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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Feb 03. 2021

인도에서 김종욱 찾기

인도에서 온 편지

 지금 나는 조드푸르에 와있어. 이 곳에서 첫 편지를 쓰게 되어 기뻐. 조드푸르라는 도시가 너에게는 얼마나 익숙한 이름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김종욱 찾기라는 영화를 통해서 이곳을 알게 되었어. 지나간 첫사랑을 찾는다는 나름 진부한 내용의 영화지만 인도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게 특이해서 영화를 어렸을 때부터 세 번이나 봤어. 사실 되게 웃긴 게 나는 내가 본 영화들을 잘 기억 못 하거든. 그래서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서야 ‘어? 나 이영화 봤는데!’라고 알아챘던 여러 영화들 중에 한 편이었어.



 영화에서는 공유랑 임수정이 조드푸르를 같이 돌아다니던 장면들이 특히 기억에 남았어. 후줄근한 옷을 입고 먼지 날리던 시장통이나 여기서 유명한 유적지를 돌아다니던 모습이 어렸을 땐 왜 멋있어 보이던지. 그래서 별 이유 없이 조금은 당연하게 찾아온 곳이기도 해. 진짜 김종욱 같은 사람을 찾아서 온 건 아니고, 내 기준 낭만적인 곳을 좀 찾아서 돌아다니고 싶었어.

 인도가 어떻게 낭만적일 수 있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조금 사서 고생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나 봐. 가끔은 쉬어야지 싶으면서도 퇴근 후나 주말에 굳이 집을 나가야 직성이 풀리고, 잠깐의 경유 시간에도 공항을 나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지칠 만큼 걸어 다니고 새로운 일들을 만나는 게 아직은 재밌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같아. 그렇게 낯선 사람도 만나고,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게 재밌어.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나도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거나 엉뚱한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도 좋아. 누군가랑 같이 다니면 내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춰주게 되잖아. 상대의 눈높이를 신경 써야 하고 또 같은 관심사를 나누어야 하는 일들이 혼자가 익숙해지면 때로는 버거울 때도 있는데, 혼자 다니면 굳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거든. 내가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고, 누군가를 배려하지 않고 나만 생각하면 되니까 그게 더 적성에 맞아. 아니면 아직 여행을 같이 다닐만한 좋은 사람을 못 찾은 걸 수도 있겠다.

 


 그래서 김종욱은 찾았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한국인을 마주친 적도 없어. 여행할 때마다 내가 묵는 호스텔에는 동양인 한 명 없더라. 그리고 이번에 내가 묵은 숙소에는 손님이 거의 나밖에 없었어. 넓은 4 인실 숙소를 혼자 썼지 뭐야.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도 공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공유 대신 알라딘이 있었다고 했지? 호스텔 사장이 꽤나 젊어서 우리는 금방 친구를 먹고 같이 시간을 보냈어.
 내가 도착한 날이 마침 그 친구(호스텔 주인)의 생일이었어. 그러면 오늘 파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자기는 서양 애들처럼 생일이라고 축하파티를 하는 게 민망하대. 생일도 다른 날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하루일 뿐이고, 모든 날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나 뭐라나. 근데 생각해 보겠다고, 내가 저녁에 돌아오고 나면 알려주겠다고 했어.

 

 저녁에 동네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친구가 10시쯤에 파티를 할 거라고 알려왔어. 고작 네 시간 정도 돌아다닌 게 전부였는데 피곤해서 곯아떨어질 것 같더라. 그래도 좋은 사람 같아 보여서 잠이 쏟아지는 걸 꾹 참고 숙소의 루프탑으로 올라갔어. 여행 중에 제일 잘 한 선택이랄까. 그러니까 내게 사랑 같은 게 찾아오지 않아도 좋은 친구를 한 명 만난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지. 그 친구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한 번도 자기가 사는 라자스탄 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어. "여행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너도 여행을 다녀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으니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게스트하우스로 직접 찾아오니 괜찮다고 하더라고. 머지않아 일리 있는 말이라고 인정했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한 종류고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운 여행이니까.
 꽤나 많은 얘기를 했는데 술이 자꾸 들어가는 바람에 무슨 얘기들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네. 그런데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그 친구가 내게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주겠냐고 물어본 거였어. 물론 난 인도 사람들을 잘 믿지 않아. 여기 온 지 두 달도 채 안 되었지만 인류애를 잃을 뻔한 적도 많고, 현지인 친구마저도 내게 여기 사람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더라. 그래서 조금은 빈말이 섞인 발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가 한 말을 흘려들을 수가 없었어. 나한테 비즈니스를 하라고 말해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거든. 내게 안정적인 직업이나 좋은 직장을 가지라고 하는 사람은 봤어도, 갑자기 사업을 하라니 말이야. 내가 어디 사업 잘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신선한 충격이었지.


 

 나는 곧바로 컴퓨터를 공부하고, 비즈니스의 ᄇ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설명해줬어. 그리고 너는 어떻게 나를 처음 봤으면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느냐고 물었어. 그 친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면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아도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긴대. 나는 24살이나 먹고도 그런 능력이 잘 없어서 아직도 힘든데, 친구가 대단하기도 하면서 내심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가 싶어서 혹했지. 다시 나는 비즈니스를 할 돈이 없다고 말했는데 큰 자본이 없어도 시작할 수 있다고 내게 용기를 주더라. 살다 살다 내가 여행 사업 같은 걸 인도 조드푸르에 와서 구상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최고로 엉뚱하고 재밌는 상상이었어.


 사실 한국에서는 인도에 오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했어. 내가 여기에 올 때 내 주변에서 아무도 나의 인도 행을 달가워하지 않았거든. 인도가 위험하다는 걸 잘 모르는 듯 한 우리 부모님 빼고 말이야. 그런데 나도 겪어보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고 그저 내가 경험한 일들을 먼 훗날에야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만 다짐했지. 근데 그 친구는 내가 한국인들의 여행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더라. 당연히 조드푸르나 조드푸르가 속한 라자스탄주에는 한국인 여행사가 없으니 그런 걸 하나 차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대. 분명 어느 정도 맞는 말이고 감사해야 할 말인데도 나는 자꾸만 의구심 섞인 질문들을 던지게 되더라. 그래도 그런 거 있잖아, 오래 만나지 않았어도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이나 그의 말들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때. 인도에선 느끼기 힘든 감정인데 그 친구와 말하면서는 모든 말들이 진심같이 느껴졌었어.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우리는 그렇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면서 늦은 밤까지 쏟아지는 별 밑에서 술을 마셨어.
 네가 보기엔 어때. 조금 미련해 보이나? 그래도 그가 한 말이 사실이든 진심이 아니든 언젠가 한 번 조드푸르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얘기했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조드푸르에 온 지 하루 만에 여기가 너무 좋아졌거든. 벌써 인도가 좋아지고 있어. 솔직히 말하자면 애증의 감정에 가까운데, 아무튼 나도 지금은 설명하기 복잡한 감정이야.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건 솔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말하자면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날들도 아주 많이 있긴 하지만 굳이 첫 편지부터 들려주진 않을래.



 조드푸르는 참 인도스러운 곳이야. 사실 태어나서 그런 공항은 처음 봤는데 네팔 카트만두 공항 이후로 가장 작은 공항이었어. 공항은 버스터미널 같이 생겼고 게이트는 2 개뿐이더라.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매력적인 곳이야. 평소에 걷는 걸 좋아하는데 인도에서는 걸어 다니기가 참 힘들거든. 그런데 동네가 작아서 그런지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게 좋았어. 물론 도로의 위생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지만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너도 여기에 꼭 들렀으면 좋겠어. 분명 좋아할 것 같아. 여기에 꼭 와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고 했지만 나는 블루시티라는 이름의 이유인 파란색 집과 마을들을 보고 싶었어. 이곳의 집들이 파란 색인 건, 브라만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을 나타내려고 집을 파란색으로 칠했는데 그 이후로 너도 나도 자신의 집을 파란색으로 페인트칠 하기 시작해서래. 뭐 그렇게 아름다운 사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분명 걸어 다니며 보는 마을은 꽤나 예뻤어. 가끔 소들이 앉아있거나 골목의 강아지들을 보면서 진짜 인도는 이런 모습이었지라는 생각도 들었고.


 길이 좁아서 숙소까지 택시가 들어가지도 못 했어. 공항에서 우버를 탔는데 돈은 돈 대로 다 받아먹고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 세워주고는 여기서부터는 못 들어간다고 얘기해주더라. 나는 게으른 여행자라 그런 교통편까지 확인하는 꼼꼼함이 없어서 그런 줄도 몰랐지. 그냥 그렇구나 하고 옆에 있는 릭샤(툭툭/인도에서는 오토라고도 불러)를 타고 갔어. 숙소까지 150 루피 따지자면 한국 돈으로 3 천 원 하는 돈을 냈는데, 알고 보니까 또 바가지를 당한 거였어. 초반부터 사기당하면서도 나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몰랐지. 아마 릭샤도 여기 와서 처음 타 본 거였을 거야. 그 차를 타면 온 세상 먼지를 다 마시는 기분인데도 여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아. 마음이 넓은 건지, 둔한 건지, 익숙해진 건지. 여기 사는 사람들을 볼 때면 신기하고 내가 정말 별거 아닌 존재가 되는 기분이야. 가장 원초적인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져. 나는 항상 나의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세상엔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으니까. 나의 욕망이 너무 부각되어 욕심 많고, 급하고 못난 사람이 되는 기분이랄까. 

 

 사람들이 나한테 인도는 어떻냐고 많이들 물어보고 궁금해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인도는 대부분 열악하고 더럽고 살기 힘든 곳으로 묘사 되잖아. 내가 사는 하이데라바드는 참 좋은 동네인데, 때로는 그 열악한 환경이 힘들면서도 재밌고 모험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거든. 근데 이렇게 설명하면 잘 못 알아듣더라고. 물론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야.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인도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도와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아. 이게 진짜 인도 사람들이 사는 생활이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거야. 여기서 나는 회사를 다니는 외국인 노동자니까 말이야.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타인의 삶에는 무뎌지기 마련이거든. 그러기 정말 싫었는데 말이야. 비위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선을 긋는 연습도 하고 있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사기나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렇게 해야 하나 봐. 나도 때로는 그런 태도가 싫지만 뭐 어쩌겠어.
 그래서 조드푸르 같은 곳을 와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돌아다니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소중해. 인도의 한 면만 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산소를 불어넣어주는 기분이랄까. 내가 이곳의 편안함에 익숙해지지 않게 언제나 원동력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는 게 여행의 힘인 것 같아. 고마운 환경들에 제대로 감사할 수 있어지는 것도 물론이고. 여행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주진 못 하지만, 적어도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건 확실한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김종욱을 찾지 못했어도 조드푸르에서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어. 이 겨울이 지나면 너도 마음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 또 편지할게.



2020 년 2 월 인도, 조드푸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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