세상에서 본 도마뱀 중에 가장 큰 도마뱀이 살고 있었고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욕을 많이 먹고 있는 박쥐도 내가 살던 아파트에 종종 나타난다. 이제 도마뱀 정도는 귀엽다고 생각되고 그전에는 기겁했을 거미가 이제는 작은 벌레들을 처리해 주겠지 하며 안심하는 나를 보며, 서서히 인도화되는 과정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완전히 이 나라에 적응한 것은 아니다. 벌레를 포함한 무수한 생명들 외에도 인도에는 한국인으로 살면서 놀랄 것들이 더 많다. 한 번은 일과 시간에 식당에 와서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청소하는 직원분들의 청소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역시 안 보는 게 더 나을 뻔했던걸까. 그들은 바닥을 닦는 걸레의 물기를 손으로 짜고 있었고, 창가를 닦던 행주로는 밥을 먹는 식탁을 닦고 있었다. 청소의 정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했다. 인도의 청소부들은 세균을 죽이는 게 아니라 증식시키고 있는 듯 보였다.  


 

 길거리는 어떤가. 소와 닭, 염소와 개는 예사고 구시가지에는 낙타와 양도 가끔 보인다. 특히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소는 고가도로에도 종종 나타난다. 가끔 보면 길바닥이 동물원이 따로 없다. 동물에게 관대한 사람들은 동물들의 배변활동에도 관대하여 이를 절대 청소하지 않는다. 인도에서 도보로 다닌다는 것은 지뢰 찾기 게임 속에 캐릭터가 된 느낌이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이곳의 날씨 덕에 물론 길거리는 자연적으로 깨끗해지지도 않는다. 매연과 먼지로 제대로 숨을 쉬기도 힘든 정도이다. 사람들은 질 나쁜 공기와 잘못 즈려 밟기 딱 좋은 폭신한 도로 환경을 지키는데 일조한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도 노상방뇨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이 명상에 능한 이유이다.



 최근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인 뭄바이를 다녀오면서 인도의 더러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차를 타고 다니니 직접 길거리를 걷게 되는 경우가 없는데 뭄바이에서는 야심 차게 도보를 찾아 걸어 다녔었다. 거리상으로는 2km가 채 안 되는 곳에 여러 관광지가 있었길래 당연히 도보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으로도, 규모로도 뭄바이는 인도 내에서 크고 발전한 도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고 물론 여행지로도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 도시에 대해 꽤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나름 깨끗하고 잘 정돈된 도시라고 하지만, 막상 내가 겪은 뭄바이는 내가 가본 도시 중 최악의 도로와 위생을 가진 곳이었다.

 

 길거리에는 정체불명의 악취가 난다.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 추적할 겨를도 없다, 알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여행 중 사진을 찍을 여유도 잘 없다. 위에서는 새들이 공격하고 밑으로는 온갖 동물들과 동물들의 흔적이 내 발걸음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진한 색의 끈적한 액체들과 공사 중인 돌, 그리고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가늠할 수 없는 쓰레기들로 길거리가 가득 차 있다.

  

 비유하자면, 길거리는 일반 쓰레기장에 가깝다. 그리고 조금 더럽다고 생각되는 곳은 음식물 쓰레기장에 가깝다. 애초에 인도에는 인도가 잘 없지만, 따지자면 그렇다. 한국의 보도블록과 같은 곳은 뭄바이에 아주 잘 정돈된 길이 아니라면 찾아보기 힘들다. 그마저 한 500미터를 걷다 보면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길이 나온다. 이건 걸어 다니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그렇게 많이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걸으면서 스트레스가 최고점을 찍은 나머지 나는 오후 7시에 저녁도 먹지 않고 숙소에 들어왔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여행은 역시 도보여행이라고 생각하는 나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정녕 아니었던 걸까 절로 후회가 되는 선택이었다. 놀랄만한 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토록 최악의 경험을 했던 도시 뭄바이에 대한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부자들의 동네인 뭄바이는 따지자면 인도 사람들에겐 한국의 강남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가 뭄바이란 도시에 대해 칭찬하고 있었고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더러움에 대해선 어떠한 의식도 공감도 하지 못했다. 그렇구나. 나에게 최악의 도시였던 곳이 이곳에선 가장 깔끔하고 질서를 가진 도시였구나.

 아, 나는 인도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그리고 너무나도 무방비인 상태로 오고 말았던 것이다.



 뭄바이가 가장 깨끗한 도시였다는 것에 공감을 한 것은 그 뒤로도 다른 도시들을 여행하면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예컨대 조드푸르라는 작은 도시는 인도와 차도의 경계도 불분명한 데에 이어 도로의 반 이상이 온갖 쓰레기와 배설물로 오염이 되어있는 곳도 있었다. 그곳에선 걸어 다니는 와중에도 땅으로부터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심하지 않아도 내 신발은 심각하게 오염될 것이고 이미 조금은 망가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인도에 와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가지 않았음에 안도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갔던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신발은 결코 복구할 수 없었다. 즉 인도를 여행하면서 하얀색 신발을 깨끗한 채로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은 저 멀리 던져버려야 한다. 한국에서 비싼 옷을 많이 가져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느끼는 불쾌함과 더러움은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꽁초만큼의 불편함 정도로 말이다. 길을 걸으면서 담배꽁초를 발견해도 우리가 굳이 손으로 집어다가 쓰레기통에 넣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딱 그 정도.

 객관적인 위생은 우리나라와 비교를 할 수도 없겠지만 더러움은 꽤나 상대적인 것이었다. 어질러진 방에서도 잘 사는 나와 그걸 보고 돼지우리 같다며 타박하는 엄마 사이의 다른 가치관처럼 말이다. 그렇게 몇 달을 정신없고 어질러진 도시에서 살다 보니 쓰레기와 돌로 가득한 이 도시에도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다닌다면 큰 타격감이 없을테지만 꼭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정돈되지 않은 길거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길거리가 지저분하다고 하여 인도 사람들이 청소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곳이 아주 더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대도시의 아파트들은 물론 작은 도시의 주택에 사는 사람들까지 오히려 매일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건비가 굉장히 저렴한 나라이기에 웬만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매주 청소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경우 또한 평범한 아파트임에도 주말마다 집을 청소해주는 직원들이 상주한다. 조드푸르에서 아침에 길을 나왔을 때도 새벽부터 자신의 집 앞에 물을 뿌려 청소를 하는 사람들을 꽤 마주했다. 즉 자신의 집은 깨끗하게 유지하려 하지만 길거리의 수많은 자갈들과 먼지, 쓰레기들에 대해선 신경을 안 쓰는 것이었다. 그저 인도 사람들은 쌓아두고 올려두는 것을 잘하고 다양한 냄새들에 관대하며 잘 참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인도에서, 인도에 관한 더러움을 이야기하자면 얘기할 것들이 정말 많다. 음식을 만들 때의 위생, 화장실에서의 위생. 그리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위생 관념의 얘기만 해도 논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도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는 배탈이 안 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르는 이 음식을 먹고 있자니 한심했지만 살기 위해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출국 직전 공항에서 지사제를 챙겨주던 엄마가 고마웠다. 이곳에선 정말 좋은 식당을 가지 않는 이상 위생적인 음식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위생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아야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길거리에 파는 음식들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그들도 안쓰러웠다. 다른 나라의 위생과 이 나라의 위생을 비교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진 내가, 보고 자라온 것이 전부일 그 사람들의 생애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렇게 안타깝다고 해서 변할 것은 없었다. 이 곳이 더러우나 안 더러우나 나는 어쨌건 인도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그들에게 위생관념을 장착하라고 말할 권리도 의무도 없었다. 그들에겐 그들의 종교가 존재했고, 그들의 가치와 관용을 존중해주어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마음을 비우고 이곳의 생활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이 나라가 아무리 더럽다고 한 들. 내가 안 아프고 잘 살아가면 그뿐. 이해받지도 못 할 불만들을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관용이라는게 생겨나가는 과정, 내 한계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이라고 여겨졌다.



  인도는 호불호가 강하게 느껴질 나라임에 틀림없다. 한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인도란 어떤 것을 상상해도 그 이상인 곳이다. 하지만 시도조차 안 하기엔 아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도로의 정신없음과 더러움을 상쇄할만큼 또 재미있는 나라가 이 곳 인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러움이 반가울 사람은 없겠지만 살아본 내 경험에 의하면 인간이 참을 수 있는 정도의 더러움이다. 그렇기에 사람들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지 않은가. 인도 여행에서는 이곳의 더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을 테고 그렇지 않다면 숙소에서 박혀서 밖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인도에 오려면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건재한 몸뚱아리 하나로 감사할 수 있는 정신력만 가져오면 된다. 약간의 포기와 조금의 관용도 지참한다면 더 좋다. 그렇게만 하면 가진 게 없어도 색다른 경험으로 가득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직 바라나시는 가보지 못했지만 그 또한 기대를 버린다면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참에 면역력을 올리고자 노력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항체는 있을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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