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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dreads Apr 25. 2020

당신을 지켜내고 싶은 이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이 없다.


 옆에서 보듬어 주고 싶어도, 당신도 언젠간 나처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 보아도, 당신은 내게 멀리 떨어져 있다. 지금 나는 여기 인도에 와있다. 29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한국과는 시차가 세 시간 반이나 난다. 이런 물리적인 거리가 가져다주는 정신적 거리감은 꽤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당신과 소주 한 잔이라도 같이 기울이지 못한다. 기분이 울적할 때는 단 것을 먹으라고 좋아하는 카페의 케익을 사주지도 못 한다. 한강 공원에서 밤새 산책을 할 수도,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선물로 줄 수도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무기력을 느낀다.


 당신이 잠들지 못하는 시간은 내가 가장 맑게 깨어있는 밤 열 시다. 밤 열 시에 나는 인도에서 침대에 앉아 당신이 살아온 하루를 그리고 또 맞이 해야 하는 새로운 하루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도 참 잘 견뎠다. 두려운 내일에 내미는 작은 손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나는 그런 당신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다가올 내일이 당신에게 괜찮은 하루이기를. 어쩌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하루이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도 깨어있을 당신이 동이 트기 전에 어서 빨리 편히 잠에 들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잘 자'라는 책임감 없는 말은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가진 특혜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이만 말을 줄인다. 나의 낮은 목소리가, 회사에서나 발표를 할 때는 볼품없는 나약한 목소리가 당신에게는 나긋한 라디오처럼 들린다는 이야기에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말에 재능이 없는 나지만 당신의 한마디에 나는 열심히 재잘거려본다. 당신에게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당신에게는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이 밤이 도무지 외롭기만 한 밤이 되지 않기를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오늘도 깊이 고민하다가 잠에 든다.  

 

 당신께 내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당신을 치유해 줄 수 없고 당신이 울 때 옆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등을 토닥여 줄 수 없다. 서로가 살아가는 시간이, 서로가 체험하는 일상이 너무도 다르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깊이 공감해 줄 능력이 없다. 지금의 당신이 느끼는 세세한 감정과 처한 상황을 알아차리기엔 우린 참 멀리도 떨어져 있고 나는 너무 부족할뿐더러 지금껏 우리가 걸어온 길 또한 많이 다르다.


 당신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당신의 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또한 당신의 오랜 이상형이 어떤 사람인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아니면 혼자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것인지에 대해 아직 깊은 토론을 해보지도 않았다. 당신은 가장 기쁠 때 샴페인을 터트릴 것인지 혹은 작은 포차에서 국산 맥주를 들이킬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 동안 우린 너무 어렸고 우리께 닥칠 날들은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오래도록 알아왔지만 아직도 당신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우린 저마다의 철학이 있고, 당신은 내겐 철학의 한 부류이다. 어떤 부분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어쩌면 당신은 답답할 만큼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당신에 대해 공부할 것이다. 끝내 이해할 수 없어도 좋으니 무모한 도전을 시작해 보겠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당신을 알아가고자 할 것이다.  


 당신의 외로움과 시련을,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도 다만 당신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들어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당신의 선택과 당신의 감정에 토를 달지 않겠다. 당신을 당신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든 당신이 가는 길을 꿋꿋하게 응원할 것이다. 내가 했던 그와 가장 비슷한 경험을 나눠줄 것이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어쩌면 그게 내 전부이다.


 당신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길에 대해서 당신이 걸어가고 있는 그 길이 자갈길인지 아니면 유리조각으로 가득한 길인지 알 길이 없기에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내가 보낼 수 있는 건 헛된 응원뿐이다. 헛된 응원은 힘이 없다. 무기력하고 보잘 것 없다. 그럼에도 당신을 응원한다. 당신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써 본다.


 그래도 내가 당신을 지켜내고 싶은 이유는 당신은 내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를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었다. 당신은 방황하던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아프도록 솔직했다. 나는 당신을 통해 자랐고 당신 또한 나와 함께 자랐다. 우린 침묵하지 않았다. 사과와 화해를 통해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었다. 유약하고 지난했던 세월들도 함께 버텨냈다. 당신은 내겐 큰 나무 기둥 같았고, 나는 당신 옆에 자란 작은 잡초 같았다.

 당신이 내게 처음 뿌리를 내렸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작고 당찬 당신이 내 앞에 처음 나타났을 때, 나는 당신이 나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운이 좋게도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우리는 환원할 수 없는 날들을 함께 했다. 그 시절이 항상 기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양분이었고 함께 비를 맞고 햇살을 쬐기도 하며 사이좋은 나무들이 되어 잘 자라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 나의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당신이 차지하고 있는 기억과 그 자리들이 많다. 나의 보잘 것 없는 밤의 목소리가 당신께 위로가 되어주듯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나를 위로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나에게 유일한 당신을, 서로에게 유일한 서로를,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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